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30, 2019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을 믿으니
15:1-7; 4:16-25 (2019 6 30. 미국독립기념주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12:1-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아브람이 즉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칠십 오세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나안 지역에 들어와 생활한 지 십여 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5:1).
그때 아브람이 반문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주의 말씀을 좇아 내가 이곳 가나안으로 들어온 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무자(無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약속하신 것과는 달리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15:2, 3).
그러자 경색하시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15:4).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천막에서 밖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온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5).
그 말씀을 듣고서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롬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 받은 것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 일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율법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후에 태어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때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때는 무려 6, 7백년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건대,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 받은 것은 결코 율법준수를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해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그가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신을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 말씀하시니 그 약속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여전히 아브람이었을 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만약 네가 그것들을 셀 수 있을 진대,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5).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을 때는 아브람의 나이가 이미 85세 정도 이르렀을 즈음입니다.
자신과 아내의 늙은 나이를 고려할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나무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여전히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설령 자신의 나이가 85세를 넘었다 해도 자손 번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되리라 말씀하신다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결국 바로 이런 믿음을 보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셨고, 그 믿음을 그의 의로 간주하셨습니다.
4:18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아브라함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가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약속을 믿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가 참되다 혹은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믿음이란 그 무엇 혹은 그 어떤 존재에게 온전한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한 신뢰를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의 선행 결과 때문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셨고, 그의 후손을 크게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명성을 크게 하셨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할렐루야!
미국을 위대하게!”이란 구호가 다시 들려옵니다. 아니 이젠 계속적으로 미국을 위대하게!”란 구호로 바뀌어 들려옵니다. 그런데 질문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그 해답을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미국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영광 회복을 꿈꾸십니까? 교회성장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교회를 위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나아갔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믿고서, 그 확고한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미국이 하나님의 약속을 좇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교회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위대하게 하겠다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좇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로?
존 맥아더 목사께서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실까?(Can God Bless America?)란 저서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뿐 그분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국가 이념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성경적 도덕관을 거부하고, 그분의 말씀을 외면하며, 윤리적 가르침에 의거한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것만 의지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 때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을 위하여 개티스버그 연설만큼이나 중요한 다음과 같은 연설문을 작성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국가적 금식 선포령이었는데, 1863 4 30일 목요일을 특별히 선정하여 범 국가적 겸비, 금식 그리고 기도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링컨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지하는 것은 각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들도 마땅히 껴안아야 할 책임입니다. 겸비한 자세로 통회하며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면서 그와 동시에 참된 회개가 우리를 자비와 용서로 이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모든 역사가 입증한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한 모든 나라는 정녕 축복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에게 절대적 신뢰를 갖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요 책임입니다.
미국은 하늘로부터 임한 가장 좋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 어느 나라도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숱한 축복을 이 나라는 누렸습니다. 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또한 정치적으로나 부강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하나님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평화를 누리고,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강해 질 수 있도록 도우셨던 자비의 손길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신명기 28:1-2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그렇습니다. 미국이 위대해질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 것이 미국이 다시금 치유와 회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약입니다.
우리는 19세기의 위대한 부흥사 무디 목사께서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임종을 앞 둔 시간에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죠? “만약 하나님께서 네 인생의 파트너이시라면, 너의 계획을 크게 갖거라!”
아멘,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파트너로 모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계획이 온전히 성취되게 하실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그를 위해, 그분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동일한 선택을 우리 역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으리란 생각으로 소유한 것을 붙잡고서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고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위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마땅히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와싱턴의 미국을 위한 기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독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이 기도문을 함께 읽어보길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주께서 미국을 주의 거룩한 보호 속에 지켜 보호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께서 온 백성에게 기꺼이 정부에 예속되고 순종하고픈 정신을 갖도록 도와주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또한 미국의 온 백성을 향한 형제애와 사랑을 갖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주의 뜻이 우리 가운데 가장 은혜롭게 임하여 복된 신앙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우리가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박애와 겸손과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하시고, 겸손한 배움 없인 결코 이룰 수 없는 행복한 민족을 꿈꾸게 하옵소서. 우리의 간구를 허락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riday, June 28, 2019

신념(信念)과 대가(代價)




신념(信念)과 대가(代價)
신념에 따라 56명의 식민지 사람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56명의 남성들 중 5명이 영국인들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당하며 죽어갔습니다. 12명은 가택 수색 중 발견되어 화형(火刑)에 처해졌습니다. 2명은 독립 전쟁터에서 소중한 아들들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다른 1명은 두 아들들을 적군의 손에 내주어야 했습니다. 56명 중 9명은 전쟁 때 당한 부상과 힘들게 싸우다 죽어갔습니다.
부유한 농장 주인이자 무역상이었던 버지니아의 카터 브랙 스톤(Carter Braxton)은 자기 상선들이 영국 해군의 대포에 맞아 침몰되는 것을 눈물 흘리며 지켜보아야 했고, 집과 토지 모두를 팔아 빚을 갚고서 가난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요크 타운 전투(At the battle of Yorktown)에서 토마스 넬슨(Thomas Nelson)의 집은 영국의 콘월리스 장군(General Cornwallis)에게 빼앗겨 영국군의 지휘 본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넬슨은 조지 와싱턴 장군(General George Washington)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자기 집을 향해 대포를 퍼붓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집은 완전히 전소되었고, 넬슨은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존 하트(John Hart)는 죽어가는 아내의 임종 병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의 열세 자녀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그의 모든 전토와 방앗간은 파괴되었습니다. 1년이 넘도록 숲과 동굴에서 살았는데,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내는 이미 사망했고 자녀들은 집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심신이 극도로 피곤했던 그도 사망했습니다.
위의 역사 기록이 전하는 가르침은 결코 달콤하진 않습니다. 영국의 폭정으로부터 미국 식민지의 독립을 꿈꾸고,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힘든 여정에 동참한 이들에겐 분명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너무나 잘 스며들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의 정치적 결합을 해체하고, 세계의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연법과 자연의 신의 법이 부여한 독립, 평등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인류의 신념에 대해 엄정하게 고려해 보면서 독립을 요청하는 여러 원인을 선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확고한 신념은 그들로 하여금 힘들고 고된 독립운동에 기꺼이 동참토록 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들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모두에게 막대한 고난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건대, 신념을 현실화하는 것은 달콤한 이상만이 아니라 막대한 고난의 대가(代價)도 기꺼이 껴안아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독립과 자유는 결코 값없이 주어진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독립과 자유를 위해 막대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했던 이들에게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지극히 옳습니다.



2019. 6. 30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주일성경공부(오전 9:30-11:00)가 ”마가복음의 발견 1” 교재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습 동참을 희망자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3. 화요성경공부는 지난 6월18일을 끝으로 종강했고 8월에 다시 개학합니다. 

4. 속 인도자/속장 모임이 오늘 2부 친교 후에 있습니다.

5. 2019년 서부지역 목회자 가족 수련회가 7월 8-11까지 맘모스 레이크 수련장에서 있습니다.

6. 2019년 서부지역 평신도 지도자 수련회가 “회복(Restoration)”(강사: 이덕주 목사, 정희수 감독)이란 주제를 가지고, 8월 19-22일에 레익타호 Zephyr Point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희망하신 분은 목사님께 연락바랍니다.

7. 목회사역 오리엔테이션이 Aldersgate UMC of Tustin에서 8월 24일 오전 10시-오후 3시까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연락바랍니다.

8.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9. 헌화 및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0.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Sunday, June 23, 2019

꿈꾸는 교회가 됩시다



꿈꾸는 교회가 됩시다
2:14-21 (2019 6 23)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성령께서 오시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영어성경은 환상비전(vision)”으로 번역합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해, 성령께서 오시면,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오시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연로하신 분들도 꿈을 꿉니다. 간혹 꿈 이야기를 하노라면, 어떤 분들은 이 나이에 무슨 꿈을?”이라고 대꾸하십니다. 하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연로하신 분들도 꿈을 꿉니다. 성령께서 그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로 들어서, 아브람(아브라함) 75세 때 하나님께서 계시한 꿈을 보았고, 그 꿈을 좇아 고향과 친척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오늘날 이스라엘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모세는 80세 때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계시 받았습니다. 호렙산에서 불 붙은 가시덤불로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애굽으로 들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그래서 그 명령을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꿈으로 인식하고서 모세는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찌 보노라면,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슬픈 때는 꿈을 상실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허송세월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꿈을 갖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부어주심을 간구해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꿈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성령 부어주심을 간구할 이유는 꿈을 갖기 위함입니다. 우리교회가 성령 부어주심을 간구할 이유는 꿈을 되찾기 위함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흔히들 세상 사람들에게 말세란 어두운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세는 어둡거나 침울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세는 설렘과 꿈이 있는 시간입니다. 희망과 비전의 시간입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느냐고요? 오늘 본문 17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말세, 즉 어두운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의 영을 그의 백성에게 부어주십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데,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이 예언합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봅니다. 또한 연로 하신 분들이 꿈을 꾸게 됩니다. 모든 말입니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령을 받는 자마다 예언하고, 환상을 보며, 꿈을 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실 대상은 제한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 자녀들과 젊은 청년들, 또한 노인들 모두가 그 대상입니다. 곧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그 축복의 대상입니다. 할렐루야!
한편으로, 주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성령은 성결의 영입니다. 성령은 능력의 영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바로 그 영을 자기 제자들, 곧 우리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 주 예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참고로, “예언,” “환상,” “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미래에 관해 말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곧 세상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고, 모두가 낙심하고 포기한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을 꿉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꿈꾸는 자들입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꿈을 먹고서 살아갑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교회로 하여금 미래에 관해 말하게 하시고, 환상을 보도록 하시며, 꿈을 꾸게 하십니다.
사실 교회에 예언과 환상과 꿈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꿈은 마치 공기와 같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듯, 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꿈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사라집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닙니다. 꿈이 우리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쉽게 상처 받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노라면, 대부분 꿈이 없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말을 듣던지,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비난이나 조롱의 말을 들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힘든 환경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꿈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교회는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하며, 계획을 구상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교회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 좋은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런 요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문제로 여기는 것이 문제로 보이기보단 오히려 기회로 보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가장 관심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을 받기 위해 힘써 기도하는데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로 오시면, 정녕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서 할 수 없다란 문장을 지워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교회는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해하기엔, 교회의 위기는 눈에 보이는 외적 조건 악화가 아닙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이 교회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위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며 그와 동시에 허락하신 예언과 환상, 꿈이 교회로부터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예언과 환상과 꿈을 허락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더불어 거룩한 꿈을 이루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대한 꿈을 품고서, 그 꿈의 성취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주시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하나님께서는 특정 사람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고, 그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들어 사용하겠다란 의미로 꿈과 환상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꿈과 환상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약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모두로 하여금 상상하지 못한 꿈을 꾸도록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전혀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전혀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마음이 달구어지고 뜨거워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에 열정으로 넘쳐납니다.
18세기 영국을 뜨거운 부흥의 물결로 인도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한 주간에 무려 40-60시간씩이나 설교했다고 합니다. 매주마다 40-60시간 설교하려면, 엄청난 말씀의 지혜가 있어야 하고, 쉼 없는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늘 가슴이 뜨거워져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넘쳐나야만 합니다. 물론 그런 지혜와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에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합니다. 곧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 있어야 가능합니다.
조지 휫필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녹슬어 없어지기보단 닳고 닳아 사라지고 싶다.” 참으로 멋진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녹슬고 맙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단 힘써 그것을 사용함이 옳습니다. 사용하고, 또 사용하기에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옳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녹슬어 사라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다가 떠나면, 결코 우리에게 후회는 남진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입은 자가 거룩한 꿈을 품고서 인류역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성령에서 주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그런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가 있기에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있기에 이 지역사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는 2천년 전 오순절만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바로 오늘이 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모두에게 바로 오늘 부어 주시려 하십니다. 우리가 예언하도록. 우리가 환상을 보도록, 우리가 꿈을 꾸도록.
왜요?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온 세상 영혼에게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우리가 온 세상 나라와 민족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성령이 임하셔야 마음이 열립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린 가슴으로 모두를 품어야 합니다. 
어느 독일 신학자가 말했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뜻은 단수이다. 단 하나이다. 물론 그것은 모든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과 일치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이 세상 나라 확장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써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여, 주 예수의 군사들이여, 우리 모두 성령충만을 위해 힘써 지속적으로 기도합시다. 아멘?

Be A Dreaming Church




Be A Dreaming Church
Acts 2:14-21 (June 23, 2019)
According to the prophecy of the Prophet Joel quoted by the Apostle Peter in today’s text, when the Holy Spirit comes, young people will dream dreams. Some English Bible translates "dream" into "vision". In this sense, when the Holy Spirit comes, young folks will see visions. In other words, when the Holy Spirit comes, they will know the reason and purpose of their existence and make the best effort to live up to the life purpose.
Also, when the Holy Spirit comes, not only young people but also aged ones are dreaming. As told about a dream, some older people say in reply, “What dream can I have at this age?” But those who are old can also dream, for the Holy Spirit makes them have dreams.
For example, at the age of 75, Abram (Abraham) saw a dream revealed to him by God, and left his hometown and relatives to follow that dream and walked into the unknown. And eventually settling in Canaan, he laid the foundations of Israel today.
At the age of 80, Moses received a dream from God. On Mount Horeb, he heard God’s voice from a thorn bush that was still on fire but not consumed. “Go into Egypt and rescue my people Israel!” So Moses recognized God’s command as his life vocation and went into Egypt in obedience.
I wonder if the saddest thing in this life maybe is the loss of dream. Without a dream we cannot wait for anything good but spend our days in despair.
But we can have a dream. It is for the reason that the Holy Spirit helps us to dream. So one of the reasons we should ask for the Holy Spirit is to have a dream. The reason why God’s Church prays for the anointing of the Holy Spirit is to have a dream. The reason to pray for the Holy Spirit is that we can restore our dreams. We must pray hard so that we can dream dreams wth the Holy Spirit again.
Often for the people of the world, the last days mean to be dark and gloomy. But for the people of God, the last days are not dark or gloomy. The last days God speaks to us are not of sorrow but of dream. They are of hope and vision.
How can we know it? Let us look at verse 17: “‘In the last days,’ God s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In the last days,’ God s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The people of the world think the last days are dark and gloomy, but in those days God pours out his Spirit on all people. He sends his Spirit, the Holy Spirit, upon all flesh.
And as touched by the Holy Spirit, children prophesy. Young people see illusions. In addition, the elderly will dream dreams. What does it mean? It means that, regardless of sex, whether young or old, anyone who receives the Holy Spirit will prophesy, see fantasies, and dream dreams. Hallelujah!
The Spirit’s coming is not excluded to anyone: not to any class, not to any sex, and not to any age. It means we who are sitting in this room are also the very ones to receive the blessed Spirit from above.
In addition, the Lord Jesus himself promises us as follows: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 (JN 14:16).
The Holy Spirit is the Spirit of God. He is the Spirit of wisdom. He is the Spirit of sanctification. He is the Spirit of power. The Lord Jesus promised to send the very Spirit to his disciples, that means, to us. Therefore, all of us should desire the promised gift from God to come to us, the promised gift from the Lord Jesus to visit us.
For reference, the commonality among the three vocabularies "prophecy," "vision," and "dream" is that they all consistently speak of the future. In the last days, the people of the world don’t have hope, but are discouraged and given up; however, God pours out his Spirit upon us and makes us talk about the future and dream about the future. That's right. When the Holy Spirit comes, we all can dream about the future.
We Christians are dreamers. Not giving up a dream in any circumstances, we can keep dreaming. The Holy Spirit makes God’s people prophesy, see visions, and dream dreams.
In fact, it is truly miserable if God’s Church loses prophecy, vision, and dream. Dreams are like air. We cannot live without air, in the same way, we cannot live without dreams. Without dreams, our life has no meaning. Even though breathing, it is no use. A Dream brings us energy and dynamics.
If observing the people who get easily hurt, many do not have dreams. But if dreaming, they are not disturbed easily. Even though hearing any criticism or ridiculous words, their hearts are not melted. No matter how hard circumstances are before them, they are not discouraged. It is because of the dream in their hearts. So we must keep dreaming.
In fact, God’s Church must be a gathering of dreamers. We shall focus on the present days, not on the past. We shall talk about the future, pray and plan for the future things. Of course, in order to be transformed into such a church, we shall first be anointed by the Holy Spirit. We shall be filled with his Spirit.
Dear brothers and sisters, let us not complain that the church lacks good programs. Let us not be discouraged that there are not many people in the church. In fact, they are not very important issues. What is really urgent is whether we a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or not.
If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we can do everything. If we a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such issues become opportunities rather than problems to us. Therefore, the most important concerns for us is to pray for the anointing of the Spirit from above. When the Holy Spirit resides among us, a new future will surely be opened before us.
We have to erase the thought "I cannot!" from our heads. If the Holy Spirit is with us, there is nothing impossible for us. It is because there’s no impossibility with God’s Spirit. When the Holy Spirit is with us, a new history begins before us.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God’s Church should be a community of the faithful, marching forward.
To my understanding, the crisis is not about bad circumstances we can face in the church. The real crisis is that we are no longer prophesy, and have visions and dreams from God. The greatest crisis is that God’s prophecy, vision or dream is not revealed anymore. Then how about our church?
God allows us to have his prophecies, visions, and dreams. It is because he wants to invite us to his dreams. As his Church, we must strive to dream big and devote ourselves to the fulfillment of his divine dreams.
In fact, God keeps sharing his thoughts with us. It means that he wants us to work with him. If we look at the Bible, God first shares his dreams and visions with certain people and invites them to work with him. It means that God wants to use them as his tools. So in Old Testament days, for this purpose, God’s dreams and visions were revealed to certain individuals in advance.
But surprisingly it is not the case in the New Testament any longer. God pours out his Spirit upon all people. So the Holy Spirit helps us to dream that we’ve never imagined. The Holy Spirit leads us into a new world we’ve never imagined. He leads us to a totally different experience that we’ve never had before.
Furthermore, when the Holy Spirit comes, our hearts become warm. When he comes, our hearts are overflowing with passion.
George Whitefield, who led the Great Revivals in England in the 18th Century, preached about 40-60 hours a week. Wow! To preach for 40-60 hours each week, he should have had enormous divine wisdom as well as restless energy. His heart should have become in warmth without ceasing and overflowing with passion. Of course, such wisdom, energy and passion do not originate from man, but from above. It was only possible when he had been filled with the Holy Spirit.
George Whitefield had once said this way: “I would rather wear out than rust out.” His life looks amazingly wonderful to me.
Dear brothers and sisters, no matter how good our talent is, it will rust if it is not in use. We should use it, rather than let it rust out. We should let it worn out because we keep using it. In the same manner, we should not let our life rust out but live it with dreams and passion. If living it so hot and passionately, no regret wills come to us at the end of our days in this life.
Only those who are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can see holy dreams and exert a good influence on human history. So we must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We must have dreams from the Holy Spirit. There can be found hope from such people. Such people can give hope to God’s Church and to their community.
“‘In the last days,’ God s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Acts 2:17). The last days God spoke were meant not only the days of Pentecost 2,000 years ago, but todays we live now. This very days God wants to pour out his Spirit upon us. He wants us to prophesy. He wants us to have visions. He us wants to dream dreams.
Then why? The reason is that we can have God’s heart as well. We can open our hearts to all souls, so that we can embrace all nations and races in this world and bring them back to God.
Of course, only when the Holy Spirit comes to us, our hearts can be open. Only when the Holy Spirit comes, we can be set free from prejudice and grudge. God’s Church must have a big heart. With that open heart, we must embrace all souls.
One German theologian said: “In the New Testament, God's will is singular. It is singular. It is to save all people. It is the same purpose God has sent the Son into our world. It is to expand His Kingdom on earth.” He was perfectly right. The purpose of God’s Church's existence is not to expand the kingdom of this world but the Kingdom of Heaven. Our purpose as a church is to participate in expansion of the Heavenly Kingdom on earth. Of course, to become such a blessed congregation, we must be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Therefore, O God’s People, O Jesus Christ’s Army, let's keep praying for the Holy Spirit and let his mighty power overflow in us for His name’s sake. Amen?



Sunday, June 16, 2019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5:21-27 (2019 6 16. 아버지주일)
에녹 전후 세대에 관한 기록은 누가 누구를 낳고로 계속 이어집니다. 물론 에녹에 관한 기록도 “(에녹이)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21)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처럼 에녹 역시 자식을 낳고, 낳고, 또 낳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22).
물론 자손을 번성케 하는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찌 보노라면,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명령에 충실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시니라”( 1:27, 28).
이런 맥락에서 볼 것 같으면, 에녹은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했습니다. 또한 일찍이부터 자녀를 낳길 시작했는데, 육십오 세 때 첫 아들 므두셀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계속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살아가는 동안) . . . 자녀를 낳았으며”(22). 글쎄 에녹이 모두 몇 명의 자식을 낳았는진 잘 모릅니다.
그런데 22절에 삽입된 말이 특이합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육십오 세 때에 므두셀라는 낳은 후 삼백 년 동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바로 이것이 에녹의 삶을 그의 전후 세대와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낳고, 낳고가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며낳고 낳았던 것입니다.
성경엔 하나님과 동행(同行)한 사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소개되었는데, 하나는 노아이고( 6:9),  다른 하나는 오늘 주인공 에녹입니다( 5:24).
65세에 므두셀라를 얻은 후 에녹이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므두셀라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당시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므두셀라가 태어날 때 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얻은 아들에게 므두셀라란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 이름은 죽음’(무트, death)”보내다(샬라크, send)”란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죽음을 보내다.” 전체적 문맥상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란 의미로 해석함이 좋을 듯싶습니다. 참고로, Newberry라는 성경학자에 의하면, 그 이름의 뜻은 “창 던지는 사람”입니다. 고대 부족들의 싸움에서 상대 부족을 끝장내려면 가장 창을 잘 던지는 상대를 처치하면 끝장난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아들을 얻을 때 에녹이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심판 경고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첫 아들에게 그런 이름을 지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자다가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기억하고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물론 심판자리에 섰을 때 부끄럽게 발견되지 않도록 매일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힘써 살았습니다.
1:14, 15을 보노라면, 에녹의 삶이 그렇게 급격한 변화를 보이게 된 힌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하였느니라”( 1:14-15). 장차 닥칠 큰 홍수 심판을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듣고서 에녹이 사람들에게 경고 의미에서 그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예언 후 에녹은 지속적으로 예언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첫 아들 므두셀라와 그 후 태어난 모든 자녀를 경건한 삶으로 인도하고 힘썼습니다.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은 그의 아들 므두셀라가 969세에 죽었는데, 그가 죽은 후 그 다음 해에 노아 대홍수가 임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미리 보여주신 계시가 므두셀라가 죽은 후에 현실로 임한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이것은 에녹이 평소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려 얼마나 므두셀라와 다른 자녀들을 경건한 삶으로 인도하려 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한편으로, 에녹이 살던 시대는 노아 홍수 이전이기에 사람들이 극도로 방탕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쾌락을 좇았습니다. 죽기 전 실컷 놀고 먹고 즐기며 살아가겠다 작정하고서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에녹은 달랐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과 같이 살지 않고, 에녹은 하나님과 늘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경외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까? 특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심판 날이 가까워 올수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건히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두려움을 잊고서 살기에 수많은 이들이 경건한 삶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과속했습니다. 그래서 교통경찰이 세워보니, 아뿔싸 그들이 신부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봐주려고 "아실 만한 분들이, 천천히 다니십시오. 사고 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신부님이 이렇게 화답했답니다. “걱정 마십시오.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듣고서 경찰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스티커를 끊겠습니다. 정원초과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동행(同行)”이란 문자 그대로 같이 길을 가다란 뜻입니다. 멀고 험한 인생길을 가면서 에녹은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고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같이 걸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갔으며,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비록 세대가 악하다 해도, 세대 탓하기보단 에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 힘썼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에녹의 삶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대를 탓하지 맙시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맙시다. 우리 자신만이라도 이 세대에 에녹과 같은 삶을 살아갑시다.
어찌 하여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 에녹을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쁘게 보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에녹의 삶을 인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의 믿음을 언급하며 이렇게 기록합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11:6).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힘썼던 에녹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곧바로 하늘로 오르게 하셨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24).
구약 성경을 보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두 사람이 소개되어 있는데,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은 죽어 땅에 묻히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엘리야도 불 병거가 호위하는 가운데 회리 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신약성경 행 1장에 보면, 예수께서도 십자가 죽음 후 부활하셔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한편으로, 당대 사람들의 수명과 비교할 때 에녹의 수명은 지극히 짧았습니다. 에녹의 아버지 야렛은 962년을 살았고, 그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에녹은 겨우 (?) 365세만 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짧고 굵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로서 얼마나 오랫동안 가족과 머물러 있느냐 보다 어떤 삶의 흔적을 그들에게 남기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많은 돈과 재물을 남겨주려 하지 말고 확실한 삶의 흔적, 삶의 의미를 남겨주려 힘써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아버지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워렌 버핏은 그의 자녀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10억의 유산보다 한 푼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에녹은 자식들에게만 경건의 본을 보인 것만이 아니라 그의 후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1: 5-6) 에녹이 후대에 전하고픈 메시지는 믿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흔히 자식을 낳게 되면, 당연히 아버지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노릇을 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죠? 낳은 자식에게 본이 되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빠, 있잖아요? 난 다음에 커서 꼭 아빠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라고 자녀들이 말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일 것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우리 아버지를 닮고 싶습니다”라는 자녀가 말을 한다면, 그는 아버지로서 가장 성공한 사람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모든 아버지들이 바로 이런 축복된 분들이길 바랍니다.
명심보감에 이렇게 가르칩니다. “삼강(三綱)이라 함은 임금은 신하의 본이 되고, 아버지는 자녀의 본이 되며, 남편은 아내의 본이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묻습니다. “왜 내가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죠?”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오늘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다짐했으면 합니다. “오늘부터라도 에녹처럼 본이 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성도 여러분, 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아버지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정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아버지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아버지가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감당할 본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를 읽어드리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1952 5)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 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 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아들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Enoch, Walking with God



Enoch, Walking with God
Gen 5:21-27 (June 16, 2019. Father's Sunday
The genealogy of the people before and after Enoch repeats the same thing like this: “Who gave birth to whom.” Of course, Enoch’s is not different: “When Enoch had lived 65 years,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vs  21). Like many others in his generation, Enoch also gave birth to his offspring again and again. But here’s what we have to pay special attention to: “And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Enoch walked with God 3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vs 22).
Of course, I never mean that the prosperity of offspring is bad. Actually it is an obedient life to the command from God in the very beginning of Creation: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God blessed them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creature that moves on the ground’” (Gen 1:27-28).
In this context, Enoch was faithful to what was commanded to him by his Creator. He also began to reproduce his offspring from his early days. At the age of sixty-five he had his first son, Methuselah, and after that, he continued to have more. “And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Enoch walked with God 3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22). We don’t know to how many children Enoch had given birth.
However, there’s a very unique phrase inserted to verse 22: “And after he became the father of Methuselah, Enoch walked with God 3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At the age of sixty-five, he gave birth to his first child, and then for three hundred years after the first one’s birth, Enoch began to walk with God. “Walking with God.” It made his life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lives of those who were before and after him.
In the Bible there are only two individuals who were walking with God: One is Noah (Gen 6:9), and the other is Enoch, today’s main character (Gen 5:24).
At the age of 65, after Methuselah’s birth, Enoch lived a life walking with God for three hundred years more. It strongly suggests that he may not have lived a life walking with God before the birth of his first son Methuselah. Until Methuselah came to existence, there was no record that Enoch was walking with his Creator, and it seems that his life was no difference from any others of his time. However, when Methuselah was born, somehow he met a significant turning point in his life.
After having a son, Enoch named him “Methuselah” which is a combination of two words: “death” and “sending.” It means “He sends off death.” In the context of the whole, we could understand that name like this: "Judgment will fall after his death." For reference, according to a biblical scholar named Newberry, that name means "a spear thrower." In order to end a tribal war in the ancient world, the one who killed the best spear thrower would win the war.
It seems that Enoch was warned with a severe judgment from God about the time he got his son. Otherwise, there is no reason for him to give that name to the first offspring. Every time calling that name, Enoch thought of God's imminent judgment. While eating, working, and sleeping, he tried his best to live a godly life, remembering that God’s judgment would come soon. By living a godly life, of course, he would avoid to be found ashamed when standing before God’s judgment.
In Jude 1:14-15, we can find a clue to the possible causes of Enoch’s dramatic life transformation: “Enoch, the seventh from Adam, prophesied about these men: ‘See, the Lord is coming with thousands upon thousands of his holy ones to judge everyone, and to convict all the ungodly of all the ungodly acts they have done in the ungodly way, and of all the harsh words ungodly sinners have spoken against him.’” After hearing from God about a great flood to come, Enoch prophesied it. After his prophecy Enoch still continued a life as a prophet. And he led not only himself but his first son, Methuselah, and all the other children born after Methuselah, to a godly life.
An interesting and surprising fact found is that Methuselah died at the age of 969 and then the Great Flood followed the next year. In other words, God’s warning given to Enoch came to reality right after Methuselah’s death. It explains how hard Enoch tried to lead Methuselah and his entire family to a godly life in order to escape from God’s Judgment.
On the other hand, the people of Enoch’s days were extremely sinful. What they sought was nothing but their own pleasure. Before their deaths, they decided to live happily by eating and drinking with no restraint. However, Enoch was different. He did not live like those in his time, but tried to please God at his best.
In order to walk with God, we must always feel his presence with us and live in awe. To fear God is to be aware of his holy presence. Dear brothers and sisters, are you fearing your God? Do you fear his Judgment? As his Judgment is closer and closer, we better be aware of it more and more every day but unfortunately there’re so many people who are ignorant of it and cannot escape from it in the end. 
Two people were riding on the same motorcycle but speeding. So the policeman stopped them and found that they were priests. Trying to let them just go, he said, “I think you know speeding is dangerous. Please drive in safety, otherwise, you will have an accident.” In reply, the driver answered, “Don’t worry for Jesus is riding with us.” As hearing his saying, the policeman said, “Then I will give you a ticket for an excessive number of people.”   
“Walking with someone” means “going the same way together.” Enoch was taking a long and difficult journey of life, but he did not walk it on his strength or wisdom. He was always trying to walk with God. He never let go off God's hands, but faithfully followed God's guidance and will. He gave priority to God's will rather than his own. This kind of his life had pleased his God.
Even if the generation was evil, he didn’t blamed the generation. Instead, Enoch tried extremely hard to draw himself near to God with fear of his God, and as a result, God was greatly pleased with Enoch's life.
Anyway, God was really pleased with Enoch, who was loyal to God. It means that God acknowledged Enoch’s effort. Thus the author of the Epistle to Hebrews mentions Enoch's faith and life as follows: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Heb 11:6).
Furthermore, Enoch, striving to have a life to glorify God, did not taste death on this earth but was invited straight to heaven. “Enoch walked with God; then he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away” (Gen 5:24).
In the Old Testament, there are only two people who have gone up to heaven without dying: Enoch and Elijah. Enoch died and was taken to heaven without being buried in soil. Elijah went up to heaven in a whirlwind while escorted by a fire-chariot. Of course, in the New Testament, after his death and resurrection, Jesus also rose to the sky before the eyes of his faithful followers.
On the other hand, Enoch’s life span was very short comparing with the life spans of his contemporaries. Enoch's father Jared lived 962, and his son Methuselah lived 969 years. But Enoch lived only 365 years old. However, his life was short but outstanding.
As a matter of fact, it is more important to leave a trace of life to the children than a long life he has stayed with his family as a father. We better not attempt to leave much money and riches, but leave a good example of life to our children. I hope that all the fathers who are here today will have such a beautiful life.
Warren Buffett, one of the world's wealthiest, has promised not to leave a big fortune to his own children. Instead of leaving a billion heritages, he wanted to teach them the worth of a penny.
Furthermore, Enoch not only showed his children an example of a pious life, but also left all his future generations with a very important message: “By faith Enoch was taken from this life, so that he did not experience death; he could not be found, because God had taken him away. For before he was taken, he was commended as one who pleased God.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Heb 11:5, 6). The message that Enoch wanted to leave to his future generations was about “a life that would live as just believing.”
People often think they are a father as a child is born from them. But it is not easy like that. It is never easy to become a good father to the children. "Dad, you know what? I want to be an adult just like you when I grow up.” If they say like that to their father, he would be the happiest father in the world. If the children say, "I want to become just like my dad," he is the most successful figure as a father.
Myungsimbogam(literally meaning “Keep in mind a handbook”) teaches as follows: “The three basic principles in human relations are the king is the pattern of the subjects; the father is the pattern of the child; and the husband is the pattern of the wife.”
Children ask, “Why should I call you father?” How would you answer?
I hope we can all speak to ourselves as follows today: “From today I will do my best to become a father like Enoch. For my family, for those who love me.”
Let us try to be a father who always reveres God. Let us try to be a father who places God in the highest priority of the family. Let us be a father who values God's joy as the greatest value of the family. And here’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a father to do. It is that a father should pray for his children and all his family. Therefore, I will end today’s message after reading you “General MacArthur's Prayer for His Son”:
General MacArthur's Prayer for His Son
Build me a son, O Lord,
who will be strong enough to know when he is weak;
and brave enough to face himself when he is afraid;
one who will be proud and unbending in honest defeat,
and humble and gentle in victory.

Build me a son
whose wishes will not take the place of deeds;
a son who will know Thee ?
and that to know himself is the foundation stone of knowledge.

Lead him, I pray, not in the path of ease and comfort,
but under the stress and spur of difficulties and challenge.
Here let him learn to stand up in the storm;
here let him learn compassion for those who fail.

Build me a son
whose heart will be clear, whose goal will be high,
a son who will master himself before he seeks to master other men,
one who will reach into the future,
yet never forget the past.

And after all these things are his, add, I pray,
enough of a sense of humor,
so that he may always be serious,
yet never take himself too seriously.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meekness of true strength.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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