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2, 2017

자유하며 살아갈 용기



자유하며 살아갈 용기
8:31-36 (2017 1022일 주일예배)
1966년 개봉된 영화 야성의 엘자(Born Free)”를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줄거리가 이렇습니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빨래하던 한 여인이 사자에게 물려 죽자 케냐의 야생동물 관리소 직원 조지 아담슨(George Adamson)이 식인 사자를 발견한 후 즉시 사살합니다. 그때 그 사자에게 딸려 있던 세 마리 새끼들을 발견하고서 그들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조지와 그의 아내 조이는 아기 사자들을 집에서 정성껏 키웁니다.
하지만 사자들이 맹수의 본능이 드러날 정도로 성장하자 식인 사자의 본능이 그들에게도 남아 있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결국 그들을 동물원으로 보내게 됩니다. 아쉬운 이별을 준비하던 중 특별히 막내 사자 엘자와 정이 듬뿍 든 아내 조이가 깊은 상실감으로 빠져들자 남편 조지는 엘자를 집으로 다시 데려오고 맙니다.
엘자가 새끼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성장하자 더 이상 그 사자와 함께 지내는 것도 무리란 생각을 갖습니다. 하지만 엘자만큼은 동물원에 갇혀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은 조지 내외는 그 사자를 야생지로 데려다 적응훈련을 시킵니다.
어느 날 멋진 수컷사자가 나타나자 조지 부부는 엘자가 그 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룰 꿈을 꿉니다. 그런데 엘자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숫사자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실망한 엘자가 멧돼지를 보고서 그것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그런데 정작 사냥보단 놀이에 관심이 있던 엘자는 오히려 멧돼지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맙니다. 어느 날엔 힘센 동물들에게 공격을 받고서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조지 내외가 캠프를 옮겨 엘자가 찾아오지 못하게 한 다음 일주일을 야생에서 버티도록 조치해보았으나 아사 직전 상태로 겨우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런 고된 훈련기간이 지속되면서, 다행스럽게도 엘자는 야생지에서 홀로 생존하는 능력을 터득해갑니다. 엘자가 야생의 사자 무리와 합류코자 치열한 싸움을 벌인 후 성공하자 조지 부부는 엘자를 그곳에 두고 흘연히 떠납니다.
몇 개월이 흐르고 난 후 어느 날 조지 부부는 엘자의 변한 모습을 보고 싶어 야생지로 찾아갔을 때, 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엘자가 그 내외 앞에 나타납니다. 그 후 조지 부부와 사자 엘자 가족은 지속적으로 친구관계를 유지합니다.
참으로 멋진 이야기이죠? 그런데 이것이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요?
여기서 잠시 이 영화 주제곡 자유하라(Born Free)”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단 블랙(Don Black)이 작사했고, 존 배리(John Barry)가 곡을 붙였으며,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처음 불렀습니다. 가사와 곡 모두 훌륭했던 덕분에 1966년에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유하라, 마치 바람이 자유로이 나부끼듯
마치 풀이 자유로이 자라나듯
네 가슴을 따라 살아가도록 자유하게 태어났으니

자유하라. 그러하면 아름다움이 널 두르리
세상이 여전히 네게 경이로우리
네가 별을 바라볼 때마다

자유하라, 너를 가두는 장벽이 없도록
노도하는 파도처럼 넌 자유로우리
그러므로 어느 곳으로든 숨을 이유가 없으리

자유하라,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으니
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이유는
네가 자유하기 때문이지

(자유하라, 너를 가두는 장벽이 없도록)
노도하는 파도처럼 넌 자유로우리
그러므로 어느 곳으로든 숨을 이유가 없으리

자유하라,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으니
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이유는
네가 자유하기 때문이지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11, 12).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이 말씀이 생각날 때면, 가슴이 설레고 벅차 오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사실 이것은 미국이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울려 퍼졌습니다. 177539세가 된 변호사이자 식민지 의회 의원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외침입니다.
영국이 우편세를 인상하자 미국 식민지 내 주민들의 희생이 더욱 강요되었습니다. 결국 1775 3 20일 버지니아 의회가 리치몬드에 위치한 성 요한 교회당에서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헨리가 일어나 시민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버지니아에 식민지 군대를 파견해 영국군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의회가 보낸 청원서에 영국 왕이 회신을 보내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자고 회유합니다. 3 23일 헨리는 자원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민병대를 구성하자는 법안을 의장 페이튼 랜돌프에게 제출한 후 제안설명을 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날 헨리의 연설문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훗날 미국 검찰총장이 된 윌리엄 워트가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한 그 당시 청취자들을 찾아 다니며 기억에 남은 것을 수집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하여튼 이 연설은 미국독립전쟁 도화선 역할을 했고, 특히 그의 제안 설명의 마지막 한마디가 온 백성의 심장을 멎게 할 만큼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영국 식민지 억압 아래서 고통 당하던 미국인들만이 자유를 갈망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삶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 그것을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자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부여하신 참으로 귀한 선물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자유의지라는 큰 선물과 함께. 이것은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2:15-17).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을 큰 실수라고 말하지만,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최초 인간은 그것으로 그릇된 판단을 내린 후 막대한 해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 중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자유의지가 있기에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 자유의지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유혹으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진리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원동력입니다. 자유의지는 위험하긴 하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철학자 소렌 키엘케고르(Soren Kierkegaard)가 이런 유명한 우화 하나를 들려줍니다.
비천하고 가난한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한 나라의 왕이 그 소녀의 마음을 살 방안을 고민하며 찾습니다. 왕은 소녀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며 그녀의 사랑을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막대한 권력으로 그녀를 굴복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진정한 사랑을 얻는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참된 사랑은 그 소녀가 자기 의지에 따라 왕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신분이 낮은 한 청년으로 내려옵니다. 소녀의 사랑을 얻으려. 물론 왕은 소녀가 자신을 끝내 거부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된 사랑을 얻는 길은 그것 밖에 달리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인간으로부터 참된 사랑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그들의 사랑이 진실됨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발전시키기보단 오히려 자신들의 탐욕을 추구하고 말았습니다. 뱀의 유혹을 받은 후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선과 악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탐했습니다( 3:1-7).
그 결과 하나님께서 빚으신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마저 추하게 여겼습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3:7).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3:8).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건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인간은 죄의 덫에 걸렸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은 것은 아닙니다. 탐욕 때문에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자유를 잃고, 오히려 사탄의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그런 인간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8:34).
죄의 종이라 함은 우리가 더 이상 자유자가 아니란 의미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자유를 잃고 말았습니다. . . .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36).
예수님의 말씀을 뒤집어보면, “지금 너희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33).
야성의 엘자(Born Free)”에 소개된 동물원으로 보내진 사자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동물원에 평생 동안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동물원에서 충분한 음식이 제공되었으나 사자다운 삶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이 되었습니다. 사자다운 삶은 광활한 대지에서 활보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지 부부는 막내 사자 엘자만큼은 사자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엘자에게 사자답게 광활한 대지에서 살아갈 자유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자가 광활한 대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설령 그런 훈련기간 숱한 상처를 입게 된다 할지라도.
엘자에게 자유를 제공하려 힘쓴 조지 부부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살아가도록.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에게로 찾아오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1, 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36).
물론 우리를 자유케 하려 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아주 값비싼 대가를. 자기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어놓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나의 자유를 위해 주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용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다음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1, 3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변화를 시도하는데 있어 다가오는 두려움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난날 최의 부담이나 수치심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난날의 상처에서 얻은 아픔, 미움, 보복심리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는 옛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것이 여러분과 나의 선언이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지난날 죄의 부담이나 수치심, 그리고 상처의 아픔이나 미움이 다가올 때마다 자유하라(Born Free)”의 노래 가사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자유하라, 너를 가두는 장벽이 없도록
노도하는 파도처럼 넌 자유로우리
그러므로 어느 곳으로든 숨을 이유가 없으리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아닌 주의 말씀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거하며 살아가려 힘써 노력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힘써 배우고, 묵상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노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하도록 합시다. 아멘.

The Courage to Live Free in Christ




The Courage to Live Free in Christ
John 8:31-36 (October 22, 2017)
Do you still possess a memory of the 1966 film “Born Free”? If not, here’s its plot summery for your recall.
One day a woman washing clothes in the bank of stream was killed by a lioness, and then immediately George Adamson, a Kenyan wildlife officer, went out for a search of the beast. He shot it down as he found it. Then he saw the three cubs of the lioness and brought them to his home. And George and Joy his wife carefully raised the baby lions at home.
But as the lions grew to the point where the beast’s instinct would be revealed, George and Joy decided to send them to a zoo because of their fear that the lions might have inherited the killer instinct from their parent. While preparing for farewell with the lions, Joy, who fell in love with them, especially with Elsa, the youngest cub, went with a deep sense of loss. So George had to bring Elsa back home.
But not too long after Elsa grew enough to have a baby for her own, the couple realized that no longer could they keep the lioness with them. But they didn’t want Elsa to be trapped in a zoo like her siblings, so they brought her to the wild and trained her to the wildlife adaptation.
One day when a handsome lion appeared, George and Joy briefly dreamed a dream that Elsa would have a happy family with him. Despite Elsa's interest, however, the lion did not respond much. So Elsa got disappointed. But as seeing a wild boar from a distance, she rushed toward it. But her run was not for a hunt but for a play with the pig. Eventually she ended up with being terribly attacked by the wild pig. One day, wounded by strong wild animals, she returned bloody. George and Joy moved their camp away in order to prevent Elsa from coming back. Left in the wild for a week, again Elsa came back to the state just before starvation.
As such hard trainings continued, Elsa gradually learned how to adopt the wildlife. When Elsa succeeded in fiercely fighting to join a wild lion club, the Adamson family came home secretly, leaving Elsa in the wild.
A few months later, when George and Joy went to see Elsa’s progress in the wilderness, in front of them, the lioness appeared with her own cubs. After that, the Adamson family and the Elsa’s continued their friendship.
What a wonderful story, isn’t? Did you know that this was based on a true story?
Now let me play for you the theme song of “Born Free.” By the way, the lyrics were written by Don Black, composed by John Barry and sung by Andy Williams. Thanks to the wonderful lyrics and music, this song even won the Oscar Music Award in 1966.
Born free, as free as the wind blows
As free as the grass grows
Born free to follow your heart

Live free and beauty surrounds you
The world still astounds you
Each time you look at a star

Stay free, where no walls divide you
You're free as the roaring tide
So there's no need to hide

Born free, and life is worth living
But only worth living
'cause you're born free

(Stay free, where no walls divide you)
You're free as the roaring tide
So there's no need to hide

Born free, and life is worth living
But only worth living
'cause you're born free
In today's text Jesus spoke to the Jews who believed and followed him: “If you abide in my word, you will be my disciples, knowing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vv.11, 12). Personally, I fall in love with this scripture passage. Whenever it comes to my mind, my heart is throbbing. How about you?
We humans have a strong desire for freedom. So we cry like this: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In fact, it resonated when America was still a British colony. Patrick Henry, a 39-year-old lawyer and colonial congressman, screamed the cry in 1775 at the first time.
When the UK raised the postal tax, the American colonies were forced to sacrifice much more. On March 20, 1775, the Virginia Parliament met at St. John’s Church in Richmond. On the spot, Henry asserted that they should stand up against British forces by sending a colonial army to Virginia to protect the citizens. But the opponents said they should wait patiently until the king would reply to the petition by the Congress. On March 23, Henry made a proposal speech after presenting the bill to Chairman Peyton Randolph to form a militia of volunteers.
Unfortunately, Henry’s original speech on that day was not a record. William Wort, who later became the U.S. Attorney General, sought out the listeners including Thomas Jefferson, and reconstructed what has been said by Henry.
However, this speech served as a torch for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and especially the last sentence of his speech was so inspiring to most Americans who listened to him: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Not only did the Americans who suffered under British colonial oppression long for freedom or liberty, but all of us who are here today also desperately desire for it.
Freedom is a precious gift from God to us. In fact, when God created man, this gift was granted to him. Along with freedom, free will was given. This is the right to choose between right and wrong (Gen. 2: 15-17).
Many people claim that it was a great mistake for God to give free will to Adam and Eve in the first place, but I never agree with them. Of course, the first human ancestors had done a great deal of harm after making the wrong choice with their free will. But it is clear that it is obviously God's gift to us. For we have free will, we can have a voluntary life pleasing God at the most.
Let us remember that free will can mislead us to the temptation to sin, but it can be also the driving force for us to live a holy life according to God’s truth. Free will is dangerous, but absolutely necessary for us to have a life God intended us to get fully engaged in this life.
The philosopher Soren Kierkegaard tells this story.
There was a king who fell in love with a poor girl on the street. He looked for ways to buy the girl’s heart. He was able to induce her love by offering immersive amount of gift. He could also succumb to her with enormous power he possessed. But he knew that it was not the way to buy genuine love from her. The girl should have a heart for the king according to her voluntary will. So the king came down to a lowly state of man. To get the girl’s heart. Of course, the king knew the danger that he might be rejected by the girl at the end. But there was no other way to earn true love of her.
God expected love from the human beings when he created them. So he shared free will with them. It was because he knew that their love was genuine only when they loved him with their own will. Unfortunately, with their free will, Adam and Eve pursued their own greed rather than developing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God. After being tempted by the serpent, they wanted to become like God with the knowledge that they would measure good and evil.
As a result, even the beauty that God had bestowed to them looked so ugly to their eyes. Sin is so scary just like this. “Then the eyes of both of them were opened, and they realized they were naked; so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coverings for themselves” (Gen 3:7). Also, they became afraid of God their Creator and hid from him. “Then the man and his wife heard the sound of the Lord God as he was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they hid from the Lord God among the trees of the garden”(Gen 3:8).
They were created to live free, but with their own will, they were trapped in sin. No one took freedom from them. Because of greed, however, they gave it up on their own.
Eventually, mankind lost freedom to stay close with God the Creator but became slaves to Satan instead. So in today’s text Jesus spoke of the reality of such poor creatures. “Very truly I tell you, ‘everyone who sins is a slave to sin’” (John 8:34).
“A slave to sin” means we are no longer free beings. Because of sin, we lost freedom, one of the best gifts from God. . . . BUT Jesus declares this to u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vs 32); " “So if the Son sets you free, you will be free indeed” (John 8:36).
What Jesus said meant that “Now you are no longer free.” Then the Jews, who did not understand his saying, asked, “We are Abraham’s descendants and have never been slaves of anyone. How can you say that we shall be set free?” (John 8:33)
The lions sent to the zoo, in the movie "Born Free," were never free. They were captured in a zoo for a lifetime. Of course, even though provided with enough food in the zoo, they were not allowed to enjoy a lion-like life. The purpose of their beings became to entertain those visitors to the zoo. To live as a lion means to live a life in a vast territory with freedom and liberty.
So the George couple wanted to help Elsa live as a lioness. They wanted her to enjoy the freedom that she deserved as a queen in the wild. So they trained her with the ability to survive in the vast wild by herself, even if it would cause her a lot of pain and injury during her training.
Like the George couple, working so hard for Elsa’s freedom, the Lord Jesus Christ also worked so hard to set us free. To live with freedom that God had granted in the beginning. And also to live with free will and develop intimate love relationship with God. That is why Jesus, the Son of God, came to us and declared to us,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vss 31, 32). So if the Son sets you free, you will be free indeed” (John 8:36).
Of course, for our freedom, Jesus had to pay a corresponding price that was very expensive. It was to lay down his life for us. Dear brothers and sisters, the Lord Jesus gave up his life for your freedom and for mine. So what do we have to do now? It is for us to regain the courage to live free and enjoy the freedom he purchased for us with a huge compensation. This is what Jesus, the Son of God, wants with us.
So how can we live free? We can find the answer from the following statement: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vss 31, 32).
In Christ Jesus, we must find the courage to live free from the burden or shame of the past. In Christ Jesus, we must find the courage to live free from the pain, hatred, and reprisal sentiments, inherited from the past wounds. Again, we should not let the old take away the freedom bought by Jesus for us. So the Apostle Paul said to us: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the new creation has come: The old has gone, the new is here!” (2 Cor 5:17) I really hope it is your claim and mine.
When the burden or shame of sin and the pain or hurt from the past come to pass, please let us try to remember the lyrics of “Born Free”:
Stay free, where no walls divide you
You're free as the roaring tide
So there's no need to hide
And we should live out our life on the Word of the Lord, not on our feelings. When we are faithful to God’s Truth, we will be set free. So we better learn, meditate, practice and live God’s Truth in our daily life. If living like that, we will eventually live free just like God’s children. Dear brothers and sisters, let the Truth/God’s Truth set us free! Amen?

Friday, October 20, 2017

자아실현 추구 용기


자아실현 추구 용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O Alquimista))에 빨간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팝콘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이곳저곳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팝콘 손수레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몇 년 동안 힘써 팝콘 장사를 하면서 충분한 돈을 모은 후 원하는 곳을 마음껏 찾아 다니는 여행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했던 것이 팝콘 장사인 셈입니다. 그런데 수년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서 팝콘 손수레는 떠나갈 줄 몰랐습니다. 그런 동안 어렸을 적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팝콘 장수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런 팝콘 장수를 바라보면서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현자(賢者)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차라리 양치기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어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합니다. “저 사람도 그 생각을 했었다네. 하지만 팝콘 장수가 양치기보다는 남 보기 근사하다고 생각한 거지.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잠을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아래 잠들 수 있잖아? 또 사람들도 딸을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와 결혼시키려 하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픈 노력보단 남들의 시선과 생각에 지배당한 탓에 팝콘 장수는 자아실현을 포기한 채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자아실현(自我實現)”은 곧 자기실현(自己實現)”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심리학자들은 풍부한 학문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 둘을 다르게 설명하려 하겠지만. 굳이 내가 생각하는 자아실현의 정의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나의 참 모습을 찾아가고픈 용기입니다. 나에 관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하던 간에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씀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자아실현을 꿈꾸며 살아갈 용기가 있다면, 설령 삶이 고독해지고 힘들어진다 해도, 그런 고독과 힘듦조차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이끌려 다니는 것보다 자기 자신다워지는 것이 월등히 낫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났겠지요? “진실된 혼자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지내는 것보다 낫다.”
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해답기 때문이고, 달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달답기 때문이며, 별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별답기 때문입니다. 굳이 해가 찬란하고 화려하고 해서 달과 별이 해가 되고자 애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수고는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자기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보다 아름다운 인생은 없습니다.

Sunday, October 15, 2017

책임질 용기



책임질 용기
39:7-23 (20171015. 평신도주일)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문제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대면서 삶의 과제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때론 어쩔 수 없다라고 변명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을 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아둘러는 주어진 과제를 회피하려 만들어내는 변명을 인생의 거짓말이란 용어로 대신 표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노라면, 요셉은 핑계거리를 입에 달고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막가는 인생을 산다고 해서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책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 . 그를 나무라기보단 오히려 그의 쓰라린 삶 때문에 함께 울어야 했습니다.
그는 형들의 시기심 때문에 깊은 구덩이 속에 갇혀 그 안에서 굶어 죽을 뻔했습니다. 20냥에 노예로 팔려 쇠사슬에 묶인 채 애굽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한창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할 20대의 청춘을 노예생활로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애굽에 끌려간 그는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렸으나 결코 노예정신으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공경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형들의 시기심으로 종으로 팔린 신세가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환경 때문에 낙심하고서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데 가담한 자들을 원망하며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물론 노예가 된 것은 전적으로 형들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명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소중한 생을 맡겨주신 하나님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기에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 노예생활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기보단 모든 일에 삶에 최선을 다하려는 요셉을 하나님께서 기뻐 보사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요셉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형통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도 그 사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3). 그리고 보디발은 요셉을 신뢰하게 되었고, 그를 가정의 총무로 삼아 자신의 모든 소유를 그의 손에 위임했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집이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크게 받기에 이르렀습니다(5).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딴마음을 품길 시작했습니다. 요셉이 청지기로서 일을 잘해낼뿐더러 그의 용모가 워낙 출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한 여주인의 마음을 거절했습니다.
요셉이 여주인을 거절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신뢰한 보디발에 대한 충성심이고, 둘째는, 자신이 한결같이 공경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요셉의 다음 말에서 이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8, 9).
요셉이 자꾸만 거부하자 어느 날 아침 일찍부터 여주인이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나가도록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출근한 요셉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길 시작했습니다. 요셉에게 쉽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여주인의 손에 붙들린 자신의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여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났다기 보단 히브리 종으로부터 거절 당한 수치심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래서 집밖에 있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요셉이 자신을 성희롱하려 했다 거짓말했습니다. 또한 자기 손에 남겨진 요셉의 겉옷을 그 증거로 내밀었습니다. 참으로 못나고 못된 여주인입니다.
한편으로, 바로의 궁에서 업무를 보고 돌아온 보디발에게 그녀는 똑 같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말만 듣고서 보디발이 요셉에게 심히 분노했고, 즉시 요셉을 잡아다 왕의 죄수들이 있는 옥에 넣어버렸습니다. 부창부수라고 하나요? 말 그대로 그 남편에 그 아내입니다.
그렇게 하여 요셉이 옥에 갇혔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서. 사실은 주인 보디발을 위해 여주인을 거부했던 것인데. 참으로 억울합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쯤 되었으면, 요셉도 낙심하고 좌절할만합니다. 여주인을 원망하고, 주인 보디발을 원망할만합니다. 물론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힘쓴 자신을 돌보아주지 않는 하나님조차 원망할만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에 관해 성경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증언합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20-23).
어떻게 해서? 성경은 그 해답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23절 하반절). 감옥에서조차도 주어진 환경에 책임감 있는 태도로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께서 요셉을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원망하기보단 어떤 처지와 환경 속에서도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지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시시때때로 우리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무척 힘든 상황이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힘들어합니다.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겠다는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책임감 있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중한 삶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아둘러는 자기합리화를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생의 거짓말을 중지할 것을 권합니다. 그런 핑계거리를 입에 달고 자신과 타인을 속이지 말라고 하면서 어떤 환경 가운데서라도 우뚝 서겠다는 용기를 가질 것을 주문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말하는 책임질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야말로 우리가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돕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어려운 환경은 인생의 거짓말, 곧 핑계거리로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 책임의식을 갖고서 스스로 헤쳐나가고자 힘써 노력할 때 극복됩니다.
환경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엄두가 나지 않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힘쓰지 않는다면, 삶의 진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한 환경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대신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을 조성한 자 역시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갖고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야 합니다.
바꾸어 볼만한 인생이란 책에서 헤럴드 셔먼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헨리 보엔이라는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큰 돼지우리를 힘겹게 지었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돼지 따위에겐 돼지우리의 크기가 필요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 나는 알고 있어."
보엔은 그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한다는 그만의 방법으로 언제나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그가 기르는 돼지를 비롯해서 그 밖의 전시품은 시의 콘테스트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습니다.
사실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더욱 개선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령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어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거나 잘못을 범하게 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권리를 버리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권리를 포기하는 자는 로봇입니다.
특별히 스스로 선택하는 권리를 포기하는 자는 로봇입니다란 말이 유난히 나의 귀에 강하게 울려옵니다.
우리가 좋은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곧 날 때부터 부유한 부모를 만나면, 처음부터 부유한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난한 부모를 만나면, 가난과 함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자기 자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지고 원하는 삶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잘못과 실수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해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꿋꿋이 세워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참으로 중요한 질문은 어떤 환경이 주어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신을 선택하느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시렵니까?
간혹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두려움을 갖지 않거나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주어진다면?” 그런데 그런 용기가 있는 것일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렵지만 여전히 위험에 맞서 싸우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것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겁쟁이 사자에게 마법사 오즈가 들려준 교훈입니다.
자네는 이미 충분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난 확신한다네.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지. 위험을 만났을 때 무서워하지 않는 생명체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어. 진정한 용기는 두렵지만 위험과 맞서는 거야. 그런 면에서 자넨 이미 충분히 용감해
위대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다름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책임질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전자는 누군가가 다가와 환경을 바꾸어주길 기다리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책임감을 갖고 임합니다. 하지만 후자는 기다리고 기다릴 뿐입니다.
오딧세이의 저자 호메로스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은 흉터라고 주장하죠?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육신과 마음에 새겨진 굴곡, 바로 그것이 흉터라는 것입니다. 물론 안주하는 삶은 흉터가 없겠지요. 도전과 모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흉터인데, 그것은 힘든 고난과 고통을 통해 더욱 깊게 새겨집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난날 주의 일을 하다가, 주님의 교회를 섬기다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가 너무나 아프고 쓰라립니까? 그래서 다신 주의 일에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그런 상처를 입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하셨습니까? 그런데 주의 일을 하다가 입은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아프고 쓰라리긴 하나 그것은 자랑스런 무공훈장이 아닙니까? 그런 훈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주의 일을 하다 얻은 상처를 “(나의 몸에 새겨진) 예수의 흔적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6:17).
삶을 살아가는 동안 상처 없는 삶을 꿈꾸지 말고, 그런 삶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를 스스로 껴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10:38).
예수의 제자들의 몸엔 상처가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상처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상처가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니까.
파이트 클럽(Fight Club)에서 척 팔라닉이 말했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외치며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 흉터 없이 죽고 싶지 않다.”
다시 묻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날 주를 위해 힘써 일하다 힘들고 지켜 이젠 은둔생활로 들어가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13-16)
주의 제자들은 안전함이나 편안함을 추구하기보단 마지막 순간까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써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평신도주일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재능을 가지고 주의 교회를 세우는데 앞장 서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용사들이여, “책임질 용기를 가지십시오. 설령 어떤 일을 책임졌다가 또 다시 상처를 입는다 해도. 그리고 책임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말고, 자랑스러워 하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또 다른 예수의 흔적을 몸에 새기게 되었노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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