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 2019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2:4-9 (2019 9 1일 주일예배)
창세기를 읽을 때 우리가 만나는 딜레마 중 하나는 창 1장과 창 2장에 소개된 창조 이야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시 창세기를 읽다가 여러분도 그런 딜레마를 만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어떻게 그 딜레마를 해결하셨나요?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을 이렇게 해결했습니다. “ 1장은 범우주적 창조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고, 2장은 인간 창조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창 1장과 창 2장을 읽었더니 그 둘의 차이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둘의 차이가 나를 딜레마로 몰아넣기보단 오히려 성경을 이해하는데 보완역할을 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어찌 하여튼, 오늘 본문은 에덴동산과 인간창조에 관한 기사입니다. 땅이 벌거숭이였을 무렵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삶의 터전으로써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7). 무엇보다 먼저, 이 구절에서 우리가 눈 여겨 살펴야 할 부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지었다(formed)”는 히브리어로 요싸르(yaw-tsar')인데, “(어떤 형상으로) 빚어내다란 의미입니다. 곧 토기공(potter)이 진흙으로 원하는 형상을 빚어낸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면, 일정한 목적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손수 빚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러가는 동안 흙에서부터 사람이 진화되어 나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빚어졌습니다. 누구에 의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더 나아가서, 토기공이 목적을 가지고 원하는 그릇을 빚어내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일정한 목적 가운데 우리를 손으로 직접 빚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눈 여겨 살펴야 할 부분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빚으셨느냐?”는 질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 곧 땅의 티끌을 사용해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아담(aw-dawm')”불그레한, 뻘건, 선홍색의, 진홍색(ruddy, red, crimson, scarlet)”이란 의미를 가졌습니다. 아담 곧 사람이 불그레한, 뻘건이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건대, 우리 인간은 흙에서 나온 게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낸 창조물입니다.
그런데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극히 하찮게 보인 흙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선 그 안에서 사람을 미리 구상하신 것입니다(흙 속에서 사람의 형상 이미지 PPT).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위대한 예술가이십니다. 최초의 예술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술가 중 최고의 예술가이십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서 실로 소중한 것을 만들어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 갤러리에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스튜디오로 걸어 가면서 몇 년 전 산에서 가져온 커다란 대리석이 풀과 덤불로 덮인 채 길가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길을 수없이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아침엔 그 거대한 대리석 앞에 멈추어 서서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번 더 그곳을 찾아가 살폈습니다.
He had walked this way many times, but this time, he stopped and examined the huge block of marble, walking around it several times.
그러다 갑자기 그는 그 대리석이 시 당국으로부터 자기에게 위임한 숙제였던 조각상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함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작업실로 가져다 거의 4년 동안 다윗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문헌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나는 그 대리석에서 다윗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다윗만이 남을 때까지 다윗이 아닌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돌보다는 가치 있는 대리석을 가지고서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운 다윗상을 조각해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하찮은 흙, 땅의 티끌을 가지고서 위대한 아담(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욱 위대한 예술가입니까? 물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위대하시죠.
흙을 보더라도 어떤 눈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그것의 가치가 달라 보입니다. 또한 그것의 쓰임 받는 용도가 달라집니다. 우리에게도 흙 속에서 아담(사람)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올바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실로 중요하거든요.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 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신 후 날 바라보시고서 실로 좋다, 참으로 아름답다고 감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31).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심히 보기 좋습니까? 심히 아름답습니까? 참으로 소중해 보입니까? 물론 그렇게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7)입니다.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어낸 후 하나님께서 그것의 코에 생기(the breath of life)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흙으로 빚어진 형상이 생령(a living soul)이 되었습니다. “생령살아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사림이 생령이 된지라.”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같은 행동, 즉 먹고, 마시고, 걷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할뿐만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서 생각하고, 사고하며, 결단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은 단순한 먼지 덩어리, 고깃덩어리가 아닌 생령, 즉 살아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도덕적으로 인격을 성숙시키고, 하나님께 받은 영감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고귀한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특별한 목적 가운데 기획되었고, 빚음 바 되었습니다. 그것도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 가운데. 그래서 우리 각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서 이 땅에 태어났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뜻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획하신 최고의 자신을 분명히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나도 아름답겠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나(the Me in God’s grand design)를 찾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 이래서, ~ 저래서 어쩔 수 없다란 궁색한 변명을 더 이상 품고 살아선 아니 됩니다. 차라리 이렇게 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 그의 손으로 친히 빚음 바 된 소중한 존재이다.” 더 이상 패배주의 희생자가 되어선 아니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의 모습대로 지음 바 된 창조의 걸작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금껏 어떻게 걸어왔느냐 보단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슴에 새겨두기 바랍니다. “무엇이 가능한지 생각하기 앞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무엇이 되고자 하느냐가 주어진 환경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물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이 갖고 있는 꿈이 그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꿈은 하나님 우리를 손수 빚으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음을 늘 기억했으면 합니다.
많은 경우 참으로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뜻하신 최고의 나 자신이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상이 대리석에 갇혀 있었던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중 숙제는 바로 갇혀 있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습을 회복하도록 이젠 풀어놓아야 합니다. 나사로를 헝겊으로 둘둘 말아 무덤에 매장했던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그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11:44).
어떻게?
모든 두려움, 의심, 불안, 부정적 감정, 또한 그릇된 믿음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가 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뜻하신 나를 추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실수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다이빙 선수 그렉 루가니스(Greg Louganis)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그렉 루가니스가 아메리카 경기에 참가했을 때, 국제 다이빙 게임 경쟁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보드에 올라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내가 이 다이빙에서 실수한다 해도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런 후 최고 점수를 추구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가 심호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설령 오늘 내가 실수한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오늘 역시도 완벽한 10점을 추구하기 바랍니다!

God Formed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God Formed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Gen 2:4-9 (September 1, 2019)
When reading the creation narratives in Genesis 1 and 2, one dilemma to encounter is that they do not coincide. Have you ever encountered such a dilemma while reading Genesis? If so, how did you solve the dilemma?
Personally I solved it this way: “Genesis 1 is written from the perspective of universal creation, and Genesis 2 is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 creation.” As reading the two different narratives with this thought, it helped me understand the differences rather than drive me crazy. The difference helped me understand the Bible more thoroughly.
In any case, today's text is an account about the creation of the Garden of Eden and Man. When the earth was still barren, God created man from the earth and created a garden as his place to live.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vs 7). First of all, what we need to look at in this verse is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God formed man.
“Formed” is yaw-tsar' in Hebrew, meaning “to mould into a form.” In other words, it is like that the potter forms a pot with clay. What it means is that, for a certain purpose, God the Creator fashioned man.
Man has not evolved from the soil over time. He was formed. By whom? By God the Creator. Furthermore, just as the potter makes the vessel according to his own need, the Lord God himself formed us for a certain purpose. Hallelujah!
And the second thing we need to look at is this question: “With what means did God form man?”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That’s right. God formed man from the dust (dirt) of the ground(aw-fawr' min ad-aw-maw' ).
Of course, to us, “dirt, or dust of the ground” looks “a trivial and useless thing.” But that is the very source where man came from. We are made of dirt. So “man” is called “Adam (אדם)” in Hebrew.
“Adam (אדם)” means “ruddy, red, crimson, scarlet.” As hearing that Adam, or man, means “reddish or dry,” we can be reassured that man must have come from the dust. That's right. As the Bible says, we are a creation that God formed from the dust of the ground.
God carefully took a look at the seemingly insignificant thing but came up with the shape of man from it. It is a proof of God's greatness? He is indeed a great artist. He is the first artist in history ever. He is the best of all time. A great artist can make something out of nothing.
In the Gallery of the Academy in Florence, Italy, stands the David, by Michelangelo, considered by many to be the most beautiful piece of sculpture in the world.
It is said that later in his life, Michelangelo was once asked how he was able to sculpt something so beautiful.
He explained that he was walking to his studio one morning and he happened to glance down a side street to where a huge block of marble, brought down from the mountains some years ago, was lying, overgrown with grass and bushes.
He had walked this way many times, but this time, he stopped and examined the huge block of marble, walking around it several times.
Suddenly, he realized that this was exactly what he had been seeking to create the statue that had been commissioned. He had the block brought to his studio, where he worked on it for almost four years to create the David.
As legend has it, he said later, “I saw the David in the block of marble at the very beginning. My sole job from then on was to remove everything that was not the David, until only perfection was left.”
Michelangelo carved a beautiful statue of David with a marble stone worth more than any other stone. But God formed the great creature Adam from an insignificant material out of the ground. Then who is the greater artist? Of course, God is so incomparable.
The value of the dirt can depend on what kind of eyes we look at it. Its use also can be determined. We need to see Adam in the dust. We need to see oneself. We need to see oneself with the right eyes. It is so crucial that we were created by the hands of God. It is for the reason that our perspective looking at the self can determine what kind of a person to turn to be.
After forming the ME in his grand design, God said, “You are very good, very beautiful.” “God saw all that he had made, and it was very good.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sixth day” (Gen 1:31). Dear brothers and sisters, how do you look at yourself? Are you beautiful to your eyes? Do you look precious in your eyes? Of course, we have to be able to see us in this perspective. That’s the very way that God is looking at us.   
The next thing we have to pay extra attention to is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fter fashioning a human figure out of the dust, God breathed the breath of life into its nose. Thus the shape out of the dust became a living soul. It became a living creature spiritually.
“Man became a living soul.” Man is not only capable of performing the functions of the animal life, of eating, drinking, and walking, but also of thinking, reasoning, and discoursing as a rational creature. Man is not merely dust, nor merely body. Man is also a living soul.
Therefore, man should cultivate a moral character, and anticipate a destiny commensurate with God’s divine inspiration.
We human beings were designed and formed out of the dust of the ground. . . but for a special purpose. We were created for God’s noble purpose. Therefore, each of us must always remember that we were sent to this life with a special task.
We have to define the ideal self that God has designed for us from the beginning. We have to define the perfect self (the best self) that God has created for us. The ideal self that we came up for us is important, but the perfect self in God’s grand design is more important.
We should no longer live with the hard excuse: “because of this or because of that I can’t do that.” We should rather live out with this attitude: “I am formed by God’s own hands according to his grand design and noble purpose. Therefore, we should no longer be with victim-mindset. We should look at ourselves through the eyes of God the Creator. We are a masterpiece of creation, made in God's image and in His likeness.
Furthermore, what we should remember is that “It doesn't matter where we are coming from; all that really matters is where we are going.”
Therefore, let us set this rule for us: “Decide what’s ideal before we decide what’s possible.” 
What desire to be is more important than what environment to be given. Of course, “The environment makes people.” But more than that, what we dream shapes us into the ideal person. We better know that our dream is also God's purpose in making each of us. We better not forget that we were made by God and in His own image and likeness.
So for many people, their best self is imprisoned. It is like we may be like the David imprisoned in the rock.
The great goal of our life (or the lives of others) is to set us free and let us become what we suppose to become. Jesus commanded the people who had wrapped Lazarus with the grave clothes, “Take off the grave clothes and let him go!”(JN 11:44).  
How?
We need to remove all those fears, doubts, insecurities, negative emotions, and false beliefs that hold us back. They put us in prison. They prevent us from becoming the very best person we could possibly be.
Of course, the process of seeking the perfect self that God has meant may not be easy. We will make mistakes and get frustrated. Nevertheless, our pursuit must go on.
I'll conclude today’s message after telling you the story of Diver Greg Louganis.
At the Pan American Games, Greg Louganis was asked how he coped with the stress of international diving competition. He replied that he climbs to the board, takes a deep breath, and thinks, “EVEN IF I BLOW THIS DIVE, MY MOTHER WILL STILL LOVE ME.” Then he goes for excellence.
At the beginning of each day, how good it would be for each of us to take a deep breath, say, “Even if I blow it today, my God will still love me,” and then, assured of grace, go into the day seeking a perfect 10!

Friday, August 30, 2019

아직 인생 안 끝났다




아직 인생 안 끝났다
요즘 한창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는 73세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가 계십니다. “박막례.” 그 이름이 보여주듯 그녀는 막례로 태어났습니다. 전라남도 영광 가난한 가정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막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설령 가정 형편이 힘들어 부유한 환경은 물려주지 못한다 해도 이름만이라도 그럴 듯하게 예쁘게 지어주셨으면 좋았으련만.
막례.” 평생 살아가는 동안 남으로부터 불리고 또 불릴 이름인데, 참 촌스럽기도 하고 투박해 보입니다. 물론 옛 시절엔 이름이 천박해야 힘든 시절을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란 이름을 지어주곤 했습니다. 천박한 이름처럼 모질 게 태어난 인생이라지만 아무 곳에서나 뒹굴며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쓰라린 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아마도 박막례 할머니의 부모님 마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난 70여 인생은 하루도 눈물 없이 지내보지 못했으나 요즘 그녀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유튜브(Youtube)란 신개념 방송채널을 통해 지난날 힘든 삶의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을 남들과 진솔하게 나눕니다. 또한 요즘 자신이 느낀 생각과 일상 모습을 허물없이 영상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백만이란 숫자를 윽박할 정도입니다. 더 나아가서, 수많은 구독자 덕분에 매달 2천만원가량 뜻밖의 광고료 수입이 들어오기에 하늘을 날듯이 즐거워합니다.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역전 계기는 똑똑한 손녀 김유라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탁월한 입담과 삶이 담은 교훈의 깊이를 깨닫고 손녀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란 유튜브 고정채널을 신설 후 기획, 촬영 그리고 편집을 도맡습니다. 곧 손녀가 할머니를 위한 개인 PD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손녀는 할머니 인생을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란 에세이에 담아 출판했는데, 그것 역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란 속담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이라도 재미있게 도전합니다. 실패해도 시원하게 웃고 넘어갑니다. 영어를 못해도 외국인들과 쉽게 친구가 되기에 요즘 외국인 고정 구독자도 사뭇 많아졌습니다.
사실 박막례 할머니 인생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치매 위험이란 진단을 받고 퇴사한 후 호주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손녀가 할머니께서 두고두고 보시도록 찍어 올렸던 영상이 100만 뷰를 넘겼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란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생 안 끝났어. 희망 버렸으면 주워라고 말하며 희망을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거다라고 독자들과 젊은 청춘들에게 박막례 할머니께서 간곡히 권하십니다.


편드라
이번 추석도 맛 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해라
추석 음식은 먹고도 살 안찜다. 양근 먹고 행복해다
편드라
사랑합니다.” 
- 박막례

2019. 9. 1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오늘 예배 시간에 성만찬예식이 있습니다.

3. 주일성경공부와 화요성경공부에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 동참 바랍니다.

4. 주일학교 예배시간이 9월부터 오전 10:10-11:10으로 변경됩니다.

5. 주일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빈민들을 위한 잔돈 모으기(Share the Love)”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6. 속회 속장/인도자 모임이 오늘 2부 친교 후에 있습니다.

7. 임시임원회가 다음 주 2부 친교 후 있습니다.

8. “방문자들이 관심이 있으나 묻지 않는 5가지(5 Things Your Visitors Are Thinking But Won't Ask)” 세미나가 발렌시아 연합감리교회에서 10월 19일 오전 9시-오후 3시 30분까지 있습니다.

9. 서부지역 2019년 가을 청소년 사역자 수련회가 오레곤 Suttle Lake UMC Camp에서 9월 22-25일까지 열립니다.

10.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11. 헌화 및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2.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Sunday, August 25, 2019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4-22 (2019 8 25일 남선교회 헌신예배)
본문에 소개된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날 터키의 알라쉬어(Alaşehir)로 불리는 곳입니다(지도 PPT). 당시엔 프리지아(Phryghia, 성서상의 부르기아)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에게해에서 아시아의 중심으로 뻗어나간 로마의 도로가 관통했기에 일찍부터 금융, 무역, 직조, 제약기술이 집중적으로 발전한 최고의 상업도시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대지진을 겪으면서 옛 도시 모습은 거의 모두 땅속에 함몰되어 남은 유적은 별로 없습니다.
바로 이 번성한 상업도시에 어느 날 바울의 동역자이기도 한 에바브로가 복음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의 전도활동은 무척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교회의 열정이 식어갔습니다.
한편으로, 당시에 활달한 상업발전 덕분에 라오디게아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물며 라오디게아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마저 이렇게 자화자찬을 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 그런데 경제적 부유함이 늘 축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경제적 부유함이 신앙적 부유함으로 연결되는 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정말로 부요했을까요? 부요한 고로 부족한 게 없었던 것일까요? 그들이 자신들에 관해 어떤 주장을 했든 간에 진정 중요한 것은 주 예수께서 그들에 관해 이런 평가를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17). 이것은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세워진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진 평가입니다. 곧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따끔한 책망입니다.
주께서 보셨을 때,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영적으로 차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그저 미지근한 상태였습니다. 특별히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 곧 열정이 그들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보셨을 때, 그들은 한없이 딱한 자들로 보였을 뿐입니다. 주님의 눈엔 그들은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요구를 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 물론 여기서 불로 연단한 금인내를 통한 믿음”, “흰 옷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도의 의롭고 올바른 행실”, 그리고 안약영적 눈을 밝히는 기도와 말씀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로 연단한 금, 흰 옷, 그리고 안약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자신들을 위해 직접 사야했습니다. 곧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힘써 찾고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따끔한 조언을 덧붙이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9).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참으로 사랑하셨기에, 참으로 아끼셨기에, 따끔한 책망과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열심을 낼 수 있었겠습니까? 열심을 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것에 대한 대답은 열심, 열정(zeal, enthusiasm)”이란 단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어사전을 보니까 “enthusiasm”이란 단어 유래를 이렇게 친절히 설명을 하더군요.
쉽게 말해서, “열심, 열정(en-th(o)us-iasm)”신에게 사로잡힌 마음, 생각(사고), 행동, 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곧 열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 사로잡힌 것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주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이제부터라도 부유한 경제적 환경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힘써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곧바로 이어진 구절을 살펴보면, 주께서 말씀하신 의미가 더욱 확실해집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구절은 세상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아닌 영적으로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주 예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더불어 먹고 마시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열정(zeal), 열심(En-th(o)us-iasm)”의 의미가 확실해졌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열심을 낼 수 있는지, 어떻게 열정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셨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열심이 필요합니다. 열정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한? 하나님을 위한 열심,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것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명령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명령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너무나 아끼시기에, 이렇게 간곡히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를 열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흔히들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lukewarm Christians)”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날에도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lukewarm Christians)”이 너무나 많습니다. “미지근한(lukewarm)”따뜻하긴 하나 간신히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문을 들어보자면, “잠시 잊혀진 뜨거운 커피는 차가워지기 전에 미지근해집니다.”
어느 기독교 유머집을 보니까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더군요. 어느 도시에 냉하고 미지근한 제일연합감리교회(First Lukewarm United Methodist Church of the Apathetic)”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너무 지루하지 않고, 너무 쉽게 흥분되지도 않습니다. 우린 미국 문화에 적합한 기독교 사고를 지향합니다. 고로 너무 느린 찬송이나 너무 빠른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오래된 찬송이나 70년대 이후 복음성가도 부르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강하게 도전하지도 않습니다. 성도들이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가 너무 확고하거나 헌신적이지 않다면서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인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룩 웜(Mr. Luke Warm)이란 분이 계셨는데, 그의 신앙은 차거나 뜨겁지 않았습니다. 하나 그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고, 교회는 가끔씩 출석할 뿐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나는 직장에서 매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종종 낚시를 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교회. . . 그것 참 좋죠. 하지만 잘 알다시피,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순 없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역시도 미지근한 교회, 미지근한 성도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신약성경의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라. 회개하라회개하여 성령으로 충만하라란 의미입니다.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발히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모두가 주를 위하여 활활 불타오른 열정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2:11에서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권하십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아멘.
혹시 골디락스 원리(Goldilocks Principle)”를 들어보셨습니까? “무엇이든 적당한 정도란 의미입니다. 줄곧 중용이란 말로 표현되곤 합니다. 이 용어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 동화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골디락스란 어린 소녀가 숲 속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오두막집을 발견하고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맛 있게 보인 세 그릇의 국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첫째 그릇에 담긴 국을 맛보았더니 너무 뜨거웠고, 둘째 것은 너무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셋째 그릇은 적당할 정도로 따뜻해서 그것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그리고 세 의자를 발견한 골디락스가 앉으려 했는데, 첫째 의자는 너무 딱딱했고, 둘째 의자는 너무 푹신했으며, 셋째 의자는 앉기 좋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의자에 앉았는데 그만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좀 더 집안을 둘러보았더니, 세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첫째 침대는 너무 딱딱했고, 둘째 침대는 너무 푹신했으며, 셋째 침대는 적당히 푹신했던 고로 골디락스가 그 위에 누었다가 그만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 집 주인들이 돌아왔는데, 그들은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새끼 곰들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누군가가 그릇에 담아 놓은 자신들의 국물에 손을 댄 것과 부셔진 의자 그리고 엉망이 된 침대 때문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곰들의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골디락스는 침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 있는 힘을 다해 줄행랑치고 말았습니다.
골디락스 원리(Goldilocks Principle)”가 사용되는 경우가 이렇습니다: 경제, 인지과학, 발달 심리학 (in economy, cognitive science and developmental psychology) 그리고 천문학에서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 in astronomy)”이란 용어로 사용됩니다.
신앙생활 여정 가운데 경계해야 할 것은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적당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매니아(mania)”란 말이 있죠? 한국어로는 혹은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매니아, 예수 매니아, 교회 매니아가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꾼, 예수꾼, 교회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열심 있는 신앙을 추구합시다. 회개하여 마음 중심에 주 예수님을 모십시다. 성령님을 모십시다.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3:20-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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