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8, 2018

책이 있는 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책이 있는 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며칠 전 웨스트레이크(Westlake)에 위치한 반스앤노블 서점에 들렀다가 조금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여전히 수많은 책이 나를 반겨주어 기쁘긴 했습니다. 또한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풍겨난 커피 향내가 나의 뇌를 긍정적으로 자극해 행복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웠던 것은 책이 아닌 다른 상품 진열장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곧 전문서점조차 어린이 장난감과 같은 다른 상품에 책이 밀리는 슬픈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윤을 남겨야 회사 운영이 가능하기에 반스앤노블도 생존수단으로서 어쩔 수 없이 책과 함께 다른 상품을 판매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고객의 발걸음을 서점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수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는 실정입니다. 글쎄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반스앤노블도 언제까지나 버틸 수 있을는지. . .
철강왕으로 널리 알려진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기부황제로 잘 알려져 있는데, 특별히 철강사업으로 벌었던 막대한 재산을 공공 도서관 건립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렇다면 카네기가 왜 도서관 건립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렸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그가 꿈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앤더슨이란 은퇴한 한 상인이 자신이 소유한 책 400여 권으로 작은 도서관을 열어 토요일마다 근로 청소년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훌륭한 인물들과 그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곧 책을 통해 카네기는 산 사람, 산 인생을 만나는 간접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훗날 자서전에서 그가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앤더슨은 그 작은 도서관을 통해 지식의 빛이 흐르는 창을 열어주었다.”
크게 사업에 성공한 후 66세 때 (1901) 회사 매각하고서 자기 재산 중 90%를 교육과 문화사업에 기부하겠다고 공언하고서 기부인생으로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도서관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큰 뜻을 품은 자에게 보물을 안겨준다는 그의 말은 책으로부터 그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입증합니다.
한 나라의 과거를 보고 싶거든 박물관으로 가고, 미래를 보고 싶거든 도서관으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펼쳐보면, 시시때때로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그 문장은 그날 하루뿐만 아니라 그 주간, 아니면 한 달, 일 년이 넘도록 지속적으로 마음에 남아 삶의 안내자가 되어줍니다. 수목이 울창한 숲에 들어가면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생각의 순환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서관이나 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크진 않지만 필요한 만큼의 신앙서적이 준비된 교회도서관을 온성도가 활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책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 우리의 미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18. 9. 30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성령강림절 절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열심히 기도로 함께 하기 바랍니다.

3. 정기임원회가 오늘 친교 후에 AV Room에서 있습니다. 모든 임원들은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4. 2018-2019년 구역회가 10월 11일(목) 오후 6:30에 Sherman Oaks UMC에서 있습니다.

5. 속장/인도자 모임은 정기임원회 관계로 10월 7일에 있습니다.

6. 교회 갱신과 부흥 일환으로써 교회 앞쪽 주차장을 활용을 적극 권장합니다. 또한 교회 표어공모전에 적극적 동참바랍니다.

7. 연합감리교회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모임(The Way Forward with Bishop Hagiya)이 9월 29일 오후 1-3시까지 1st UMC North Hollywood에서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석바랍니다.


Tuesday, September 25, 2018

배짱을 가집시다




배짱을 가집시다
18:1-9 (2018sus 923일 주일예배)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엔 올리브 나무가 많았습니다. 그곳은 평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종종 찾으시던 장소였으므로, 뇌물을 받고서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도 그 동산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가룟 유다가 로마 군인들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성전 경비대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타났는데, 그들의 손엔 등불과 횃불과 무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칠 일을 미리 알고 계셨던 예수께서 그들 앞으로 나서서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사람 예수다라고 그들이 화답했습니다. 그러자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예수께서 화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 땅에 엎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러자 그들이 동일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라고 너희에게 말하였으니, 너희가 찾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이 사람들은 가게 하여라.”
자신을 체포해 십자가에 매달려고자 검과 몽치를 들고 온 무리앞에서 예수께서는 전혀 두려움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당당하기만 했습니다. 그가 너무나 당당했기에, 그를 찾으러 온 자들이 오히려 그의 위엄에 짓눌려 땅에 엎드려졌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예수님에게는 든든한 배짱이 엿보였습니다.
또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 받으실 때 역시도 그와 동일한 배짱을 그가 보이셨습니다( 18:19-21).
대제사장이 예수께 예수님이 가르친 말씀과 제자들에 관해 묻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분명히 말하였다. 언제든지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 뜰에서 가르쳤고, 은밀하게 말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 묻느냐? 내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직접 물어 보아라. 그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알고 있다.”
더 나아가서, 빌라도 앞에서 심문 받을 때 역시도 예수께서는 동일한 배짱을 보였습니다(18:33-37).
관저로 들어온 빌라도가 안으로 예수님을 불러 들여 물었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받은 질문에 대답하기보단 오히려 예수께서 되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네 스스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오. 당신의 민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겼소. 도대체 당신은 무슨 짓을 행했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나라였다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잡히지 않게 했을 것이다. 이제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무척 궁금하다는 듯이 빌라도가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녕 왕이란 말이오?”
예수께서 화답하셨습니다. “너는 나에게 왕이라고 옳게 말하는구나. 사실 나는 이것을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것을 위해 세상에 왔다. 나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려고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말을 듣는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 예수께는 든든한 배짱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배짱이 그에게 없었다면, 예수께서는 결코 십자가를 지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고 가는 단호히 결심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26:42). 그가 우리 모두의 죄를 단번에 대속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이 되기로 이미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든 일은 두터운 배짱이 없인 결코 불가능했습니다.
참고로, “gut”이란 영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배의) 창자를 의미합니다. “(섭취한 음식물이 흘러내리는) 창자, 내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What do your guts say to you? (당신의 창자가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창자, 곧 당신의 본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란 질문입니다.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참으로 무엇 하길 좋아하는가?” “내가 어떤 훌륭한 공헌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배짱 곧 대담한 용기를 갖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든 환경에 직면하게 될 때 마다, 우리의 질문의 초점은 하필이면 왜 내가?”가 아닌 왜 나여선 아니 되는가? 왜 내가 해선 않되는가?”로 맞추어져야 합니다.
(이제 내가) 일어서겠다, (내 뜻을) 선포하겠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 변화의 주역이 되겠다, 변화의 시발점이 되겠다, 배의 방향을 되돌리겠다, 기타 등등은 굳은 의지를 필요로 합니다 (p.18. Guts: Find Your Greatness, Beat the Odds, Live from Passion, by Sam Bracken).
삶을 살아가는 동안 스트레스나 고통 없는 삶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삶을 추구한다면, 서둘러 공동묘지를 찾는 게 좋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좇아 살겠다는 배짱을 요구합니다. 그저 그런 삶을 버리고 열정을 좇으며 살아가겠다는 배짱을 요구합니다. 곧 이 세상에서 변화의 주역이 되겠다는 배짱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배짱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겠다는 배짱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믿는 바를 위해 분연한 자세로 일어서겠다는 배짱을 요구합니다. 믿음의 도약을 해보겠다는 배짱을 요구합니다.
길을 계속 가야만 원하는 곳에 마침내 도착할 수 있습니다. 가는 길이 힘들다고, 무척 힘들어 보인다고, 가던 길을 중도에 포기하면 아니 간만 못합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은 직감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우리가 꿈꾸는 최고의 사람으로 발전하고픈 부단한 노력에서 말미암습니다” (p.11, Guts).
만약 우리에게 이런 배짱이 있다면, 모든 환경을 최대한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개선하고, 성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로 배짱을 갖는 것이야말로 삶 속으로 변화를 불러들일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추구하려는 소원을 가슴에 품고서 살아가야 합니다.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 선수 댄 게이블이 말했습니다. “금메달은 사실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땀과 끊임없는 집중력 그리고 참으로 찾기 힘든 배짱이라 일컫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이러한 배짱이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교회를 정녕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도약을 위해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배짱을 가십시다.
사자 한 마리가 네 마리 황소가 살아가던 들판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황소들을 잡아 먹으려 사자가 여러 번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접근해 올 때마다 소들은 꼬리를 위로 세워 하나로 묶은 후 각자의 머리를 네 방향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자가 어떤 방향에서 접근해오던 간에 네 마리 소의 뿔과 마주 대할 수 밖에 없었기에 결국 아무 것도 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소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고, 들판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있던 초장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자는 그들을 하나 하나씩 공격해 모두다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사자와 네 마리 황소,” 이솝우화 중에서)
물론 이 우화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영어속담으로 곧잘 해석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교훈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도 있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12:25).
그리고 이것은1858 6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 수락 연설 가운데 아브라함 링컨이 인용했던 구절이기도 합니다. “분열된 집은 결코 설 수 없습니다.”
조금 전 언급했던 이솝우화 중 네 마리 황소가 어떤 경우에도 서로 함께 하겠다는 결단 곧 배짱을 가졌더라면, 끊임없는 사자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자를 멀리 쫓아내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시간, 재능 그리고 힘을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에 온전히 투자하겠다는 배짱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두려워 맙시다. 사도 바울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지금이 행동해야 할 그 때이다고 우리 본능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55 12 1일 힘든 하루 일과 후 지친 발과 무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던 로사 파크는 참으로 대단한 배짱을 보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은 어떤 후속 결과를 불러올지 눈에 뻔했습니다. 그녀는 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결정이, 그녀로 하여금 역사를 바꾸어 놓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보였던 바로 그 배짱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당장엔 우리가 예수님처럼, 로사 파크처럼, 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배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우리 자신으로 점진적으로 변해갈 수는 있습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훌륭한 신앙의 거장들 모두가 배짱을 가졌습니다. 예로 들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다윗은 배짱을 보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힘든 삶의 조건에서 어떻게 배짱을 보여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배짱을 가지고서 실로 힘든 삶의 도전을 당당히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배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역시도 배짱을 내어 보이며, 삶의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정녕 그렇게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Friday, September 21, 2018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낼까?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낼까?

지난 주 고국에선 남북(南北) 정상들과 지도자들이 평양에서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관한 깊은 논의를 했습니다. 최근 북한과 미국 간 신뢰가 틈이 난 상황에서 이루어졌기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논의를 위한 참으로 중요한 만남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중대한 현안문제는 무력에 의한 조속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 가운데 서로 간에 신뢰를 쌓아가면서 지속적 논의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물론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란 생각이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에게 핵은 현재 체제를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한 마치 생명줄로 인식하고 있기에 국제사회의 강력 제제조치에도 불구하고 배를 움켜쥐고 완성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면 상황이 녹녹하지 않기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처럼 남북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채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우린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남북이 만나 머리를 맞대어야 할 이유입니다. 만나고 또 만나야 합니다. 물론 대화과정에서 지난날의 앙금 때문에 분노가 올라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만나서 논의하고 또 논의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그것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또한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입니다.

금번 만남에 함께 했다가 돌아온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을 통해 한반도 발전에 기여할 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습니다. “많은 기회도 있고, 백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몇 번의 만남 후에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만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만나야 합니다. 만나야 함께 걸어갈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금번 남북 만남에 함께 했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 이제 희망이 우리 앞에 있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가수 김원준의 세상은 나에게란 노래 가사 일부를 실어봅니다.

수많은 질문과 함께 자란 내 꿈에 조그만 날개를 이제는 달아 줄 때야
그렇지만 떨어질 꿈이 두려워 세상에 나설 그 준비가 필요해
한때는 내가 만든 어두움 속에 스스로 빠져 울기도 했지만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지지만은 않을꺼야
지금부터 난 다른 내가 되어야 해

2018. 9. 23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성령강림절 절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열심히 기도로 함께 하기 바랍니다.

3. 재정위원회 모임: 오늘 친교 후에 AV Room에서 있습니다.

   (재정의원: 재정위원장, 임원회장, 평신도대표, 목회위원장, 연회대표, 재단관리위원장, 재무서기, 회계)

4. 정기임원회 모임: 다음주일(9월 30일) 친교 후에 AV Room에서 있습니다. 임원들은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5. 2018-2019년 구역회가 10월 11일(목) 오후 6:30에 Sherman Oaks UMC에서 있습니다. 다음은 구역회 준비를 위한 모임입니다.

6. 속장/인도자 모임은 정기임원회 관계로  10월 7일에 갖습니다.

7. 교회 갱신과 부흥 일환으로써 교회 앞쪽 주차장을 활용을 적극 권장합니다. 또한 교회 표어공모전에 적극적 동참바랍니다.

8.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Tuesday, September 18, 2018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절대주권
4:5-11 (2018 9 16일 주일예배)
하나님께서 니느웨로부터 심판을 거두시자, 이제 요나가 화가 잔뜩 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어서 속히 내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대적 원수 나라가 멸망 당하지 않고 계속 잘 되는 꼴을 보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심통부리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조용히 타이르셨습니다. “네가 화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
그뿐 아니라 심통이 난 요나는 성 바깥으로 나가 조그마한 천막을 그곳에 짓고서 홀로 앉아 니느웨 성이 어찌 되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나가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박넝쿨을 준비하셔서 자라게 하신 후 그의 머리 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한편으로, 요나는 뜻하지 않게 올라온 박넝쿨과 그것이 만들어 준 그늘 덕분에 시원해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어디선가 버러지가 나타나더니 박넝쿨을 갈아먹길 시작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넝쿨이 모조리 말라버렸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머리가 노출되어 괴로워하던 요나가 또 다시 심히 싫어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버럭 화를 냅니다. “요나가 혼곤(昏困)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8).
그때 분통을 쏟아내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가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9) 그러자 요나가 맹랑하게도 말대꾸하며 대듭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9).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께 버릇없이 대들다니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실은 그만큼 요나의 마음이 여전히 니느웨를 향한 격한 반감으로 가득했음을 의미합니다. 그의 불편한 심기가 하나님께로 뻗어나간 것입니다.
버릇없이 대드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달랩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10, 11).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믿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믿고, 하나님의 구원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죄인에게까지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이 회개하면 용서하시며, 즉시 구원을 베푸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대적 니느웨 같은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과 용서와 구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신학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건대, 요나에게는 믿음은 있었지만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조건 없이 모든 이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심히 못마땅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요나를 심각한 고민과 좌절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 바깥에 나가 조그마한 초막을 짓고 그곳에 거하게 할 만큼. .
그런데 하나님께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특별한 섭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하나님의 주권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까지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때론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굴복하기까지 그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도 불사하십니다. 예로 들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이나 품성에 이르기까지 그들로 하여금 힘든 과정을 거치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 섰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 사로잡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핍박한 경험도 있기에, 도저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만큼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역을 마다했습니다. 또한 그는 남달리 소심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먼 곳 이방 세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는 그를 붙드셨고, 그를 이방 세계의 사도로 사용하고자 하셨습니다.
훗날 사울 곧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비록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하는 것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 9:16).
바울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서 복음 전도자로서의 직분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놓아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행사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충성은 있었으나,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만은 거부하려던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 다시 역사하길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을 향한 사랑이 아닌, 모든 이방인들을 향한,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대적 앗수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선지자 요나 역시도 갖도록 양육하고자 하셨습니다.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5).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요나는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멀리 달아나려 했습니다. 초막을 짓고서 고민 가운데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길 완고히 거부했기에.
그런데 사실 요나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나 홀로 신앙인, 자기 안에 갇힌 신앙인, 혹시 그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요나가 혹시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그리고 가만히 살펴 보노라면, 우리 고민은 하나님을 거부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불편함이 있고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에 찾아오는 고민이자 갈등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하면서 심히 못마땅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민이 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고민의 원인이 무엇에 있다고 보십니까? 혹시 하나님의 마음, 그분의 크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아니면 그분의 뜻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억지부리기 때문은 아닙니까?
예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 가운데 이렇게 기도하길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 .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26:39). 그리고 나서야 예수께서는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면, 굳이 찾아서라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힘쓰노라면, 결국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자신의 뜻은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우리에게 참 된 평안과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놀라운 감격이 함께 할 것입니다. 아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곧 삶을 우리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니느웨의 악을 눈으로 목격한 요나는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은 심판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아니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코자 오래 참으시고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요나는 바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릇되게 이해하고서, 하나님을 비판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을 두루 돌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보냄 받았건만, 오히려 성 밖으로 빠져 나가 자기 자신을 위한 초막을 짓고서 그곳에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는 니느웨의 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곳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대신 자기를 위한 초막을 짓고서 구경꾼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역시 이런 저런 이유에서 구경꾼 자리에 앉아버리진 않았는지요?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곳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두셨습니다. 요나처럼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집하고, 자신의 뜻과 반하면 구경꾼으로 전락해선 아니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써 노력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에쿠아돌의 아우카 족속선교를 시도하다가 4명의 다른 동료와 함께 창에 찔려 스물 아홉 나이로 순교한 짐 엘리옷이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하여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우리에게 있는 재산, 지식, 명예, 또는 가족 모두가 어찌 보노라면, 박넝쿨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능력 밖의 것입니다. 아무리 지키려 힘써도 하나님께서 취하신다면, 한 순간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목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잃어버릴 수 없는 것, 곧 잃어선 결코 아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분을 향한 신뢰입니다. 그분을 향한 절대적 충성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먼저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지킬 수 없는 것을 얻으려 헛된 수고를 하고 있진 않습니까? 그런데 알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어느 한 순간 우리 곁을 떠나갈 수 있음을?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짐 엘리옷이 말했듯이, 지킬 수 없는 것은 기꺼이 내려놓는 용기가 있다면, 우린 결코 어리석은 자는 아닐 것입니다.
20세 때 짐 엘리옷이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기도하오니, 마른 막대기 같은 나의 인생에 불을 붙여주셔서, 당신을 위해 불타오르게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 내 인생은 주의 것이오니, 주를 위해 소모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나는 오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처럼 맡겨진 사명 온전히 감당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무척 중요한 질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그것을 취해가신다면, 하나님을 향해 화를 낼 정도로 우리가 아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혹시 하나님께서 그것을 취해가신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과연 합당합니까? 혹시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상실하고서 분노 가운데 하나님께 항변하고 있다면, 오늘 본문에서 요나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조용한 질문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9).

God’s Sovereignty




God’s Sovereignty
Jonah 4:5-11 (September 16, 2018)
Now Jonah got furious when the destructions God had planned for Nineveh were taken away. So he complained God, "I'd rather die now than live. Please take the life away from me." This was what he meant, “I would rather die than live to see the enemy state escaping from God’s punishment but continuing to do well.”, God replied to Jonah, who was so displeased, with a tender voice, "Have you any right to be angry?"
And Jonah, heartbroken, pulled himself from the city, built a small tent and sat down alone, watching what would be happening to the city of Nineveh. Then God prepared a vine, growing up and providing enough shade over Jonah’s head to ease his discomfort.
On the other hand, Jonah was very happy about the unexpected vine and the shades made by its branches. And then suddenly a worm appeared from nowhere, and started eating the vine. And then in a second, all the branches of the vine dried up.
Jonah, greatly suffering from the hot sun, exploded anger to God once again. He said, “It would be better for me to die than to live” (vs 8).
Then God asked Jonah, who got so upset, “Do you have a right to be angry about the vine?” (vs 9). So Jonah got talking back to God this way: “Oh, yes. Certainly I do. I am angry enough to die” (vs 9).
Don’t you think Jonah was too rude to talk back to God? But indeed that's how much Jonah's mind was still filled with strong hatreds towards Nineveh. So his discomfort was reaching out unto God.
The following was God’s reply to Jonah, the ill-mannered servant: “You have been concerned about this vine, though you did not tend it or make it grow. It sprang up overnight and died overnight. But Nineveh has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many cattle as well. Should I not be concerned about that great city?” (vss 10, 11).
The prophet Jonah believed in God. He believed in God's words and in his power. He believed in God's righteous judgment and his salvation. But he could not agree with God's unconditional love. He could not accept God’s compassion for sinners and his forgiveness for them when they repent. Especially he could not agree with God's infinite compassion, forgiveness, and salvation for the enemy state like Assyria. In other words, it was different from what he thought and believed.
He had faith, but lacked love. He could not understand God's love pouring upon everyone without condition. He was unwillingly to accept such love. He was deeply dissatisfied with that kind of love. This led him to serious agony and frustration. So withdrawing himself out of the city, Jonah built a tiny tent and stayed there.
There is a special plan that God can never yield. This is often called "God's sovereignty." God does not rest until what he wants is achieved. So sometimes his people suffer until their surrendering to God’s sovereignty. For example, God let them go through hard times, in order that they grow up to the holiness and good character that God desires to see from them.
The Apostle Paul was a typical character of those. Saul, who had persecuted the Lord's Church, was captured by Jesus on his way to Damascus. He became a prisoner of Jesus Christ there. But because of all the bad things he had done to the Lord Jesus, he could not willingly join the mission in preaching the Gospel of Jesus. So he refused to be an evangelist of Jesus Christ. Also, he was too timid and unhealthy to travel far around the gentile worlds to preach the Gospel there. But the Lord Jesus captured him and used him as “an apostle to the gentiles.”
Later days, he had to confess like this: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cannot boast, for I am compell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1 Cor 9:16)
As realizing his own weaknesses, he tried to run away from his assignment as an evangelist, but God did not let him go. This was God’s absolute sovereignty over Paul’s life.
Although showing strong faith and loyalty toward God, Jonah denied agreeing with God’s unconditional love. So God's absolute sovereignty began to play again over Jonah’s life. God wanted Jonah to learn love. God intended to teach Jonah to embrace God's great love for all people, not only for the nation of Israel, but also for all Gentiles, including the Ninevites, the worst enemy to Israel.
“Jonah went out and sat down at a place east of the city” (vs 5). Refusing to accept God's love, Jonah had to stay in enormous agony. He didn’t go with God's commands deliberately. He attempted to run away from God’s face. So he stayed alone in the midst of enormous agony because he refused to go under God's sovereignty, God’s control.
But in fact, he's not someone else. We are like those who are imprisoned in the self and separated from God and God’s people. Are you not one of those? Are you not like Jonah? . . . And if examining ourselves, our problem is caused by our disagreement with God. It is for we reject God's love and reject his control over us.
There is real freedom and peace in letting go of our own will but in accepting God's will instead. While sticking to our own desire, constant discomfort and pain will continue to us. It's a struggle and conflict to come for we go against God's sovereignty, God’s special plan for us.
Brothers and sisters, isn’t there anything in our faith journey that we're not really happy about? If so, what is the cause of all our struggles? Isn't it because we don't know God and his mysterious will for us? Isn't it because we know what he wants, but we insist on not agreeing with him?
Jesus was praying in agony in the Garden of Gethsemane. “My Father, if it is possible, may this cup be taken from me.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MT 26:39) Then Jesus finally came to recover peace in his mind.
In fact, we all exist here for God’s pleasure. If knowing what God’s excited about, therefore, we must go there and work for it. When we strive to please God, his joy becomes ours. Therefore, let us now put aside our own desires and pick up God's. If so, we can have real peace and joy in our minds. We'll have an amazing journey of life with God all together. Amen?
The point is not to insist on what we think is right but on what God says is right. We need a viewpoint from God, saving us through the Cross of Jesus. We should look at all our life matters from God's perspective not from ours.
Witnessing all the evil in Nineveh, Jonah tried to climb up on the judge's seat. But we shouldn't act like Jonah. There is only one who can judge. In fact, God values our souls above all. He has endured so long to save all souls that his love has revealed to us without ceasing until now.
Jonah did not fully comprehend God’s amazing love. So misinterpreting God’s love, Jonah made a great deal of mistake in complaining God. Jonah was sent to go into the city of Nineveh and declare to the people God’s warnings. But instead slipping out of the city, he built a tent for himself and stayed there. He had to remain inside the city. That was where God sent him. But Jonah didn't want it, and he built a tent for himself outside and became a spectator.
Brothers and sisters, have you ever walked away from God's ministry and become a spectator for some reason? I want you to remember this. The reason we are in this world is because God sent us here. It means God put us here, at this particular location and time. So we should not act like Jonah to insist on what we want, and become a spectator. No matter how hard it may be, we are God’s people to continuously strive for God’s pleasure with this life.
While trying to evangelize the Aucka tribes in Eqadol, Jim Eliot died at the age of 29 after being stabbed in a spear with four other missionaries. But before his death, he wrote like this in the diary: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Our wealth, knowledge, honor, or even our family is nothing different from the vine in today’s story. They are something we can never keep. They are beyond our power to keep forever. If God takes them away from us, they would all disappear for a second. Of course, our life is no difference.
But there is something that we cannot lose, something that we must keep, and that is Jesus Christ. It's our faith in him. It's our trust in him and our absolute loyalty to him. It is all because he gave up all his precious things first for us.
Aren’t we trying to get what we can't keep? By the way, we should know that they can leave us suddenly. Therefore, we should work on something that we can't lose. As Jim Eliot said,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Jim Eliot wrote this in his diary when he was 20 years old. "God, I pray Thee, light up these idle sticks of my life and may I burn up for thee. Consume my life, my God, for it is Thine. I seek not a long life but a full one, like you, Lord Jesus."
"What do we really care about?" This is a very important question for us all to think. Brothers and sisters, what do we really care about in life? If God were to take it away from us, what would it be for us to get mad at God?
If God takes our precious, would it be right for us to get angry with God? Is it appropriate? If, for any reason, we are protesting against God in anger after losing our precious, I hope that we can listen to God’s quiet voice which was given to Jonah a long time ago: “Do you have a right to be angry about the vine?” (vs 9)
The will of God is always a bigger thing than we bargain for, but we must believe that whatever it involves, it is good, acceptable and perfect.” (Jim Elliot)


Friday, September 14, 2018

교회 갱신과 부흥 (8): 한마음으로 서로 힘쓰는 교회




교회 갱신과 부흥 (8): 한마음으로 서로 힘쓰는 교회
내게 믿음을 갖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시고, 나를 사두(주님께 전 생애를 바친 신앙인)가 되도록 한 것은 어머니였다.” 이것은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의 말입니다.
썬다 싱이 보여준 훌륭한 신앙은 숱한 예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아마도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다음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는 썬다 싱이 네팔지방 어느 한적한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눈보라 심하게 몰아쳤습니다. 멀리서 여행자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 둘은 가는 길이 같아 동행자가 됐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거친 눈보라 속에서 인가를 찾고자 힘썼지만 인가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걷노라니 노인 한 분이 눈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썬다 싱이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같이 데려 갑시다. 그냥 두면 정녕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자 동행자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도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이런 노인네까지 데려간다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썬다 싱은 노인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그를 업고 눈보라 속을 힘들게 헤쳐나갔습니다. 길에서 만난 동료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길을 갈수록 더욱 힘들었으나, 땀으로 범벅 된 썬다 싱은 끝까지 노인을 내려놓지 않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마을 입구에 도달했을 때 한 남자의 시신이 꽁꽁 얼어붙은 채 쓰러져 있었는데, 그는 혼자 살겠다고 앞서 길을 갔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날 썬다 싱이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무사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노인을 업고 있었기에, 그 둘이 서로가 서로의 몸을 데워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마음으로 서로 힘써 노력할 때 비로소 나타납니다. 마음이 나뉘면, 결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는 한마음으로 서로 협력하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부흥의 불길은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서로 힘쓸 때 더욱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이것은 마치 많은 장작을 한곳에 모아 불을 붙일 때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교회부흥의 열기가 지속적으로 더욱더 뜨거워지도록 나 역시 기꺼이 하나의 장작이 되겠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 오늘도 나의 장작(시간과 재능)을 불태울 곳이 어디일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2018. 9. 18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성령강림절 절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열심히 기도로 함께 하기 바랍니다.
3. 목회위원회 모: 오늘 친교 후에 AV Room에서 있습니다.
(목회위원회 의원: 김학덕, 남셜리, 오건영, 고바비, 전상미,
김문철, 정동구, 권오수, 김학민)
 
4. 2018-2019년 구역회1011() 오후 6:30Sherman Oaks UMC에서 있습니다. 다음은 구역회 준비를 위한 모임입니다.
재정위원회: 923, 정기임원회: 930
(재정의원: 재정위원장, 임원회장, 평신도대표, 목회위원장, 연회대표, 재단관리위원장, 재무서기, 회계)
 
5. 금년 하반기 헌화/점심 봉사자에 Sign Up해 주시기 바랍니다.
6. 교회 갱신과 부흥 일환으로써 교회 앞쪽 주차장을 활용을 적극 권장합니다. 또한 교회 표어공모전에 적극적 동참바랍니다.
7. 드림교회 (Holliston UMC) 창립 40주년 감사예배 및 임직식이 오늘 오후 4시부터 있습니다.
8.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Tuesday, September 11, 2018

요나의 항변




요나의 항변
 3:10, 4:1-4 (2018 9 9일 주일예배)
요나의 이야기를 보노라면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마른 땅에 토해내도록 하신 후결국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다시 두 번째로 다가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니느웨 성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서 악한 길에서 벗어나 주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한편으로행한 악한 길에서 그들이 돌이킨 것을 보시고하나님께서 무시무시한 심판을 그들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3:10).
그러자 요나가 뿔이 잔뜩 올랐습니다. 1절은 화가 난 요나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3절에 보노라면요나가 심지어 하나님께 대들기까지 합니다. “정녕 그렇게 하실 것이라면내 목숨마저 거두어 가십시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협박합니다.
그렇다면 요나가 왜 그토록 하나님께 분노하며 대들게 되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요나의 유별난 집착 때문입니다약소국가였던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고통과 슬픔 가운데 지내야 했습니다이스라엘을 힘들게 만들던 나라들 중 앗수르가 하나였습니다그래서 대적 앗수르를 향해 요나는 엄청난 분노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하나님하나님게서 택하신 이스라엘이 언제까지 이방 민족의 압제로 힘들어 해야 합니까언제쯤이나 억압자들로부터 자유케 하시렵니까?” 그런데
그와 반대로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원수 국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찾아가서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
처음엔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갔습니다하지만 물고기 뱃속에서 돌이키고서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니느웨로 향했습니다그런데 막상 니느웨에 가서 보니마음 속에 분노가 다시 솟구쳐 올랐습니다.
요나가 분노한 둘째 이유는 니느웨의 악한 행위 때문이었습니다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용하면서도 요나는 니느웨 백성은 악하다고 여전히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막상 니느웨 성으로 들어가 보니화가 더욱 치밀었습니다자신의 민족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니느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니느웨는 너무나 부패했고잔혹했습니다그곳은 당장 멸망 당해도 합당해 보였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반면 그런 악한 니느웨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막강하기만 했습니다그래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악한 니느웨에 심판을 내리기보단 그들이 회개하자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 한없는 자비 때문이었습니다물론 이것이야말로 요나를 가장 분노케 했던 이유입니다.
혹시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이 사랑한 어느 누군가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하나님께 화를 낸 적은 없습니까만약 그렇다면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사실은 수많은 이들이 가끔씩 하나님께 화를 내곤 합니다.
하나님께 화를 낸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분노에 대한 죄책감을 느낍니다또한 자신의 분노가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죄책감 가운데 자신을 정죄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화를 낼 때 하나님께 그런 우리를 여전히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 중 하나는 하나님께 대해 언제나 우리가 솔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만약 하나님께 화가 난다면그런 감정을 숨기거나 "종교적으로," 즉 가식적으로 행동하기보단 우리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할 수 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분노와 좌절감을 표현했지만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바로 이것이 얼마나 큰 안심을 우리에게 안겨주는지 모릅니다.
물론 화를 내는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화를 낸다는 것은 무척 유감 유감스러운 일임은 분명합니다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런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롭고 고무적인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불만을 쏟아 붓고 난 후 결국엔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끝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화내는 것이 칭찬받을만한 용기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화를 낼 때하나님의 사랑그의 선하심또한 우리 삶을 향한 그의 깊은 섭리에 대해 우리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드러냅니다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도 자신의 분노를 직시하고서 적절히 대처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좀더 깊게 알아갈수록그리고 그와 오랫동안 동행할수록우리가 하나님께 화낼 가능성이 점차 줄어듭니다하지만 설령 우리가 화를 내더라도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이해하시고 회개로 인도하시기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 다시 묻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인가요?
이것은 믿는 자들이나 불신자들이나 모두다 한결같이 씨름해 왔던 질문입니다삶에 비극적인 일이 생길 때우리는 하나님께 곧바로 묻습니다. "왜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정말로 묻고 있는 것은 "하나님왜요?"가 아니라 "하나님왜 나를왜 하필이면 나를?"입니다.
이 반응은 우리 생각이 안고 있는 두 가지 결점을 보여줍니다.
첫째우리는 믿는 자들의 삶은 늘 형통해야 하고우리에게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막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약 그렇지 않으면우리는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둘째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이해하지 못할 때상황이나 사람들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결과적으로그런 이해부족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를 빼앗아갑니다그리고 곧바로 하나님께 분노를 표출합니다그분께서 우주에 대한 주권특히 우리의 삶에 대한 통솔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때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의 성취와 성공으로 공을 돌립니다그러나 나쁜 일이 일어나면우리는 곧 하나님을 탓하면서 하나님께서 화를 막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랑자비친절선함공의그리고 거룩함과 같은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 8:28)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사 14:24, 46:9-10)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어려운 환경을 바라본다면결국 우리는 자신의 힘든 문제를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우리가 화가 났거나좌절했거나그에게 실망했을 때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해하십니다그는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시고이 세상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힘든 시간 속에서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주제 파악을 올바로 해야 합니다그렇게 하노라면성급하게 하나님 앞에서 분노하거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입니다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나 저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그래서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곧 나의 삶이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가 되기를 원하나이다란 의미입니다.
올바른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자기 자신 역시 하나님의 일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물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라면우리 역시 그것을 싫어해야 합니다.
혹시 자신의 삶 속에서 (환경 속에서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아니한다고 해서 싫어하고 분노하진 않는지요그렇다면 삶의 목적을 하나님 중심으로 재조정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오해 편견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코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사랑하는 마음 없이 봉사하면요나처럼 결국 실패로 종지부 찍고 맙니다우리의 수고가 울리는 꽹과리처럼 공허한 소리만 날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요나는 긍휼의 사람이 아닌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긍휼 없는 열정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그의 형제 야고보와 더불어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순간순간 화를 버럭 쏟아 놓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말년엔 온 교회로부터 그는 사랑의 사도란 다른 별명을 얻습니다그의 입술에선 사랑이란 단어 예외는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알고 있다 해도신학을 아무리 깊게 공부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본받지 않으면곧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결국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똑똑한 성경학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겸허한 신앙인이 필요합니다.
프랜시스 쉐퍼 박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하나님께 공의로운 심판을 베풀어달라고 구할 수 없습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시작되면내가 가장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의 회개를 받으시고심판을 거두어가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취해 가시라고 때를 쓰는 선지자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4).


성도 여러분우리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는다고우리가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침묵그런데 실은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성낼 권리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우리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다르다고 하여 원망하고 있다면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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