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6, 2017

낙타 등을 부러뜨린 지푸라기 한 가닥



낙타 등을 부러뜨린 지푸라기 한 가닥

두 마리 낙타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갖가지 무거운 짐이 그들의 등에 차곡차곡 실립니다. 그들의 여물로 사용될 짚단도 실립니다. 웬만한 낙타는 180킬로그램 정도의 짐을 거뜬히 견딥니다. 물이나 여물도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해도 참으로 잘도 버티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낙타의 등이 꺾이더니 그 자리에서 고꾸라집니다. 바람이 불어온 지푸라기 한 가닥이 짐 위에 내리 앉는 순간 그것의 등이 꺾인 것입니다. 바로 그때 곁에 서 있던 다른 낙타가 쓰러진 동료를 가여운 눈길로 쳐다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흔히들 그 당시 일어난 사건에만 관심이 쏠리고, 그것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은 무시되곤 합니다. 그래서 위의 이야기를 논할 때 이런 질문만 무성할 뿐입니다. “어떻게 해서 고작 0.1 그램도 되지 않는 지푸라기에 그토록 튼튼한 낙타 등이 꺾인 것일까?” 물론 틀린 질문은 아니나 온전한 질문도 아닙니다. 낙타 등이 꺾이게 된 원인은 지푸라기 한 가닥 때문만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낙타 등이 180 킬로그램의 하중까지만 견뎌낼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사막을 건너러 낙타 등에 100킬로그램의 양식, 30 킬로그램의 물, 그리고 50 킬로그램의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곧 최고 한도의 무게가 놓인 셈입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지푸라기 한 가닥이 짐 위에 내려앉자 한계점이 초과되었고, 결과적으로 낙타가 더 이상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서 등이 부러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낙타 등이 부러진 원인이 무엇일까요?

영어에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란 관용구가 있습니다. 상황이 임계점에 미치면, 지푸라기 한 가닥만으로도 낙타 등이 부러질 염려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을 기울여 상황에 대처하라는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예로 들어, 남이 듣기엔 지극히 사소한 말 한마디가 대인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곤 하는데, 사실은 그 동안 둘 사이에 앙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였기 때문입니다. 곧 사소한 말 한마디가 화약고에 불을 붙여 놓은 꼴입니다.

하지만 이 관용구는 긍정적 상황을 기술하는데도 사용되는데, 이런 경우입니다. 낙타 등처럼 도저히 부러지거나 변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황도 오랜 시간 지푸라기를 하나하나 얹는 노력을 계속하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때론 변화과정이 지루하고, 진부해 보이지만, 그래서 초조함과 불안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그 일을 지속하노라면, 어느 순간 놀랍게도 낙타의 등이 뚝 부러집니다. 곧 도저히 변할 것 같아 보이지 않던 상황이 긴급히 반전되곤 합니다.

물론 어느 순간의 노력이 낙타의 등을 꺾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어느 무엇에나 임계점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긍정적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위한 작은 노력을 멈추지 말고 지속해야 합니다. 삶은 인내의 연속입니다.

Friday, May 19, 2017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이 필요하다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날 여러 땅을 기어 갔다
나팔꽃 넝쿨의 무더운 먼 길을 본다
간밤에는 그 오랜 어둠
바람이며 빗줄기까지도 부여잡곤 하였던지
등엔 또 꽃붉은 상처를 지고
절망절망 전다
담벼락 아래
또 앞이 막히는 삶을 본다
제 몸이라도 비틀어 허공을 뚫고 있다 (문인수 시인의 ”)
문인수 시인의 이란 시입니다. 시인은 옆으로 그리고 위로 뻗어나갈 틈을 확보하려고 몸부림치는 나팔꽃 넝쿨의 힘든 생을 노래합니다. 비록 앞이 막혀 있다 해도 제 몸이라도 비틀어 허공을 뚫고서라도 길을 찾는 노력이 너무 애절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나팔꽃 넝쿨로부터 배울 바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주어진 박한 환경을 탓하기보다 힘써 길을 찾아내어 위로 그리고 옆으로 뻗어나간 후 가능한 많은 꽃을 피워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이미 잘 닦여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안전하고 쉽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미 다져진 길은 남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가보지 않는 곳도 숱하게 많습니다. 때론 그런 곳을 가보고 싶습니다. 아니 어떤 때는 필연적으로 그곳에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엔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순간에 필요한 것은 그곳에 가야 한다는 소명의식입니다. 그런 의지와 소명이 있다면, 비록 힘들다 해도 스스로 힘써 길을 닦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나팔꽃 넝쿨이 꽃붉은 상처를 등에 입고서라도 힘써 길을 찾아내듯.
흔히 데이빗 리빙스턴을 아프리카의 등불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영국 동료들이 그를 돕겠다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서신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우린 자네를 도울 몇 사람을 선교지에 보내려 하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일러주게나.” 그 편지를 받고서 리빙스턴이 이런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이라면 별 의미가 없네.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이라네.”

주님의 교회로서 우리 자신을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교회는 힘써 길을 닦고 있는가요? 주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주께서 구원코자 하시는 세상 영혼 구원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지금껏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슴에 품은 채. 우린 주를 위해 길이 없어도 굳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일까요?

Friday, May 12, 2017

어머니의 지극한 영향력



어머니의 지극한 영향력
어머님은 항상 내 머리 속에 계시옵니다
늘 웃고 계시옵니다
외로울 때나 쓸쓸할 때나
언제나 나의 힘이 되시어
내 머리 속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고 계시옵니다
내 마음 한복판에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계시옵니다.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중에서)
우리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인물을 꼽는다면 어렵지 않게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의 어머니를 꼽을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은 그 정도로 위대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헨리 비처(Henry Ward Beecher)어머니의 가슴은 아이의 교실이다(A mother's heart is the child's classroom)”라고 지적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결 같이 그들의 삶 속에 어머니의 영향이 컸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로 들자면, 유명한 전도자이자 교육자 요한 웨슬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입니다. 물론 요한 웨슬리가 존 로크처럼 유명한 사상가들의 책을 즐겨 읽었고, 현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린 코메니우스의 제자 진젠도르프 백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은 바로 그의 어머니인 수잔나 웨슬리의 신앙교육이었습니다.
영국 성공회 목사였던 사무엘과 엄격한 청교도 가문에서 자라난 수잔나 사이에서 태어난 요한 웨슬리는 어려서부터 특별히 어머니 수잔나의 엄격한 규칙 아래서 신앙훈련을 받습니다. 물론 어머니의 교육은 요한뿐 아니라 모든 자녀에게 동일했습니다. 훗날 요한 웨슬리가 말한 어머니의 교육관을 짧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벌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지 않는다. 둘째, 거짓말하지 않게 한다. 셋째, 같은 잘못으로 두 번 벌하지 않는다. 넷째, 선행에 따라 칭찬과 상을 준다. 다섯째, 아이들이 순종하는 행동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뜻을 가질 때 칭찬하고 격려한다. 여섯째, 아이들이 가진 물건의 소유권이 침해 당하지 않게 한다. 일곱째, 약속을 엄격히 지키게 한다. 여덟째, 딸들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진 가사 일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이든 할 줄 안다. 그 이유는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어머니들의 한결 같은 사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들. 여러분은 존경 받기에 지극히 합당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Friday, May 5, 2017

피그말리온 효과 (Pygmalion Effect)


피그말리온 효과 (Pygmalion Effect)
다음의 이야기는 한국 KBS에서 54일 전한 희소식입니다.
다문화가정의 한 초등학생이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갔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평소 자전거가 갖고 싶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부모에게 사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다가 남의 자전거를 보는 순간 탐이 나서 그것을 타고 달아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14세 미만인지라 훈계 조치 후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경찰관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자 그들이 마음을 모아 그 어린이에게 새 자전거를 사서 선물했습니다.
선한 뜻에 함께 했던 한 경찰관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남의 물건을 훔친 잘못은 있지만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이 많으니까 이번 기회에 저희 선물을 받고 애가 올바르게 성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경찰관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담긴 자전거는 경제적으로 힘든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매우 특별한 어린이날 선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경찰관들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에 크게 감동받은 그 소년은 더 이상 남의 것을 훔치기보단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나서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교육심리학에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란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심리적 행동의 하나로써 교사의 기대치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가 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를 인정해주면, 그 사람의 기대치에 버금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더욱 열심을 냅니다. 결과적으로, 남의 기대와 관심의 결과로써 내 자신의 수업 능률이 오르거나 노력의 결과가 한결 좋게 나타납니다
참고로, 피그말리온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서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상과 깊은 사랑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에 감동한 여신(女神) 아프로디테가 그 여인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노력 중 하나가 칭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로부터 긍정적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어 야단치기보단 그의 좋은 면을 찾아 적극적으로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사실 칭찬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 자녀를 두었든, 성년이 된 자녀를 두었든, 자녀에게 야단보단 칭찬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잔소리는 자녀의 마음이 쉽게 닫게 만들지만 칭찬은 닫힌 마음도 열어놓습니다. 칭찬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변화로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Twitter Delicious Facebook Digg Stumbleupon Favorites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