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9, 2017

함께 살아갈 용기



함께 살아갈 용기
얼마 전 강력한 파괴력을 동반한 4등급의 초대형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와 그 인근지역을 덮친 후 수십 명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집과 산업체를 집어삼켰습니다.
2005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를 뒤덮은 후 뉴올리언즈 지역을 80% 이상이나 해수면 아래로 몰아넣어 천문학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하지만 금번에 들이닥친 하비는 카트리나보다 더욱 큰 피해를 몰고 왔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카트리나가 1 200억 달러의 피해를 입혔다면, 허리케인 하비는 1 500억 달러에서 1 800억 달러 피해를 남겼을 것으로 잠정적으로 추정된다고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보트가 보고합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아마도 하비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홍수를 불러온 장본인으로 한동안 악명을 떨칠 것으로 보입니다.
몇 주의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지역 주민들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몰려온 구호손길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한 복구를 위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눈앞에 태산만큼이나 쌓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금번 허리케인 하비를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히 악몽입니다. 막대한 인명 손실과 재산과 자연 파괴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몽 속에서 굳이 좋은 점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수재민들을 향해 구호의 손길들이고, 그런 고마운 마음에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서고자 복구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수재민들의 수고입니다. 쉽게 말해, 재앙 속에서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픈 모두의 노력입니다.
그리고 하비의 재앙 속에서 배울 점을 굳이 찾아내노라면, 불개미 떼의 홍수로부터의 생존전략 지혜입니다. 금번 허리케인이 몰고 온 큰 홍수를 만나게 되자 불개미 떼가 종족 생존차원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광경이 목격되었습니다. 수백만 마리가 각자의 다리와 입을 무는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물 위를 떠내려갔는데, 그 규모가 얼마나 크던지 마치 거대한 뗏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불개미 떼는 마른 땅과 나무를 만날 때까지 줄곧 일 주일 혹은 길게는 석 주씩까지 해체되지 않고 요동치는 홍수를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나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끌었던 부분은 여왕개미와 갓 낳은 알들을 가장 중앙자리에 배치했다고 하는데, 그것들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였겠지요. 혼자서는 거대한 홍수를 견뎌낼 수 없겠지만, 서로 함께라면 어떤 힘든 장애물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고 또 다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용기를 불개미 떼의 생존전략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Sunday, September 24, 2017

미움 받을 용기




미움 받을 용기
139:13-18 (2017 9 24일 주일예배)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 사랑스럽습니까? 사랑스럽다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사랑스럽다면, 왜 사랑스럽습니까? 반대로, 여러분 자신이 밉습니까? 밉다면, 얼마나 밉습니까? 밉다면, 왜 밉습니까? 지독히도 밉다면, 왜 그토록 믿습니까?
보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이 그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자기 자신이 미워지는 이유는 과거 행동에 대한 후회 혹은 죄책감 그리고 너무 과도한 타인의 평가나 시선 의식 때문입니다. 이 감정이 악화되면, 쉽게 우울증으로 빠져듭니다. 한편으로,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에 대한 그 사람의 고정관념이나 오해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에 대한 비방의 소리가 자주 흘러나옵니다.
타인의 평가나 시선
많은 사람들이 남의 생각이나 말에 너무 쉽게 휘둘림 받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리가 들려오면 기뻐하나, 나쁜 말이 들려오면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남의 평가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인정을 받으려 굳이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을 감출 이유도 없습니다.
때론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으려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거든요.
너무 과도한 주변으로부터의 시선과 평가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의 삶을 살도록 유도할 뿐입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아둘러는 타인에게 얽매이는 인정욕구 강박관념을 버리라고 말하면서 미움 받을 용기를 갖도록 권유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어느 누구로부터는 어쩔 수 없이 미움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모두로부터 인정받을 욕구를 버리고,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헛된 노력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1998년 컴팩 부사장 팀 쿡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애플로의 이직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컴팩은IBM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최대 개인용컴퓨터(PC) 제조사였고, 애플은 시장 점유율이 5%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건만, 쿡은 애플로 옮겼습니다.
쿡이 애플로 이직을 결심한 것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5분도 채 되지 않는 인터뷰 때문입니다. 당시 잡스는 탁월한 입담으로 컴퓨터가 바꿔 갈 미래 모습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쿡은 애플로 옮기게 되면 창의적인 천재들과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훗날 쿡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플에 합류하기로 한 건 내 생애 최고의 결정이었다.”
오늘날 애플은 시가총액 세계 최대 기업이고, 팀 쿡은 그 회사의 CEO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왕관을 썼건만 어쩌면 그는 가장 불운한 CEO인지도 모릅니다. 취임 후 끊임없이 전임 CEO와의 비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스티브 잡스보다 창조적이거나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지난 해 쿡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도 잡스를 대신할 수 없다. 나도 처음부터 그의 대역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남의 평가나 인정을 받으려 너무 신경 쓰노라면, 현재 자신이 누려야 할 행복까지 놓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바로 오늘이란 시간에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나 자신에 관한 남들의 평가나 시선이 어떠하든지 간에 오늘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는 용기만 있다면. (이 부분은 지난 주일 설교에서 이미 충분히 언급했습니다.)
과거의 실수와 허물 다루기
행복한 오늘과 내일을 꿈꾸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과거의 트라우마는 없습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 이 순간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둘러의 가르침).
물론 과거에 우리를 참으로 아프게 했던 일들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런 일들과 사람들이 오늘 이 순간 행복을 추구하고픈 열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열망이 꺾였다면, 그것은 용기가 없어 스스로가 포기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산물로 그대로 남게 될 것입니다.
과거 경험이 현재 우리 자신을 결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곧 과거의 경험이 오늘날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순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쓰디쓴 경험을 거울 삼아 좀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창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 다루기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함으로써 열등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타인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노라면, 결코 상대적 빈곤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은 결국 열등의식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자기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나와 비교하기 바랍니다. 건전한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기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더 나아지고픈 선한 욕망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남의 평가나 시선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변화를 추구할 능력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사랑 받을 자신의 모습으로 바꾸어갈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의 손에 의해 신묘막측하게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경쟁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친구들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 사랑하기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꾸짖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이나 허물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맡겨야 합니다. 그의 십자가 아래 내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처리하시도록.
과거의 잘못과 허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치유 상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써 주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과 죄가 사함 받고 새 사람이 되었음을 믿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 관하여 누가 무어라 말을 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창조주께서 우리 자신에 관하여 무어라 말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능력 가운데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참으로 깊고도 깊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이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을 추구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설령 그런 삶을 추구하고자 힘써 노력하기에 남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해도.
우리가 자기 자신을 완전하고 유일한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도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너의 핑계가 뭐야? (What’s Your Excuse?란 책에서 존P. 포프 (John P. Foppe)가 이렇게 말합니다.
존경심, 존엄성, 가치에 관한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나는 이 영역에서 온전한 책임을 지겠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스스로에게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내 자신의 소관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나를 용서하는 것 역시도 온전히 내게 맡겨진 일이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나의 사명을 찾아 그것을 성취하는 것도 내게 맡겨진 일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얼마만큼 존중하고 가치 있게 대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외치며 그는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존경심을 부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최근에 거울에 비친 여러분 자신에게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었나요?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데일 윔브로의 거울 속의 사람이란 시가 있는데, 읽어드리겠습니다.

거울 속의 사람 (The Guy in the Glass, by Dale Wimbrow,1895-1954)

당신이 부를 얻기 위해 노력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고
세상이 당신을 인생의 왕으로 만들 때,
거울 앞으로 가 자신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사람이 하려는 말을 들어보라.

당신이 따라야 할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아내의 판단이 아니며,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거울 뒤편에서 당신을 응시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기쁘게 해주어야 할 사람이다.
그는 당신과 함께 끝까지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사람이 당신의 친구가 되었다면
당신은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당신은 최고의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것을 이룰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이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면,
거울 속에 있는 그 사람은 당신이 별볼일 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한동안 온 세상을 속일 수 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거울 속에 있는 그 사람을 속인다면,
결국에 당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과 눈물뿐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 중 한 구절을 읽어드리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17-19)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그 안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미움 받을 용기란 사실상 설령 남이 나를 오해하고 그릇된 동기로 미워한다 해도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에 관해 말씀 드렸던 것입니다.

The Courage to Be Hated


The Courage to Be Hated
Psalm 139:13-18 (September 24, 2017)
Brothers and sisters, do you love yourself now? If you do, how much do you have love for yourself? If you love yourself, why is it? On the contrary, do you hate yourself? If hate, how much and why?
In general, there are two kinds of hate against oneself. The first is the hate by himself; second, the hate by someone else.
Often, the reason why we hate ourselves is because of shames or guilt over the past behaviors, and also because of too much expectation or gaze consciousness from others. On the other hand, someone’s hate against us is due to his stereotyped point of view and misunderstanding of us. So we can hear him saying nothing but complaints against us.
Excessive Awareness of Someone Else’s Approval
Many people tend to be easily victimized by the thoughts or words from others. So hearing something good about themselves, they are happy, but when hearing something bad, they feel so bad and get angry. However, there is no need to worry too much about someone’s evaluation or gaze up on us. There is no reason to deceive us or to conceal something from others in order to get praises from them.
Sometimes we better put down the desire to get praised or acknowledged by everyone. It is for the reason that we cannot get approval from all at the same time for every person has a different point of view in life.
Please let us remember that too much focus on getting approval from everyone makes us live someone else's life, not ours.
It is to be remembered that, despite of the best effort, no one has ever the ultimate power to meet everyone’s expectations.
In this sense, Psychotherapist Adler advises us to give up the obsessive desire for eveyone’s approval but to have “the courage to be hated.” No matter how hard we try, we can fall into a situation where we cannot help but be hated by someone anyway.
We must abandon our desires to get acknowledged by all and cease our attempts to satisfy everyone. We better figure out what we can do and do the best to go after it.
I Do Only What I Can Do
In 1998, Tim Cook, Vice President of Compaq, made a hard-to-understand decision. It was his job transfer from Compaq to Apple. At that time, Compaq was the world's largest personal computer maker, but Apple had less than 5% market share. Cook came to Apple, although so many close friends persuaded him not to move.
Cook made his decision to join Apple after his interview with Apple founder Steve Jobs less than five minutes. At the time, Jobs told him about the future of personal computers that would change the world in the years to come. And Cook realized his job transfer to Apple was a lifetime opportunity to work with the most creative geniuses. Later, in an email to his employees Cook said, “It was my best decision to join Apple.”
Today, Apple is the world's largest market cap, and Tim Cook is the CEO of the company. But even though he has a brilliant crown, he may be the most unlucky CEO ever. After his inauguration to the CEO position, he has been constantly compared with his former CEO Steve Jobs. In short, the criticism is that he is not as creative or innovative as Steve Jobs.
But last year, in humbleness Cook said in an interview, “Nobody can replace Steve Jobs.” From the very beginning he knew that he could not be Steve Jobs’ replacement. But in confidence he said this, “I am doing what I can do the best.”
If we worry too much for someone’s endorsement, we are missing the happiness that we deserve now. So at this very moment we have to think about what is the best we can do and push ourselves to achieve it.
When I change myself, the world will change. Regardless of what others have to say about me, today what I must do is to pursue the best possible life that I can get fully engaged.
Anyone can be happy, if he has the courage to be happy. (This part is already mentioned in the previous sermon last Sunday.)
Dealing with Mistakes and Faults from the Past
There is no past traumas to stop us dreaming of happiess today and tomorrow. Let us remember: “We humans are not acting upon by the causes of the past, but upon by the goals that we have set up for this very moment and tomorrow (from the teaching of Adler).
Of course there are some people and some things that have really hurt us in the past. But even so, those people or things cannot defeat us if we have the courage to live in happiness in the very moment. If we are defeated, it is because we decided not to practice the courage.
If we do not actively come out of the past, we will remain as a product of the past forever.
Please take a note: Past experiences do not determine what we are now. So they cannot cause us to be unhappy today. Rather, we can create a better day today and tomorrow by positively mirroring (looking back at) the experiences in the past.
Dealing with Inferior Consciousness
There is no reason for us to have inferiority by comparing ourselves with someone else. It is never recommended. When comparing, we will never escape from relative poverty awareness, and we will be eventually led to inferiority consciousness.
If comparing myself to someone else, I want to compare myself to "the Ideal Self that I am always dreaming for myself.” A healthy inferiority is a good desire to improve better and better by evaluating myself with the self that I want to become rather than comparing myself with someone else.
We, God’s people, should not find our identity from someone’s praise, but only in Christ.
Let us remember the truth that we are given the ability to change. We can be transformed into a person to be loved. We are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by God’s mighty power.
And we better remember that the people around are not those whom we should compete with, but those whom we should live together.
The Love for the Self
God wants us to be healed. So God doesn’t reprove or rebuke our shames and guilt of the past, but rather gladly joins our frustrations. How? Through his Son’s Cross.
So we must leave our past under the Blood of the Lord Jesus Christ. We must lay our wrongs or mistakes down under his cross. Let God deal them with his blood.
It is not a counseling that frees us from the past mistakes and transgressions, but a personal encounter with God that sets us free.
We must confess with our mouths that God's amazing grace has forgiven our transgressions and sins and made us a new being through his Son’s Cross on Golgotha.
No matter what others say about us, what really matters is our Creator’s speaking about us.
We are created “fearfully and wonderfully” in God’s mighty powers. And his thoughts and plans for us are so deep and so high. We must have the courage to pursue the amazing life granted by God, rather than to worry about someone else’s recognition. Even if we are hated by others, we shall continue to pursue such a blessed life permitted by the Creator.
If we do not respect ourselves as a complete and unique personality, no one else will truly love us.
In his book, What’s Your Excuse?, John P. Foppe says as follows:
I don’t allow others to dictate my feelings of respect, dignity, or worth. I take responsibility for myself in these areas.
I am the one who determines whether I have self-respect or self-worth or personal dignity.
It’s up to me to accept God’s love for me and to accept His forgiveness and to forgive myself.
It’s up to me to seek out and then fulfill His mission for my life.
Then he says that he is the one who decides how much he respects himself and values himself. He accepts himself just as what he is.
Yes. We, not someone else, must recognize ourselves. We, not someone else, must show respect to ourselves.
Brothers and sisters, have you smiled at yourself in the mirror recently?
I love the poem, “The Guy in the Glass,” written by Dale Wimbrow. Let me read it to you.

The Guy in the Glass by Dale Wimbrow (1895-1954) 
When you get what you want in your struggle for self,
And the world makes you King for a day,
Then go to the mirror and look at yourself,
And see what that guy has to say.

For it isn't your Father, or Mother, or Wife,
Who judgement upon you must pass.
The feller whose verdict counts most in your life
Is the guy staring back from the glass.

He's the feller to please, never mind all the rest,
For he's with you clear up to the end,
And you've passed your most dangerous, difficult test
If the guy in the glass is your friend.

You may be like Jack Horner and "chisel" a plum,
And think you're a wonderful guy,
But the man in the glass says you're only a bum
If you can't look him straight in the eye.

You can fool the whole world down the pathway of years,
And get pats on the back as you pass,
But your final reward will be heartaches and tears
If you've cheated the guy in the glass.

Before concluding today’s message, I will read you a passage from the Apostle Paul’s letter to the saints at Ephesus: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glory, may give to you a spirit of wisdom and of revelation in the knowledge of Him. [I pray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so that you may know what is the hope of His calling, what are the riches of the glory of His inheritance in the saints, and what is the surpassing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who believe. [These are] in accordance with the working of the strength of His might (which He brought about in Christ). (Eph 1:17-19)
I pray that we can all realize who we are in Christ Jesus and live the blessed life freely and joyfully in Him.

In conclusion, “the courage to be hated” actually means “‘the courage to love oneself’ even if someone still misjudges us and hates us with a wrong motive.”

Friday, September 22, 2017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5:6)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동안 고통 가운데 헤매고 있던 병자에게 주께서 도전적으로 던지셨던 말씀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대가 현재 상태로 계속 남길 원하는가? 아니면 낫길 원하는가?”하는 물음입니다. 물론 물음이긴 하나 사실은그대가 낫길 원한다는 열망과 의지를 분명히 밝혀 달라는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그 병자를 치유하고 싶어도 그가 낫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가 없다면, 그가 병으로부터 자유함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낮은 자존감과 열등의식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보다 참습니다. 그런 부정적 감성은 정신적 질병이고, 그 어느 질병보다 서둘러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어떤 질병보다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삶을 황폐케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염려하느라 진정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혹시 낮은 자존감과 열등의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묻는 예수님의 물음을 신중히 생각하고 답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1-9에 소개된 38년 된 병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5:7).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기 자신이 고통 가운데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을 하소연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께서 원하신 답변은 아니었습니다.
그 병자처럼 지난날 자신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었던 사람들과 환경을 탓하며 낮은 자존감과 열등의식에 시달리며 고통스런 오늘을 당연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래서 자기 자신의 소중한 삶을 지속적으로 해치고,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 받지 못할 질병이나 죄는 없습니다. 문제는 치유 받고서 온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의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치유 받고, 또한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능력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답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아파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께서 이렇게 도전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5:8).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를 받아들이고, 회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할 일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를 내려놓고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발로 일어서야 합니다. 자리를 들고 당당히 걸어가야 합니다.

Tuesday, September 19, 2017

행복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1:1-6 (2017 9 17일 주일예배)
데니스 홀리란 분이 당신은 행복합니까?란 책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미국 사람들 중 오직 20%만이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이토록 부유한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오직 20%만이 행복을 느낀다니?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행복합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행복하다면, 무엇 때문에 행복합니까? 반대로,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행복하지 않습니까?
숀 아처(Shawn Achor)란 분이 행복의 특권(The Happiness Advantage)이란 책을 썼는데, 그 안에 하버드대학에서 그가 10년 동안 행복에 관해 가르쳤던 강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600명 학생들과 5000명 사업가들을 조사한 후 성공=행복이라 믿었던 그의 기존 생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진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에 입학한 학생들은 최고 명문대학 입학엔 성공했으나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자들이 많았고, 자살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최고 명문대학 입학이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 했건만 오히려 불행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삶의 조건이나 환경에 영향 받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바라는 조건과 환경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행복은 외적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졌느냐 혹은 얼마를 가졌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지위나 명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 쓰자면, “(이러한 세상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됩니다”(1:2). 또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1:14).  
성불성마일념간(成佛成魔一念間)”이란 말이 있지요? 이 글귀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울보 별명을 가진 한 노파가 길가에 앉아 비가 내리나 해가 떠오르나 항상 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그 노파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니, 그녀가 대답합니다. “내게 두 딸이 있는데, 딸 중에 큰딸은 신발장사한테 시집을 가고, 작은 딸은 우산장사한테 시집갔지요. 그래서 날이 좋으면, 작은 딸네 우산이 안 팔릴 것이 걱정이 되고, 비가 오면, 큰딸네 가게에 손님이 없을까 걱정이 되어 웁니다.”
그때 나그네가 말합니다. “맑은 날에는 큰딸네 장사가 잘될 것만 생각하고, 비가 올 때는 작은 딸네 우산이 잘 팔릴 것만 생각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서 노파가 무릎을 치며 좋아하며, 그 후 다신 울지 않고 비가 오는 날이든 맑은 날이든 웃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슬픔과 기쁨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결국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행복은 우리 인간의 정신적 태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데일 카네기). 달리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쉽게 말해, 행복은 태도이지 결코 필요 조건은 아닙니다.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면 어떨까 싶네요. “행복은 선택이다.”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날을 선택할 수 있고, 반대로 슬프고 불행한 하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하루를 맞이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합니다. 행복은 선택임을 잊지 마세요.
숨겨진 행복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모두에게 행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것을 제멋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천사들이 행복을 회수하기로 결의하고서, 회수한 행복을 어디에 숨겨둘지를 논의했습니다.
그때 한 천사가 제안했습니다. “저 깊은 바다 밑에 숨겨놓으면 어떨까요?” 그러자 천사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합니다. “그건 안돼.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바다 속을 뒤져서 곧 찾아내고 말거야.”
다른 천사가 말합니다. “그러면 저 산꼭대기에 숨겨 놓으면 어떨까요?”
천사장이 대답합니다. “인간의 탐험정신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도 결국 찾아내지.”
천사들이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행복을 인간의 마음 속에 숨겨두기로 합시다. 그들의 두뇌가 아무리 비상하고 탐험 의지가 강해도 자기 마음 속에 숨겨진 것은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을 찾아내게 된다면, 그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겠지요.”
물론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곰곰이 씹어볼 만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합니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서 우리는 숨어 있는 행복을 꺼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끄집어내느냐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다. 먼저 우리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이 우리 자신을 만든다”(앤 프랭크).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선택하되, 무엇보다 행복을 선택했으면 합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선택했으면 합니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고자 힘썼던 사도 바울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항상 기쁘고 감사하는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 성취가 아니겠습니까?
경건,” 혹은 거룩이란 미명 아래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일까요? 그가 원하는 것은 그의 자녀들이 매 순간 혹은 매일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매일 아침마다 자기 자신에게 행복하게 살겠노라 다짐해야 합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심리치료학자 아둘러는 행복해질 용기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행복해지기는 것은 그렇게 살겠다는 의지 혹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미움 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행복이 찾아올 것이란 막연한 희망은 버려야 합니다. 행복해질 용기를 내어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피해의식에 젖어 있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나친 경쟁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란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의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기억하기 바랍니다. 용기란 인생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제반 문제에 잘 대처하고픈 긍정적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사는 게 용기다, 기시미 이치로, 67).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행복을 끄집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가 전하는 지혜를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2).
여기서 율법은 토라, 모세오경을 의미하는데,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즐거워하다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갖는 흥분된 마음을 의미합니다.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듯,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와 같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라는 권면입니다.
주의 말씀이 마음에 즐거움이 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숱하게 많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 19:7-10)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곧 여호와의 말씀이)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24:13, 14).
그리고 묵상하다는 말은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란 의미입니다. 마치 소가 여물을 먹고서 한참 후 그것을 되새김질 하는 것처럼, 읽었던 말씀의 의미를 우리가 생각하면서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밤낮으로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함을 의미입니다. 주의 말씀 속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에 다음과 같은 실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갇혔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함께 수감된 동료들 중 한 사람이 밤마다 창문으로 스며 드는 희미한 달빛 아래 종이 위에 쓰여진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내일 죽게 될지도 모르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는 동안에는 그의 얼굴에 어린 아이처럼 평온함이 엿보였습니다. 그리고 훗날 알고 보니, 그 종이엔 성경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성경구절이 그에게 위안을 주었고, 소망을 주었으며, 새 힘을 공급해준 것입니다.
아마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시편 기자가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119:92).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즉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의 삶은 늘 푸르릅니다. 곧 그는 매일 행복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행복을 꺼내길 원한다면, 곧 매일마다 행복하길 희망한다면, 삶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서 남에게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단 남에게 베푸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줄 때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을 갖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위해 돈을 사용할 때(액수에 상관없이) 우리 삶이 더욱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남을 돕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잭슨 브라운이란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행복한 자들은 더욱 많이 쌓아두는 사람이 아니라 더욱 많이 나누는 자들임을 기억하십시오.”
하긴 달라이 라마도 이런 가르침을 주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대가 남들이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긍휼을 베푸십시오. 만약 그대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긍휼을 실천하십시오.”
톨스토이가 말합니다. “만약 그대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 아주 간단하죠? 그러나 매우 강력하기도 하죠?
될 때까지 된 척하라는 말이 있죠?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해지려고 마음먹고서 그것을 실천하노라면, 결국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아프지 말고. 다투지 말고. 가슴앓이 하지 말고.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날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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