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4, 2019

우리는 영적 가족으로 부름 받았다



2:10-18 (20192 24일 주일예배)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창조하셨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이해하고 동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그의 가족과 더불어 나누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시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길 바라셨습니다”(10절 상반절. 쉬운성경).
피조물로써 창조주의 영광을 더불어 나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그의 영광을 누리고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선한 바램이 있다면, 10절을 눈 여겨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시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을 완전한 구원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10).
이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특권은 피조물 모두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가족 된 이들만 누릴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살아가는 자들에만.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라는 찬송을 아시죠?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의 피로써 우리는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고, 그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12:46-50을 보면, 어느 날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께 나아와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그때 그 말을 전한 사람에게 예수께서 이렇게 되물으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변에 있던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영적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절대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 우리가 알고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일까요? 6:29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일러주십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세주로써 이 땅에 보내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를 흘려주신 바로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그 십자가의 공로를 믿습니까? 그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피를 흘리셨음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 보혈로 인해 모든 죄가 말끔히 씻겼음을 믿습니까? 만약 그의 보혈로 씻음 받았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일원이 되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마을에 연년생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형보다 성격이 좀 괴팍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싸우면 늘 동생이 형에게 집니다. 사실은 형이 동생을 이긴 것이 아니라 동생이 형을 이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그 형과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말다툼하다가 결국 주먹 다짐으로 번졌습니다. 한창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강한 펀치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그 동생 녀석이 자기 형을 도우려 싸움에 끼어든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누가 이겼겠습니까? 보나마나 둘이 팀을 이루어서 싸운 쪽이 승리했지요. 그날 싸움이 끝난 후 얼마나 분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 피로 맺어진 형제관계가 얼마나 무섭고 강한지도 깨달았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지요? 피로 맺어진 관계는 정말로 진합니다.
혈육관계가 그토록 끈끈하다 하다면,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맺어진 영적 가족은 얼마나 더 끈끈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맺어진 관계가 혈육관계보다 더 강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육체적 혈육관계는 이 땅에서 삶이 끝나면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하지만 영적 가족관계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세계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육체적 혈육관계보다 영적 가족이 더욱 강하고 영원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맺어진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성부, 성령 하나님을 한 부모로,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형제로 모시고 살아가는 영적 가족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가족 관계는 죽음으로써 끝나고 말지만, 영적 가족관계는 죽음도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영적 가족관계는 영원에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8:35).
성경은 하나님은 그의 가족 된 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자가 자기의 젖 먹는 아이를 잊겠느냐? 자기가 낳은 아이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 혹시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보아라.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적었다. 예루살렘아, 내가 언제나 네 성벽을 내 마음에 두고 있다”( 49:15, 16. 쉬운성경).
만약 이것을 사실이라면, 우리는 영원까지 이어질 영적 가족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 가족, 즉 교회식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진정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교회에 얼마만큼이나 애정을 쏟고 있는가? 육체적 가족에 부어주는 만큼의 애정을 교회에도 붓고 있는가?
정말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적 가족이 되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교회 식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가정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6:10. 쉬운성경).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되 특별히 믿음의 가족에게는 더욱더 열심을 내어서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 보면, 테레사 수녀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만큼 사랑을 쏟았는지가 중요하다”(168).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았느냐가 진정 중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가족에게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나의 두 아들 녀석들은 어렸을 적에 아빠가 함께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줄곧 “아빠, 골프 게임 할래요? 아빠, 단어 맞추기 게임 할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빠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와이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줄곧 오후 시간에 차를 끌고 해변가로 나갔습니다. 별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찾느라 이러 저리 운전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날엔 어느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침 일찍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좁은 차 안에서 네 명이 잠을 자노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와 아내는 거의 뜬 눈으로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은 코를 골면서 잠만 잘 자더라구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 후 맥도널드에서 아침식사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아들들은 자주 나를 들볶습니다. 언제 다시 밖으로 나가서 야영하느냐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와 먹고 자고, 아침이면 출근하는 남편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에게 가정은 허기를 채우고 피곤한 육신을 쉬는 삶의 공간일 뿐입니다. 식구들에는 좀처럼 관심도 없고 사랑의 행동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서류에 잠자는 곳을 자기 집주소로 기록하고 그 집에 머무는 자들을 식구라고 기록합니다. 물론 월급을 한 푼도 빼돌리지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가 그 가족 구성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가 될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외박을 하지 않고 받은 월급을 매달 충실히 갖다 주는 성실한 가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가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한 여자에게 남편으로서 그리고 그의 자녀들에게 아빠로서 역할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 집이 유지되도록 경제적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는 좋은 청지기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이렇게 말하면서 영적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변명하려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다음에 하겠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다음에 갖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갖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함께 있기에, 서로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현재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바로 오늘 가족과 함께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은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야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2:42을 보노라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이 나누었던 교제는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모여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2:42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저희가. . .전혀 힘쓰니라”는 말이 눈에 띄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영적 식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더불어 신앙을 키우기 위해 서로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아름다운 교회의 교제를 사모하면서 그런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를 찾아 다닙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교회가 형제자매의 사랑이 넘쳐나는 교제의 장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깊은 교제를 일구어낼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 자신이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깊은 성도의 교제를 만들어갈 자들입니다.
야고보 장로가 전하는 권면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너희들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존중하며 존경하는 노력을 할 때에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건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들을 누릴 수 있다”( 3:18, MSG).
몇 년 전 샌디에고에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세미나 기간 중 오후에 자유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렌트카를 몰고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밖으로 나가보니까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샌디에고가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실 샌디에고는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목격했던 항구 도시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깨끗한 하늘과 푸르른 바다와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는 도시 계획이 정말로 매력적입니다. 씨월드와 샌디에고 동물원 그리고 볼보아 공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디에고를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 가족이 나와 함께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그곳에 갔더라면, 아마도 그날 오후를 마음껏 즐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지 않은 즐거움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호텔로 들어와버렸습니다. 역시 삶의 기쁨은 가족과 함께 할 때에 가능하더군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은 하나님의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묶어주신 영적 가족을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려 노력해야 합니다. 영적 가족이 있는 곳에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 동참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곳에 동참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곳에 동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가족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합니다. 아멘?



감사패 (Appreciation Plaque)

감사패 (Appreciation Plaque)
(February 24, 2019)




Pictorial History of Woodland Hills "First" U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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