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9, 2018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3:12-17 (2018 5 27일 삼위일체주일, 현충주일)
한 남성이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브릿지를 걷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다리 가장자리에서 뛰어 내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멈추도록 권하며 말했습니다, “정녕 당신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자살하려던 남성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살을 말리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기독교인입니까? 유대교인입니까? 아니면 힌두교인입니까?” 자살하려던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개신교인입니까? 천주교인입니까?”
나는 개신교인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교단이 무엇입니까?”
침례교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북침례교, 아니면 남침례교?”
북침례교입니다.”
놀랍군요. 나 역시 북침례교인입니다. 당신은 보수적 북침례교인입니까? 아니면 자유주의적 북침례교인입니까?”
보수적 북침례교인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마침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도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1897년 보수적 근본주의 북침례교 그레이트 레이크 지방 연회에 속했습니까? 아니면 1912년 보수적 근본주의 북침례교 그레이트 레이크 지방 연회에 속했습니까?”
나는 1912년 보수적 근본주의 북침례교 그레이트 레이크 지방 연회에 속했습니다.”
그러자 자살을 말리던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면서 강으로 뛰어내리던 사람을 밀쳐 떨어뜨렸습니다. “이단자야, 죽어라!”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임과 동시에 현충주일입니다. 그래서 두 주일의 주제를 하나로 모아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제목으로 설교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무디의 말입니다. “연합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함께 동결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함께 녹아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형제 사랑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러할 때 비로소 그들 안에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Moody's Anecdotes, p. 5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모든 강령은 사랑을 통한 완전한 일치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고로, 일부 추정에 의하면, 미츠봇, 즉 유대법에 613 개의 계명, 규례 및 강령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계명, 규례 및 강령은 오직 사랑에 근거합니다. 사랑이 있다면, 율법과 선지자들이 명한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에서 그들을 묵사발 시켜 놓았다는 소식을 바리새인들이 전해 듣고서 예수께로 나아와 물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율법 학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모세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두 번째 계명도 똑같이 중요하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선지자들의 모든 명령과 요구는 이 두 계명 준수에 기초한다.” (22:34-40)
17장을 보노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님 사이에 존재한 완전한 사랑의 일치가 우리 가운데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이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17:20, 2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17:22, 23)
혹시 같은 곡에 맞춰진 100 개의 피아노가 자동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어 소리 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조화가 잘 되어 있어 일치된 소리를 냅니다.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고자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백 명의 예배자가 모여 있다면, 그들 모두가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마음 속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최대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됨을 위해 의식적으로 힘쓰고, 더 깊은 교제를 추구코자 지속적으로 하나님께로 눈을 돌립니다. (A.W. Tozer, The Pursuit of God)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완전한 일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물론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사랑의 완전한 일치의 중요성을 알고서 이곳 저곳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3:12, 13).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됨을 위해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 옛 사람의 습관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3:15).
이것을 위해 더 나아가서 그가 이렇게 권하기도 하셨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3:2, 3);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 3:8-10).
6:11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고 고백한 후 세례의식을 가졌습니다. 세례를 위해 먼저 옷을 벗고서 알몸으로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더욱 깊이까지 들어가 온 몸을 온전히 물에 담근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새 정체성을 지닌 새로운 창조물로서 물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과 부활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후 새 옷을 몸에 걸쳤는데, 삶 속에 일어난 내적 변화를 상징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옷을 갈아 입고서 옛 사람은 감추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는 옛 습관을 벗어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사용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리하여야 합니다 ( 3:12, 13). 물론 바로 이러한 새 옷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삶의 미덕입니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더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이기 때문입니다 ( 3:14).
우리가 가끔은 서로 온전히 동의를 하지 못하더라도,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노라면, 우리 가운데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는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모습을 결코 훼손시키진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구절을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사랑의 외투를 입으십시오.”
이제 우리의 옛 된 모습은 죽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사랑의 외투로 둘러싸야 합니다. 그 옷이 우리를 감싸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온 몸과 마음을 둘러 감싸도록 해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히틀러는 모든 종교 단체를 쉽게 통솔하기 위해 모두 하나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형제교회 회중 가운데 절반은 명령에 복종했으나 절반은 거부했습니다. 물론 명령을 따랐던 사람들은 훨씬 쉬워졌습니다. 거친 박해에 직면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항했던 이들 가정에선 누군가가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회중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긴장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상황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회중 지도자들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수련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모두가 각자 그리스도의 명령에 비추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프란시스 셰퍼(Francis Schaeffer)가 그곳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 당시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는 단지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적대감과 쓰디쓴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성령의 통제에 복종함에 따라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일치의 영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랑은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그들의 증오를 해소시켰습니다.
강한 의견 차이가 있었던 시기에 믿는 자들 사이에 사랑을 가장 먼저 앞세우게 될 때, 그것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명백한 증거를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Our Daily Bread, October 4, 1992).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임과 동시에 현충주일입니다. 이 두 주일의 공통 가르침은 공동체의 일치와 화목을 위한 자기 희생정신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 희생 없인 결코 공동체 내에 일치와 화목을 일구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동체 내의 일치와 화목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겠으나 그 가운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이야 말로 예수님을 닮은 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최고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12-14).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그 사랑만이 모든 것을 하나되게 합니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함으로써 우리 가운데 일치와 화목을 이루어낼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Friday, May 25, 2018

남의 말을 존중했으면




남의 말을 존중했으면
숱한 화제의 추리소설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東野 圭吾)란 작가가 있습니다. 비록 일본 작가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의 소설이 한국에서 더욱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은 쓰이기가 무섭게 한국 출반사들이 앞 다투어 번역해 출간합니다. 문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오사키 부립대학 전기공학과 출신인 그는 일본전장주식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며 추리소설을 저술했습니다.
오늘 목회칼럼은 그의 소설 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ナミヤ貨店奇蹟)이란 책에서 한 부분을 인용하며 들어가려 합니다.
이건 어떻게 보건 못된 장난질이에요. 진지하게 대해주는 게 바보짓이죠.”
해코지가 됐든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돼.” (158-159)
나미야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나 답장을 써서 보내주었습니다. 설령 성의나 가치가 전혀 없이 쓰인 편지라 할지라도. 어떤 편지든 답장을 써서 보내준 나미야 할아버지. 그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교훈을 시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돼란 할아버지의 말이 특별히 강하게 들려옵니다. 물론 타인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너무나 분주하기만 합니다. 자기 자신의 소리를 우선 흘러 보내려 혈안이 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거나, 너무나 쉽게 맞다, 틀리다고 대꾸해버립니다.
자기 마음의 소리가 중요하다면, 타인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역시 중요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고 들어주길 원하듯, 우리 역시 남을 알아주고 귀를 기울여 경청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극히 인간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8. 5. 27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성령강림절 절기가 지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열심히 기도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3. 오늘은 성삼위일체주일(Trinity Sunday)임과 동시에 현충주일 (Memorial Sunday)입니다.

4. 속회 속장/인도자 모임이 오늘 2부예배 친교 후에 있습니다.

5. 정기임원회가 6월 10일 2부예배 친교 후에 있습니다.

6. 마켓스크립 판매하시느라 매주일 수고해 주시는 손혜영 집사께 감사드립니다.

7. 캘리포니아-태평양연회가 6월 13-16일에 레드랜드대학에서 열립니다.

8. 여선교회 미션 U(Mission U)가 6월 28일-7월 1일까지 바이올라 대학(Biola University)에서 열립니다. 등록마감은 6월 8일입니다.

9.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 고바비 집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Tuesday, May 22, 2018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1:1-8; 20:17-25 (2018 5 20. 성령강림주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영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한 영 곧 성령이십니다. 달리 말해, 세상의 영은 사탄의 영이고, 성령은 하나님 곧 주 예수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2, 13). 그래서 우리는 후자 곧 성령에 사로잡힌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여러 가지 삶의 열매를 맺는데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아홉 가지로 설명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5:22-23).
하지만 이와 반대로 사탄에 사로잡힌 자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5:19-21).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5:21).
더 나아가서, 야고보 장로는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 가운데서도 성령의 영이이 아닌 세상의 영에 사로잡힌 자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 4:1-3). 곧 야고보 장로에 의할 것 같으면,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성령을 받아야 사탄의 영으로부터 우리가 자유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영, 곧 사탄의 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길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성령의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의 일들을 알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전 2:14).
성령 연구에 평생을 바친 A. W. 토저(Tozer)성령의 포로가 되라고 간곡히 당부하면서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한 네 가지 단계를 소개합니다.
첫째,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둘째, 하나님께 성령충만을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 11:9-12).
셋째, 삶 속에서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 5:32). 이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오직 순종하는 자에게만 성령 충만이 임합니다. 성경을 읽고 들으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 노력할 때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성령 충만이 임합니다.
넷째, 성령충만은 믿는 자에게 임하는 선물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이미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령충만을 받고자 한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기만 해선 아니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지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목숨과 영혼을 온전히 지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삶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행 1:1-8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 받을 것을 당부하신 내용입니다. 그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복음 전파사역이 불가능했습니다. 오직 성령충만을 받아야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1:8).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고, 그곳에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1:14, 15).
2:1-4를 보노라면, 그들이 모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있을 때, 오순절 날이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날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인 곳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습니다. 그들은 모두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행2:5-8을 보노라면,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상한 말로 이야기를 하길 시작하니,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했고, 너무나 놀랍고 신기롭기까지 하여 그들이 서로 물었습니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무식한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 외국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들보다 외국어를 더욱 잘하는 것 같아 그저 놀라울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제자들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2:13).
물론 사람들이 조롱조로 말하긴 했으나 그 당시 주의 제자들은 마치 전혀 새로운 술에 취한 자들 같아 보였습니다. 주의 제자들에게 나타난 일은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이성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홀리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교회에도 바로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곧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주 증인인 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이 수없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보단 성령의 뜻과 생각을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이방세계에서 주의 복음을 힘써 전파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서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2-24). 성령에 매여 살아갔기에 그는 겸손과 눈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 받고 싶습니까? 성령의 지배를 받고 싶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주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성령께서 나가라하시면 나가고, “멈춰라하시면 멈추고, “앉으라하시면 앉고, “일어나하시면 일어나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하시렵니까?
지난 해 벤츄라 카운티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토마스 산불을 여전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몇 주간째 활활 타오르며 주변 삼림과 집들을 초토화시켰습니다. 토마스 산불은 소중한 것을 태워 없앴습니다.
이와 반대로 성령의 불은 태우는 불이긴 한데, 마땅히 없애야 할 죄악을 태우고 영과 혼과 육을 새롭게 변화시켜 놓습니다. 곧 토마스 산불은 죽이는 불이었으나, 성령은 죽여 살리는 불입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백이십 문도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고, 성령의 불길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휩싸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곧 우리교회도 성령의 불을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불이 임합니다.
어떻게? 우리 모두가 성령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사 우리의 생각과 영과 혼을 지배하시도록 온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젠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에 이끌려선 아니 됩니다. 전적으로 성령에 사로잡혀 그분의 일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우리 모두가 성령에 매여그분의 일을 수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무엇에 사로잡혀 살아가시렵니까? 세상의 영? 혹은 주의 영?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영, 곧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아멘?

And Now, Compelled by the Spirit




And Now, Compelled by the Spirit
Acts 1:1-8; 20:17-25 (May 20, 2018. Pentecost Sunday
There are two spirits in this world. One is the spirit of the world, and the other is of the Holy Spirit who is holy. In other words, the spirit of the world is the spirit from Satan, and the other is the Spirit from God, the Spirit of the Lord Jesus. “We have not received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ay understand what God has freely given us. This is what we speak, not in words taught us by human wisdom but in words taught by the Spirit, expressing spiritual truths in spiritual words” (1 Cor 2:12, 13). So we must be with the latter. We must be caught by the Holy Spirit.
Those who are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 bear many good fruits in life, and the Apostle Paul displays them in nine ways.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Gal 5:22, 23).
On the other hand, those who are governed by the spirit of Satan produce the following fruits of life: “The acts of the sinful nature are obvious: sexual immorality, impurity and debauchery; idolatry and witchcraft; hatred, discord, jealousy, fits of rage, selfish ambition, dissensions, factions and envy; drunkenness, orgies, and the like.” (Gal 5:19-21). Furthermore, he adds the following warning: “I warn you, as I did before, that those who live like thi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Gal 5:21).
Furthermore, the Elder James points out that, among those who claim that they are believers, there are some still caught up by the spirit of the world, not by the Spirit of the Most Holy: “What causes fights and quarrels among you? Don't they come from your desires that battle within you? You want something but don't get it. You kill and covet, but you cannot have what you want. You quarrel and fight. You do not have, because you do not ask God. When you ask, you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ith wrong motives, that you may spend what you get on your pleasures” (Jam 4:1-3). According to James, therefore, we need to receive the Holy Spirit by earnest prayer so we can be free from the control of Satan.
However, we should admit that it is not our own strength and power to win the spirit of the world, the spirit of Satan. There is only one way, that is, we go under the control of the Holy Spirit. We must be captured by the Holy Spirit. In other words, we must be the captivity of the Holy Spirit. If not, we will continue to live like the people under the demonic dominance.
We must be all caught by the Holy Spirit, so that we can acknowledge the things belonged to heaven. “The man without the Spirit does not accept the things that come from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1 Cor 2:14).
A. W. Tozer, who dedicated his entire life to the study of the Holy Spirit, urges us to be the captive of the Holy Spirit, and he provides the four recommending steps that we would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First, we must give our bodies to God.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Rom 12:1);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Rom 12:2).
Second, we must ask God for the filling of the Holy Spirit. God pours out his Spirit to those who earnestly pray and desire. “So I say to you: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Which of you fathers, if your son asks for a fish, will give him a snake instead?” (LK 11:9-12).
Third, we must always strive to obey God’s Word in our daily lives. “We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and so is the Holy Spirit, whom God has given to those who obey him” (Acts 5:32). According to this teaching, the Holy Spirit comes and actively works only within those who obey to God. When reading and hearing the Bible and then striving to live according to the Word, we are fully filled with the Holy Spirit from God.
Fourth, we must believe that the filling of the Holy Spirit is a gift to the believer. All of us are God’s children after having received Jesus by faith. Therefore, we already have faith. Because of that faith, the Holy Spirit comes to us.
And if we want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we will not simply let the Holy Spirit stay in us. We must let him rule over us. We must make sure that the Holy Spirit fully controls our bodies, our minds, our lives, and our souls. That is a lif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means "to continuously remain under the control of the Holy Spirit." It is the filling of the Holy Spirit dominating our lives.
Acts 1: 1-8, which we have read together today, is a statement that Jesus asked his disciples to wait to receive the Holy Spirit right before his ascension into heaven. It was impossible for his disciples to preach the gospel only after receiving the Holy Spirit. Only by the filling of the Holy Spirit could help the disciples to go out Jerusalem, Judea, Samaria and the end of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of Jesus.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vs 8).
So Jesus asked the disciples, “Do not leave Jerusalem, but wait for the gift my Father promised, which you have heard me speak about” (vs 4). Therefore, his disciples gathered together at one place in Jerusalem and all joined together constantly in prayer. They were about a hundred and twenty (vs 14, 15),
In Acts 2: 1-4, when they gathered and were only trying to pray, the day of Pentecost came. On that very day, “suddenly a sound like the blowing of a violent wind came from heaven” and all the people gathered in the roo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What came down upon them looked like “tongues of fire that separated and came to rest on each of them” (vs 4).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vs 5).
In Act 2:5-8, we can see those God-fearing Jews who were staying in Jerusalem from every nation under heaven. They came together to find out what was going on with the disciples of Jesus who were speaking in many different tongues. Some were bewildered to hear the disciples speaking in their foreign language. “Utterly amazed,” they asked each other, “Are not all these men who are speaking Galileans?” (vs 7). Because the ignorant Galileans seemed to be better at speaking foreign languages than the Jews who came from foreign countries. But some of them ridiculed the disciples and said, “They have had too much wine” (vs 13).
Of course, the people tried to ridicule the disciples. But indeed the disciples seemed like they were drunk with some strong wines. The things happened with them were extremely eccentric and nonsense. What the Galileans were doing was impossible unless they were influenced by some powerful spirits.
This same thing should take place in our church today. We should all get drunk by a new wine. If so, we can be filled with the Spirit. If so, this church can be revived once again. If so, we can be the Lord’s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The New Testament introduces so many people who are captured by the Holy Spirit, and one of those was the Apostle Paul. After being caught by the Holy Spirit, his life was completely different. He put the will and plan of the Holy Spirit prior to his own. So, after many years of preaching the Gospel of the Lord in the gentile world, he was going up to Jerusalem and he said, “And now, compelled by the Spirit, I am going to Jerusalem, not knowing what will happen to me there. I only know that in every city the Holy Spirit warns me that prison and hardships are facing me.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Acts 20:22-24). Because strongly compelled by the Holy Spirit, he was able to bear to the end the task entrusted to him with humility and tears. He was able to go up to Jerusalem without hesitation or fear, even though he knew that all hardships were waiting.
Brothers and sisters, do you want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Do you want to be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 Do you want the Holy Spirit to take leadership and lead you in your life? Then are you ready to obey the Holy Spirit? If the Holy Spirit says to you, "Go out," and are you going out? If he says, "Stop," are you going to stop? If he says, "Sit down," are you going sitting down? If he says "Wake up," are you going to wake up? Are you sure about that?
I believe you will still remember the Thomas Fire, driven Ventura County to devastation last year. The fires were burning for several weeks and destroyed the surrounding forests and houses. The fires took away from us so many precious things.
On the contrary, however, even though the Holy Spirit is a burning fire, he is burning the sins that ought to be burnt. And then he makes our spirits, souls and fleshes anew. The Thomas Fire was a fire to kill, but the fire of the Holy Spirit is a fire to save.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of the Lord who had gathered at the Upper Room of Mark in Jerusalem were “all joined together constantly in prayer” so that the Holy Spirit descended on each of them and put them on fire. The fire of the Holy Spirit should come to all of us here as well. We as a church should get ready to receive the saving fire of the Holy Spirit.
How? We should all desire the Holy Spirit and pray earnestly for his coming. We should surrender ourselves (our thoughts, spirits, and souls) to God so that his Spirit can come. And we should absolutely obey the Spirit's guidance afterward. We are no longer drawn to our own thoughts, feelings, or wills. Rather we should totally commit ourselves to the work of the Holy Spirit. As the Apostle Paul said, we all should be “compelled by the Holy Spirit” and do his work.
Now, dear brothers and sisters, what are you going to be controlled by? By the spirit of the world? Or by the Spirit of the Lord? The choice is up to us. This is what I earnestly pray: We are all compelled by the Spirit of the Lord, the Holy Spirit, and become a partner of his marvelous ministry in this life. Amen?

Friday, May 18, 2018

루이스 섬 영적부흥





루이스 섬 영적부흥
1949 년 영국 스코틀랜드 북서쪽 헤브리디스(Hebrides)의 가장 큰 섬인 루이스 (Lewis) 섬에 거대한 부흥의 열기가 불타올랐습니다. 그때 주의 성령의 임재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주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배 끝난 후에도 구원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통곡하며 죄를 회개했습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얼마는 실신하고 영혼의 고통을 안고서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죄의 무게 짓눌려 땅바닥에 엎드려져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 가운데 각자 자신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고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행 2장에 나오는 이야기와 흡사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7). 청소년들과 젊은이들도 교회로 몰려와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부흥의 열기가 한창일 때 집에 있다가도 갑자기 성령으로부터 죄의 지적을 받고서 꼬꾸라져 하나님 앞으로 나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길을 가다가 성령에 감동되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헛간에서, 베 짜는 광에서, 석탄재 옆에서, 들판에서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가슴을 치며 흐느끼며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관계를 잘 정립한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 섬 여러 마을에선 기도회가 마을 생활의 중심이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주일 아침 4-5명밖에 참석하지 않던 교회 예배가 차고 넘쳤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교회로 몰려와 교회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입니다. 교회로 몰려든 이들 가운데 술주정뱅이들도 다수가 되었기에 마을 술집들이 영업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이스 섬의 부흥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였습니다. 온 지역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졌고, 하나님께 푹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의 영적 부흥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긴 했으나 불씨를 당겼던 것은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던컨 캠벨 (Duncan Campbell, 1898-1972) 이란 부흥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흥이란 하나님께 흠뻑 빠진 공동체를 의미한다.” 루이스 섬의 부흥의 열기는 1939년부터 1952년까지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었습니다.
캠벨 목사가 이 세상을 떠나가기 전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고전 9:26). 사실 이보다 더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간 자의 삶을 잘 설명해 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우리교회에도 루이스 섬의 부흥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와 강력한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8. 5. 20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기도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3. 다음주일은 성삼위일체주일(Trinity Sunday)임과 동시에 현충주일(Memorial Sunday)입니다.

4. 화요성경공부가 5월 첫 주 화요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의 동참 바랍니다.

5. 정기임원회가 오늘(6월 10일) 2부예배 친교 후로 연기되었습니다.

6. 속회 속장/인도자 모임이 27일 2부예배 친교 후에 있습니다.

7. 캘리포니아-태평양연회가 6월 13-16일에 레드랜드대학에서 열립니다.

8. 여선교회 미션 U(Mission U)가 6월 28일-7월 1일까지 바이올라 대학(Biola University)에서 열립니다. 등록마감은 6월 8일입니다.

9.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 고바비 집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Tuesday, May 15, 2018

어머니니까 (Because She Is A Mother)





어머니니까 (Because She Is A Mother)
15:21-28 (2018 5 13. 어머니주일)
오늘 본문은 수로보니게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쉼을 얻으시려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어떻게 예수님 일행의 방문을 알아냈는지 몰라도 이 여인은 예수께 나아와 악한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께 간청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22).
하지만 예수께선 그 여인을 개로 비유하시며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그녀의 간청을 완곡히 거절하셨습니다. 아니 그녀를 철저히 외면하셨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23). 그 여인에게 예수께서 너무하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오히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화답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4).
하지만 그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께로 나아와 절을 하며 간청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25).
그녀가 이 정도했으면, 예수께서 그녀의 간청을 헤아려주실 만도 했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너무나 쌀쌀한 태도를 보이시며 이렇게 반문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6). 7:27을 살펴보노라면,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먹을 떡을 집어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는 이방인을 향한 멸시와 비난의 표현이었습니다. 개들처럼 이방인들은 더럽고, 음란하고, 떠들고, 싸우며, 악한 행위를 일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이 자신이 개라고 불림 받아도 예수께 간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개처럼 취급 받더라도, 곧 멸시와 천대를 받더라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견뎠습니다.
왜 그녀가 그런 행동을 취했을까요? 물론 그것은 바로 그녀가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딸을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눈물과 희생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온갖 비난과 멸시마저 능히 극복하도록 합니다. 설령 기도가 외면 당해도, 자식을 향한 기도는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위한 어머니는 기도는 계속됩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예수께서 자신을 개라고 불러도 그 여인은 예수께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 그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기꺼이 개, 곧 개와 같은 존재로 인정했습니다.
왜 그녀가 그러했을까요? 주인의 아이들이 먹다가 상 아래로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곧 비록 이방인으로서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 없으나 부스러기 같은 조그마한 은혜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은혜가 자신의 딸의 병을 낫게 할 수 있겠다는 어머니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엔, 예수께서는 그 이방 여인의 믿음을 크게 보시고 이렇게 칭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 그리고 그 즉시 그녀의 딸에게서 악한 귀신이 떠나가고, 그녀의 병이 온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이렇게 보건대,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이 딸의 치유했던 것입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 우리 모든 어머니들을 향한 주님의 칭찬이 아닐까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감기나 병이 들면,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곁에서 간호합니다. 정작 자기 자신은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도, 자식만큼은 남에게 창피 당하지 않도록 옷을 입혀줍니다. 정작 자기 자신의 배는 굶어 고파도, 자식의 배는 채워줍니다. 정작 자기 자신은 배우지 못해도, 자식은 가르쳐서 훌륭한 인간이 되도록 합니다.
사실 그녀가 처녀였을 때, 그녀는 수줍음도 많았고, 멋도 제법 부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되고 나선, 언제부터인지 자기 자신이 사라졌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창피한 것도 모릅니다. 자식을 위해서 팔을 걷어 부치고 노동을 향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게 어머니입니다.
심덕순 씨가 쓴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란 글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을 향한 사랑과 믿음
오래 전 영국 런던에서 어떤 사람이 매우 가난한 동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소녀가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 서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 있니?”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대답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두들겨 패며 나를 쫓아 내어 밖에 서있어요.” 그래서 언제 집에 갈거니?”라고 물으니, “아버지가 잠들고 나면 집안으로 들어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딸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밉지 아니하냐?” 그때 소녀가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나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그리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실 때에너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자기 정신이 아니란다. 본심은 착한 사람인데, 그러나 술만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단다. 언젠가는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아버지를 사랑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바로 이것이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이자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딸 역시 정작 자기 자신은 어려움을 당했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진실이라고 믿고서 끝까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믿음
1933년 조셉 마스잭은 시카고 경관 룬디를 죽인 살해범으로 오해 받고서 99년을 감옥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릇된 재판으로 아들이 99년 형을 받은 그날부터 어느 빌딩 마루바닥을 닦는 인부로 고용되어 12년 동안 굶주리면서 5000달러를 저축했습니다. 그리고는 룬더 경관을 죽인 진범을 잡으면 5000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고 광고를 냈습니다.
타임지 기자가 이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진실을 그 어머니가 가장 잘 알 것이라 믿고서 법정 판결을 재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찰과 함께 재조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기자는 어떻게 해서 조가 경관을 죽은 살해범으로 그릇되게 판결 받게 되었는지를 연재했습니다. 그 결과 진짜 범인을 잡게 되었습니다.
마스잭 부인은 12년 동안 아들의 결백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루같이 마루를 닦으며 지낸 것입니다. 오직 이것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시카코에서는 어머니날에 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한다고 하죠? 그리고 이 이야기는 노스사이드 777번으로 전화를이란 영화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자리. 참으로 힘들고 버거운 자리입니다. 어머니들은 자신이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를 결코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 자리에 어머니가 아니 계시면, 가족이 느끼게 될 불편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008 512일 중국 쓰촨성(四川省)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5천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구조 작업이 한창이었던 5 13일의 일이었습니다. 건물 붕괴 현장에서 두 팔을 땅에 짚고 무릎을 꿇고 윗몸을 구부린 채 숨을 거둔 20대 여성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절을 올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구조대가 이 여성의 시신을 들어올리자 그 밑에는 노란 꽃 무늬가 그려진 빨간 포대기에 태어난 지 서너 달 밖에 안 된 아기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떨어지는 건물 더미 속에서 아기를 보호하려고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버틴 채 죽어간 것입니다.
아기의 포대기 속에는 엄마의 휴대 전화가 있었는데 그 액정 화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만일 네가 살아남는다면 엄마가 너를 사랑했다는 걸 꼭 기억해 주렴."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자기 자신의 목숨이나 어떤 희생까지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어머니께 감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금번 어머니날을 맞이하여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어머니날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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