Friday, August 30, 2019

아직 인생 안 끝났다




아직 인생 안 끝났다
요즘 한창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는 73세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가 계십니다. “박막례.” 그 이름이 보여주듯 그녀는 막례로 태어났습니다. 전라남도 영광 가난한 가정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막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설령 가정 형편이 힘들어 부유한 환경은 물려주지 못한다 해도 이름만이라도 그럴 듯하게 예쁘게 지어주셨으면 좋았으련만.
막례.” 평생 살아가는 동안 남으로부터 불리고 또 불릴 이름인데, 참 촌스럽기도 하고 투박해 보입니다. 물론 옛 시절엔 이름이 천박해야 힘든 시절을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란 이름을 지어주곤 했습니다. 천박한 이름처럼 모질 게 태어난 인생이라지만 아무 곳에서나 뒹굴며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쓰라린 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아마도 박막례 할머니의 부모님 마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난 70여 인생은 하루도 눈물 없이 지내보지 못했으나 요즘 그녀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유튜브(Youtube)란 신개념 방송채널을 통해 지난날 힘든 삶의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을 남들과 진솔하게 나눕니다. 또한 요즘 자신이 느낀 생각과 일상 모습을 허물없이 영상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백만이란 숫자를 윽박할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서, 수많은 구독자 덕분에 매달 2천만원가량 뜻밖의 광고료 수입이 들어오기에 하늘을 날듯이 즐거워합니다.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역전 계기는 똑똑한 손녀 김유라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탁월한 입담과 삶이 담은 교훈의 깊이를 깨닫고 손녀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란 유튜브 고정채널을 신설 후 기획, 촬영 그리고 편집을 도맡습니다. 곧 손녀가 할머니를 위한 개인 PD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손녀는 할머니 인생을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란 에세이에 담아 출판했는데, 그것 역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란 속담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도 재미있게 도전합니다. 실패해도 시원하게 웃고 넘어갑니다. 영어를 못해도 외국인들과 쉽게 친구가 되기에 요즘 외국인 고정 구독자도 사뭇 많아졌습니다.
사실 박막례 할머니 인생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치매 위험이란 진단을 받고 퇴사한 후 호주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손녀가 할머니께서 두고두고 보시도록 찍어 올렸던 영상이 100만 뷰를 넘겼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란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생 안 끝났어. 희망 버렸으면 주워라고 말하며 희망을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거다라고 독자들과 젊은 청춘들에게 박막례 할머니께서 간곡히 권하십니다.


편드라
이번 추석도 맛 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해라
추석 음식은 먹고도 살 안찜다. 양근 먹고 행복해다
편드라
사랑합니다.” 
- 박막례

2019. 9. 1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오늘 예배 시간에 성만찬예식이 있습니다.

3. 주일성경공부와 화요성경공부에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 동참 바랍니다.

4. 주일학교 예배시간이 9월부터 오전 10:10-11:10으로 변경됩니다.

5. 주일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빈민들을 위한 잔돈 모으기(Share the Love)”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6. 속회 속장/인도자 모임이 오늘 2부 친교 후에 있습니다.

7. 임시임원회가 다음 주 2부 친교 후 있습니다.

8. “방문자들이 관심이 있으나 묻지 않는 5가지(5 Things Your Visitors Are Thinking But Won't Ask)” 세미나가 발렌시아 연합감리교회에서 10월 19일 오전 9시-오후 3시 30분까지 있습니다.

9. 서부지역 2019년 가을 청소년 사역자 수련회가 오레곤 Suttle Lake UMC Camp에서 9월 22-25일까지 열립니다.

10.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11. 헌화 및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2.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Sunday, August 25, 2019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4-22 (2019 8 25일 남선교회 헌신예배)
본문에 소개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날 터키의 알라쉬어(Alaşehir)로 불리는 곳입니다(지도 PPT). 당시엔 프리지아(Phryghia, 성서상의 부르기아)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에게해에서 아시아의 중심으로 뻗어나간 로마의 도로가 관통했기에 일찍부터 금융, 무역, 직조, 제약기술이 집중적으로 발전한 최고의 상업도시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대지진을 겪으면서 옛 도시 모습은 거의 모두 땅속에 함몰되어 남은 유적은 별로 없습니다.
바로 이 번성한 상업도시에 어느 날 바울의 동역자이기도 한 에바브로가 복음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의 전도활동은 무척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교회의 열정이 식어갔습니다.
한편으로, 당시에 활달한 상업발전 덕분에 라오디게아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물며 라오디게아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마저 이렇게 자화자찬을 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 그런데 경제적 부유함이 늘 축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경제적 부유함이 신앙적 부유함으로 연결되는 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정말로 부요했을까요? 부요한 고로 부족한 게 없었던 것일까요? 그들이 자신들에 관해 어떤 주장을 했든 간에 진정 중요한 것은 주 예수께서 그들에 관해 이런 평가를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17). 이것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세워진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진 평가입니다. 곧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따끔한 책망입니다.
주께서 보셨을 때,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영적으로 차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그저 미지근한 상태였습니다. 특별히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 곧 열정이 그들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보셨을 때, 그들은 한없이 딱한 자들로 보였을 뿐입니다. 주님의 눈엔 그들은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요구를 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 물론 여기서 불로 연단한 금인내를 통한 믿음”, “흰 옷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도의 의롭고 올바른 행실”, 그리고 안약영적 눈을 밝히는 기도와 말씀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로 연단한 금, 흰 옷, 그리고 안약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자신들을 위해 직접 사야했습니다. 곧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힘써 찾고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따끔한 조언을 덧붙이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9).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참으로 사랑하셨기에, 참으로 아끼셨기에, 따끔한 책망과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열심을 낼 수 있었겠습니까? 열심을 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것에 대한 대답은 열심, 열정(zeal, enthusiasm)”이란 단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어사전을 보니까 “enthusiasm”이란 단어 유래를 이렇게 친절히 설명을 하더군요.
쉽게 말해서, “열심, 열정(en-th(o)us-iasm)”신에게 사로잡힌 마음, 생각(사고), 행동, 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곧 열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 사로잡힌 것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주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이제부터라도 부유한 경제적 환경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힘써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곧바로 이어진 구절을 살펴보면, 주께서 말씀하신 의미가 더욱 확실해집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구절은 세상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아닌 영적으로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주 예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더불어 먹고 마시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열정(zeal), 열심(En-th(o)us-iasm)”의 의미가 확실해졌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열심을 낼 수 있는지, 어떻게 열정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셨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열심이 필요합니다. 열정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한? 하나님을 위한 열심,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것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명령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명령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너무나 아끼시기에, 이렇게 간곡히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를 열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흔히들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lukewarm Christians)”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날에도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lukewarm Christians)”이 너무나 많습니다. “미지근한(lukewarm)”따뜻하긴 하나 간신히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문을 들어보자면, “잠시 잊혀진 뜨거운 커피는 차가워지기 전에 미지근해집니다.”
어느 기독교 유머집을 보니까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더군요. 어느 도시에 냉하고 미지근한 제일연합감리교회(First Lukewarm United Methodist Church of the Apathetic)”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너무 지루하지 않고, 너무 쉽게 흥분되지도 않습니다. 우린 미국 문화에 적합한 기독교 사고를 지향합니다. 고로 너무 느린 찬송이나 너무 빠른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오래된 찬송이나 70년대 이후 복음성가도 부르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강하게 도전하지도 않습니다. 성도들이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가 너무 확고하거나 헌신적이지 않다면서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인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룩 웜(Mr. Luke Warm)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의 신앙은 차거나 뜨겁지 않았습니다. 하나 그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고, 교회는 가끔씩 출석할 뿐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나는 직장에서 매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종종 낚시를 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교회. . . 그것 참 좋죠. 하지만 잘 알다시피,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순 없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역시도 미지근한 교회, 미지근한 성도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신약성경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라. 회개하라회개하여 성령으로 충만하라란 의미입니다.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발히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모두가 주를 위하여 활활 불타오른 열정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2:11에서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권하십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아멘.
혹시 골디락스 원리(Goldilocks Principle)”를 들어보셨습니까? “무엇이든 적당한 정도란 의미입니다. 줄곧 중용이란 말로 표현되곤 합니다. 이 용어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 동화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골디락스란 어린 소녀가 숲 속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오두막집을 발견하고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맛 있게 보인 세 그릇의 국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첫째 그릇에 담긴 국을 맛보았더니 너무 뜨거웠고, 둘째 것은 너무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셋째 그릇은 적당할 정도로 따뜻해서 그것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그리고 세 의자를 발견한 골디락스가 앉으려 했는데, 첫째 의자는 너무 딱딱했고, 둘째 의자는 너무 푹신했으며, 셋째 의자는 앉기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의자에 앉았는데 그만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좀 더 집안을 둘러보았더니, 세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첫째 침대는 너무 딱딱했고, 둘째 침대는 너무 푹신했으며, 셋째 침대는 적당히 푹신했던 고로 골디락스가 그 위에 누었다가 그만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 집 주인들이 돌아왔는데, 그들은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새끼 곰들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가 그릇에 담아 놓은 자신들의 국물에 손을 댄 것과 부셔진 의자 그리고 엉망이 된 침대 때문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곰들의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골디락스는 침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 있는 힘을 다해 줄행랑치고 말았습니다.
골디락스 원리(Goldilocks Principle)”가 사용되는 경우가 이렇습니다: 경제, 인지과학, 발달 심리학 (in economy, cognitive science and developmental psychology) 그리고 천문학에서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 in astronomy)”이란 용어로 사용됩니다.
신앙생활 여정 가운데 경계해야 할 것은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적당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매니아(mania)”란 말이 있죠? 한국어로는 혹은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매니아, 예수 매니아, 교회 매니아가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꾼, 예수꾼, 교회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열심 있는 신앙을 추구합시다. 회개하여 마음 중심에 주 예수님을 모십시다. 성령님을 모십시다.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3:20-22). 아멘.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Rev 3:14-22 (August 25, 2019)
The Church of Laodicea, introduced in today’s scripture, was located in the region that is now called Alaşehir (Map PPT). It was the capital of Phryghia at that time. The Roman road that stretched from the Aegean Sea to the center of Asia penetrated Laodicea, and as a result, from the early days, financial, trading, weaving, and pharmaceutical technology were highly developed around this city and helped it grow into a top commercial metropolitan. However, after a few major earthquakes, almost all of the old city has sunk into the ground, leaving few remains today.
One day Epaphroditus, Paul’s co-worker, came to this thriving commercial city with the Gospel. His outreach was in success. But as time went by, regretfully enthusiasm grew weaker and weaker in the church.
On the one hand, it seemed Laodicea was economically rich and lacking nothing. Thanks to vibrant commercial development around the city. Therefore, even the church folks also bragged about their wealth, saying “We are rich; we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vs 17). But economic wealth cannot always be a blessing. It is so difficult for economic wealth to be linked to religious depth.
So were the Laodicea Christians really rich? Was there anything lacking because of what they possessed? That was what they claimed, but what really matters is Jesus’ saying about them. Jesus said, “You say, 'I am rich; I have acquired wealth and do not need a thing.' But you do not realize that you are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vs 17). This was not spoken to the normal citizens in Laodicea, but to the Christian believers in town there. It was the Lord's harsh rebuke against the Laodicea believers.
In the Lord's eyes, the Christians in Laodicea were neither spiritually cold nor hot, but lukewarm. In particular, they did not prove any passion or passion for the Lord.
So when the Lord saw them, they just looked hopeless. In his eyes, they were spiritually “wretched, pitiful, poor, blind and naked.” Nevertheless, they thought that they owned everything and nothing lacked.
The Lord spoke to the Laodicea Christians: “I counsel you to buy from me gold refined in the fire, so you can become rich; and white clothes to wear, so you can cover your shameful nakedness; and salve to put on your eyes, so you can see” (vs 18). Of course, “gold tried by fire” means “faith through endurance”, “white clothes” means “precious blood of the Lord Jesus Christ, the righteous conducts of the believers,” and “eye-salve” means “constant prayer and meditation on God’s Word that light up spiritual eyes.”
Importantly, the gold, white clothes, and eye-salve were what the Laodicea believers should have bought by themselves. They were not just given but had to work hard to get.
And the Lord added to the Laodicea Christians this advice: “Those whom I love I rebuke and discipline.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vs 19. KJV). Because the Lord loved them so much, cared for them so much, that he gave this rebuke and demand to them.
How then could the Christians in Laodicea be zealous? And what does it mean “to be zealous”?
The answer to this can easily be sought from the definition of the word “zeal, enthusiasm.” When I looked up the definition of “enthusiasm” in the English dictionary, it explains its origin as follows:
Simply put, “enthusiasm” means “the mind, thought, action and life, possessed (or inspired) by a divine being.”
To be zealous or enthusiastic means to be possessed by God. In other words, it is a life that invite God to the center of the heart. That is why repentance is in need to become zealous or enthusiastic. Because repentance is an act of going back to God again. The heart is turning back to God. The thought is to returning to God. Everything in life is back to God.
In this sense, the Lord Jesus commanded the Christians in Laodicea,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vs 19). It is advice that the believers in Laodicea should have not sought out the world wealth but strived to have stronger desire for God instead.
If looking at the following verses more intently, the meaning of the Lord’s saying becomes much clearer: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vs 20). Again, this advice was not for the people of the world, but for the spiritually lukewarm Christians in the church.
When opening the heart, the Lord Jesus is about to enter, to eat and drink with them.
Dear brothers and sisters, now do you have clear understanding of the word, “zeal, or enthusiasm”? Do you know how we can be zealous and enthusiastic for the Lord?
Today we need strong zeal. We need vibrant passion. . . For what? For the Lord.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I don’t think this command is only for the Christians in Laodicea, but for you and for me.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The Lord Jesus loves us and cares for us so much, that he commands us earnestly. Therefore, we must listen to what the Lord commands us.
Often, the Laodicea believers are called "lukewarm Christians." Unfortunately, there are so many “lukewarm Christians” even today. “Lukewarm” is a word for things that are warm, but only barely. Here’s how this vocabulary is normally used: “A forgotten cup of hot coffee will get lukewarm before it eventually gets cold.”
I read this joke from a Christian humor book. There was a church, named “First Lukewarm Church of the Apathetic.” The pastor described his church as follows: “Our church is nothing too boring, nothing too exciting. We want it to fit into our American Culture Christianity. No songs too slow, no songs too fast. Nothing from the ancient songs and nothing after the 70’s. Nothing ever challenging. We want encouragement and comfort.” He proudly described his church as irresolute and uncommitted.
Let me give you another example of a lukewarm faith.
There is a man, called Mr. Luke Warm. His faith is neither cold nor hot. He says he is a Christian but seldom attends church. He explains his life as follows: “I am under a great deal of tension where I work, and often go fishing on weekends for relaxation. Church is all right, but a person can’t do everything, you know.”
Dear brothers and sisters, aren’t we a lukewarm church, or lukewarm believers, as well? If so, let us listen to what the Lord cries out to us: “Be zealous therefore, and repent.”
In other words, we can understand it this way: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Therefore repent.” We must invite the Holy Spirit into our heart. We must let him work actively in us. Of course, to do so, we must earnestly pray for his coming into our heart. If being filled with the Divine Spirit, we will be able to live a life with strong zeal and enthusiasm for the Lord.
In Rom 12:11, the Apostle Paul commands us, “Never be lacking in zeal, but keep your spiritual fervor, serving the Lord.”
Have you heard of the “Goldilocks Principle”? It means “anything reasonable.” It is often used in the word “medium.” This terminology originated from 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 and its summary goes this way:
A little girl named Goldilocks, goes for a walk in the forest and comes upon a house where she enters and finds to her delight three bowls of porridge. The first one she tastes is too hot, the next too cold but the third one just right so she eats it all up.
Goldilocks finds the three different size chairs where she tries them out and finds the first one too hard, the next too soft, and then the little one just right but it breaks when she sits in it.
As she wonders in the home she finds three beds and tries them out. The first bed is too hard, the next too soft but the third is just right and she curls up and falls asleep.
Meanwhile the owners come home who happen to be three bears, Papa, Mama and little baby bear. Much to their surprise they discover the outcome of what Goldilocks has done to their porridge, chairs and finally their beds.
Goldilocks wakes with a fright when she sees and hears the bears; she jumps from the bed and runs away as fast as she can.
During our faith journey, we have to prevent lukewarm faith. We have to be alert to opportunism or properism.
There’s a word “mania.” In some sense, we must become God Mania, Jesus Mania, and Church Mania. It means we must be zealots or enthusiasts for God, for Jesus, and for his Church.
Dear brothers and sisters, let us all come out of the state of lukewarm faith but seek earnest faith. Let's gather the Lord Jesus at the heart. Let's gather the Holy Spirit in the heart.
The Lord’s saying to us: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To him who overcomes, I will give the right to sit with me on my throne, just as I overcame and sat down with my Father on his throne.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Rev. 3:20-22).

Friday, August 23, 2019

카지노 탈출



카지노 탈출
설교 준비하면서 필요자료를 찾던 중 어떤 목사님 말씀 가운데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카지노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 이 지면을 통해 나누어봅니다.
카지노에는 시계, 거울 그리고 창문이 없습니다. 첫째, 시계가 없는 이유는 시간을 알게 되면 그 시간에 자기 자신이 그곳에 있어선 아니 된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거울이 없는 이유는 공기도 좋지 않고 거저 답답하기만 한 카지노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거칠어진 자기 얼굴을 보고서 내가 이곳에서 뭐하나?”란 한심한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셋째, 창문이 없는 이유는 밖을 내다보게 되면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깨닫고서 그 시간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책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지노에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을 배치해 놓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사람들을 밀폐된 카지노 안에 붙들어 놓기 위함입니다.
하긴 영국이 낳은 위대한 문학가 C.S 루이스(Lewis)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일에 마음을 쏟아 붓지 않도록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삶의 안락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락하고 풍요로우면 그런 삶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힘들게 하나님을 찾아 나서거나 그분의 거룩한 사업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국엔 큰 갈고리를 가지고서 마귀는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는 자를 낚아채서 끌어가고 맙니다.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평론가이기도 했던 토마스 칼라일 경(Sir. Thomas Carlyle 1795∼1881)이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경을 견뎌내는 자가 백 명이라면, 번영(풍요)을 견뎌내는 자는 한 명에 불과할 뿐이다(But for one man who can stand prosperity, there are a hundred that will stand adversity).”
삶이 풍요롭고 평안하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더욱 힘써 하나님께 예배하고 거룩한 일에 동참하고 싶어져야 하건만 우리 인간이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가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24:33).
초대교회 당시 라오디게아에 세워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어느 곳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들이 모였던 교회였습니다. “부요하여 모든 것이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스스로 말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질적 풍요가 심각한 영적 게으름과 빈곤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주님으로 이런 질책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3:16).
영적 카지노 탈출이 필요합니다. , 즉시 영적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9).

2019. 8. 25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오늘 2부 예배는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3. 주일성경공부와 화요성경공부에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 동참 바랍니다.

4. 주일학교 예배시간이 9월부터 오전 10:10-11:10으로 변경됩니다.

5. 주일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빈민들을 위한 잔돈 모으기(Share the Love)”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6. “방문자들이 관심이 있으나 묻지 않는 5가지(5 Things Your Visitors Are Thinking But Won't Ask)” 세미나가 발렌시아 연합감리교회에서 10월 19일 오전 9시-오후 3시 30분까지 있습니다.

7. 서부지역 2019년 가을 청소년 사역자 수련회가 오레곤 Suttle Lake UMC Camp에서 9월 22-25일까지 열립니다.

8.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9. 헌화 및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0. 부고: 김재형 집사(김추 권사 아내)께서 22일 저녁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유가족에게 주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10.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Sunday, August 18, 2019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창 1:26-31 (2019 8 18일 주일예배)
폴 프레드릭 마이어하임(Paul Friedrich Meyerheim)이 공식적 원작자로 알려지고 있는 두꺼비 왕자(The Frog Prince)”란 동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각 문화와 풍습에 따라 여러 번역으로 각색되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 번역본들 중 하나를 소개해 봅니다.
옛날 옛적부터 전해온 이야기에 의할 것 같으면, 어느 잘 생긴 왕자가 짓궂은 마녀의 마술에 걸려 그만 두꺼비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마술에서 풀려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리따운 한 공주로부터 입맞춤 받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녀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 확신을 했습니다.
한편으로, 동시대에 아리따운 한 공주가 살고 있었는데, 멋진 왕자와 결혼식을 기다렸으나 그녀의 생애 동안 그런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작은 호숫가 숲에서 혼자 거닐다 숲 속에서 아주 못생긴 두꺼비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공주가 호숫가에 앉아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며 잘 생긴 왕자가 나타날 상상을 하고 있는데, 그 개구리가 공주에게로 뛰어올라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실재론 매우 잘 생긴 왕자라고 말을 건넨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면,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어 그녀와 결혼해 평생토록 그녀만을 사랑하며 살아가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처음엔 두꺼비의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려 주춤거렸으나,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공주가 두꺼비 입술에 키스했습니다.
그랬더니 두꺼비가 멋진 왕자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왕자는 공주와 결혼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두꺼비 왕자 우화는 단순히 어린이 동화로 치부해 버리기엔 담고 있는 교훈이 매우 큽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도,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사랑하며 살아가지 못한 채 두꺼비 모습, 즉 겉모습만 보고 실망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비하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 그림 PPT)
그래서 돌아온 탕자란 책에서 헨리 나우웬이 이렇게 적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불만을 낳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불만을 양산하는 문화 속에서 자기 자신이 힘들어하고 있진 않는지 스스로를 진단해보기 바랍니다. 달리 말해서, 개인적 능력이나 상황을 생각할 때 자꾸만 움츠려 들게 몰아가는 부정적 감정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하하진 않는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참 모습이 아니라면?”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불만을 낳는 문화 속에서 힘들어하는 우리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나와 여러분을 친히 창조하셨다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26절 상반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모습 그대를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지 결코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원숭이 진화 그림 PPT).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나중에 만드신 창조의 걸작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모양(Image)”은 히브리어로 -(tseh'-lem)”인데, “그림자, 유령, 환상, 닮음, 이미지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형상-우쓰(히브리어)닮음, 같음; 모델, 형상이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1) 하나님의 깊은 영성 안에서 우리는 지적이고 독립적 개체로 창조되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도덕적 완전과 성결 속에서 창조되었습니다.
(3)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 창조는 다른 피조물 창조에선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각별한 마음씀씀이가 나타납니다. 다른 피조물 창조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빛이 있으라하시매, 빛이 있었고”( 1:3).
또한 이미 만들어 놓은 개체들에게 이런 식으로 명하셨습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하시매, 그대로 되어”(9). 곧 말씀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창조 때는 사뭇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26).
단순히 말로만 하기보단 그가 손수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체가 서로 협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란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말을 하고, 뜻을 갖고 행동합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처럼 우리 인간에게 사고, 언어, 의지, 그리고 행동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이 구절을 좀더 깊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듯, 다른 사람들 역시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즉 각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존재이듯,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 복된 존재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28절 상반절). 아담 한 사람에게만 축복하신 게 아니라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이.
나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우리 안에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시발점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의 걸작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취인 자신에 대한 생각은 삶의 질을 결정 짓습니다. 만약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인생은 즉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본래 선하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그것을 만듭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과거에 무엇을 했던지 아니면 하지 못했던지 간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의 걸작임을 인정하고서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자신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조언을 나눌까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선하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우 큰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우리 모두는 각별합니다.
둘째,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중요합니다. 나의 나 됨이 내 자신에게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실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은 그들의 삶에 실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자라면서 우리가 했던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교회와 직장과 지역사회에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노라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무척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느끼고 행동한 대로 그들에게는 현실이 됩니다.
셋째, 소원하는 대로 환경을 또한 주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특별한 목적 가운데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멋진 일을 할 수 있도록 축복 받았습니다.
넷째, 우리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향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맡겨졌습니다. 곧 행복해지고, 일을 성취하며, 뜻을 높여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겠다고 결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적은 자신 안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빚으신 축복된 존재로서 이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이상적인 삶을 추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그려보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고, 평화롭고, 즐거우며, 흥분으로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고 생각해 보십니다. 이런 확신이 있다면,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하루를 열심히 시작할 것입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을 것이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는 일이 즐겁고, 사회에 조그마한 긍정적 변화이나마 줄 수 있는 삶에 만족을 느낍니다.
부분부분 모든 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삶의 어느 영역에서 불행하거나 불만족스럽게 느낀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혹은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두꺼비 안에 갇혀 있는 잘 생긴 왕자를, 즉 부정적 사고나 그릇된 믿음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의 참 모습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멋진 왕자가 풀려날 수 있도록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겠다고 지금 결단하십시오.

Friday, August 16, 2019

비트겐슈타인의 자




비트겐슈타인의 자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 전도활동 중 평소처럼 어느 날 호숫가에 앉아 몰려든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날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는데,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그리고 누룩 비유”( 13).
그런데 비유(parable)”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곰곰이 씹으면 씹을수록 안에 숨겨 있는 진리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도 표면상으론 무리가 듣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의 비유를 단순히 재미난 이야기로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 안에는 실로 놀라운 천국에 관한 복된 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영생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신비로운 지혜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들을 귀가 열렸던 소수의 사람들,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비유를 듣고서 안에 담긴 교훈을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궁금히 여긴 것은 왜 무리에게 예수께서 굳이 비유로만 말씀하시나?”였습니다. 그 궁금증에 예수께서 이런 화답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3:11, 12). 더 나아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예수께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13:14, 15). 예수께서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쉽게 설명하면, 무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 자들은 2,000년 전 유대인들만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편협적 수용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기 주관(主觀)에서 묶인 채 주변 사람들을 보고 판단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들으니 서로 간에 쉽게 오해가 생깁니다. 오해는 자기 자신이 했으면서 괜히 남을 탓합니다. 결국 가뭄에 메말라 갈라진 논처럼 서로간의 관계가 쫙쫙 갈라져 있습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스킨 인 데 게임(Skin in the Games)란 책에 비트겐슈타인의 자란 표현이 있는데, 이 질문과 함께 소개됩니다. “탁자를 자로 재는 행위, 그게 탁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일까? 아니면 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일까?”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듣기보단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해가 사라집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세상입니다. 나와 너가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과 다르다고 함께 하길 거부하기보단 힘들긴 해도 자기 중심적 사고를 내려놓고 각자의 다름을 솔직히 인정하며 애써 손잡고 걸어가야 할 여정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면서 손을 뿌리치진 맙시다.


2019. 8. 18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주일성경공부화요성경공부8월 첫 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더욱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 동참 바랍니다.

3. 남선교회 헌신예배가 다음주일(825) 2부예배 때에 있습니다. 기도로써 준비바랍니다.

4. 주일학교 예배시간9월부터 오전 10:10-11:10으로 변경됩니다.

5. 주일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빈민들을 위한 잔돈 모으기(Shape the Love)”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6. 2019년 서부지역 평신도 지도자 수련회회복(Restoration)”(강사: 이덕주 목사, 정희수 감독)이란 주제를 가지고, 819-22일에 레익타호 Zephyr Point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립니다.

7. 목회사역 오리엔테이션Aldersgate UMC of Tustin에서 824일 오전 10-오후 3시까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연락바랍니다.

8.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9. 헌화 및 1/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0.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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