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2, 2016

대강절을 맞이하는 밤



대강절을 맞이하는 밤

하와이에서 목회할 때 섬겼던 교회는 호놀루루(Honolulu)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와히와(Wahiawa)란 조용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번잡한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 매년마다 정규적으로 열린 파인애플 퍼레이드 (Pineapple Parade), 베테랑스 데이 퍼레이드(Veterans Day Parade), 빛의 행진 축제 (Festival of Lights Parade), 기타 등등의 행사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개최하는 행사이기에 가능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교회가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래서 때론 퍼레이드에 직접 참가하기도 하고, 많은 경우엔 더운 날씨에 행진하는 이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물을 준비해 대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늘 아쉬웠던 것은 다른 퍼레이드에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동참할 수 있었으나 빛의 행진 축제엔 우리교회가 한번도 참석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참 이유는 거의 대부분 같은 날짜에 하와이 지방회 목회자 가족 대강절 만찬 행사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년 빛의 행진에 우리교회도 꼭 참석할 수 있었으면. . .” 하는 바램만 가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끝내 나의 희망은 성사되지 못하고 하와이 목회를 마감했습니다.

하와이를 떠나 산타 마리아에서 새롭게 목회를 시작할 때 그곳에도 빛의 행진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산타 마리아가 캘리포니아 중북부에 위치한 해안도시인 관계로 12월 초가 되면 날씨가 매섭게 춥습니다. 하지만 그곳 주민들의 절대적 호응을 입은 빛의 행진 축제는 그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둘째가 다녔던 고등학교 역시 퍼레이드에 참가했던 고로 나와 내 아내는 행진 출발지부터 종착지점까지 길가에서나마 함께 걸었습니다. 곁에서 길을 걸으며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동방박사들처럼 나 역시도 대강절 기간 동안 빛을 찾아 떠나는 순례여정을 걷겠노라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빛의 행진 축제가 내게 전해주고자 하는 참된 의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금번 123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교회 친교실에서 대강절을 맞이하는 밤행사를 갖는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고자 온 성도가 함께 대강절 영적순례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행사는 단순한 만찬자리가 아니라 대강절 의의를 좀 더 깊게 되새김질할 수 있는 몇 가지 의미 있는 활동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많이들 참석하셔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2:15-17)

그래도 가족이니까 만나야 한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만나야 한다
45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끝이 났으나 선거 후유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그 선거기간을 악몽과 같은 나날이었다고 술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났음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대통령 선거기간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도시와 농촌 지역이 나뉘었습니다. 인종과 인종이 나뉘었습니다. 종교와 종교가 나뉘었습니다. 하물며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마저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분열상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 간에 끊겼던 대화나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보입니다
롱아일랜드에서 기업들을 상대로 소셜미디어 강의업체를 운영 중인 개리 폴라쿠스키라는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던 친구들이 무려100여 명이나 대통령 선거 이후 친구관계가 끝났다고 울상을 짓습니다. 하물며 결혼식 들러리로 섰던 친구마저 친구관계가 절연되었다고 합니다. 선거 후 자신이 올렸던 트럼프 후보의 모자 사진이 그 화근이 되었음을 뒤늦게 파악했습니다.
또한AP 통신이나NYT은 금번 추수감사절에 가족 모임이 그 어느 때보다 소홀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가족 간에도 선거기간 지지 후보 문제로, 또한 선거 결과를 두고서 잦은 의견 충돌이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서먹서먹해 가족모임을 회피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에 관해 막말한 것 때문에 가족까지도 보기 싫어졌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가족 모임 명절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추수감사절 참석까지도 포기하겠다니. . .   
하지만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가족은 만나야 합니다.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가 달랐다고 해도, 설령 선거기간 동안 상대 후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서 조금 과한 표현을 사용했다 할지라도, 가족은 가족입니다. 가족이기에 만나야 합니다. 한자리에서 만나야 잠시 서운했던 감정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가족이 가족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지지했던 후보가 달랐다고 해서 가족 안에서까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끝났습니다. 잠시 고조되었던 감정을 식히고,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추수감사절만큼 좋은 명절은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 선거 후 곧바로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은 분열된 마음과 마음이 다시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늘이 준 내려준 기회가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금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분열된 미국이 다시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분열된 사회가 다시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분열된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Friday, November 11, 2016

트럼프 후보 당선을 생각하며



트럼프 후보 당선을 생각하며

금번 대선 기간, 하물며 대선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후보를 무난히 이길 것으로 대부분 언론사는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선거함 뚜껑이 열리고 개표가 진행되면서 힐러리 후보의 승리를 확신한 자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은 결과에 신음소리를 내뱉어야 했습니다.
트럼프 후보 승리가 확정되자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가 놀라운 충격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언론도 "트럼프 쇼크 (Trump Shock)," "트럼프 스톰(Trump Storm)," "세계 질서 대격변"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싣기에 분주합니다.
물론 트럼프 후보 승리가 놀라운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이 속한 공화당조차도 원군이 되어주지 않은 열악한 조건에서 홀로 고군분투하여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숱한 막말과 스캔들로 그의 이미지가 사뭇 먹칠되긴 했으나 오히려 그것이 대선 기간 동안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 붓지 않고서도 자기 자신을 알리는 훌륭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대선기간 내내 주요 TV나 신문은 클린턴보다 트럼프에 관해 무려 네 배나 많이 언급했습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 트럼프의 막말과 스캔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막말 속엔 고도의 정치적 해법이 담겨 있음을 아는 이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의 막말 속엔 지난 70년 가까이 원치 않는 변화를 강요당하며 살아온 수많은 미국 백인들의 분노가 담겨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아니 몰랐기 보단 오히려 무시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항상 진보적 변화의 선두에 서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미국은 아직까진 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불편한 심기조차 애써 외면코자 했습니다. 대의(大義)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미국다운 것"을 성취하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며.
하지만 금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불편한 심기를 짓누르고 살아온 이들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후보의 말은 속으로 분노하며 참아오던 이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속 시원히 대신 내뱉어주었으니까. 물론 오랫동안 진보주의에 익숙한 이들에겐 막말로 들렸겠지만.
11 8일 선거 개표를 지켜보며 지금껏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미국을 보았습니다. 각 주()의 개표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미국 지도가 빨간색으로 도벽되었습니다. 북동부와 서부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트럼프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미국 지도가 온통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껏 짓눌려 왔던 사람들의 항변이로구나!"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야기될 급격한 변화나 질서 혼란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껏 짓눌러왔던 이들의 목소리를 좀 더 진지하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 저변에서 억눌려 살아가는 자들을 위한 진보적 변화도 필요하겠으나 내키지 않는 변화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의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상적 민주주의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Saturday, November 5, 2016

Fall Cleaning 2016

Fall Cleaning 2016




















Friday, November 4, 2016

단풍지고 낙엽지고




단풍지고 낙엽지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에서 빌려온 시() 구절입니다.
며칠 전 교회 성전 옆쪽에 아름드리 높다랗게 서 있는 캘리포니아 시커모어나무들로부터 떨어져 잔디밭을 카펫처럼 뒤덮고 있는 적갈색 낙엽들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발로 밟았더니 바사삭 소리와 함께 부셔졌습니다.
낙엽들을 밟고 거니노라니 마치 내 자신이 레미 드 구르몽(Rémy de Gourmont)낙엽(落葉)”에 나오는 주인공인양 착각하며 그 시 일부를 속으로 읊었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그러다 지금껏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던 질문이 문뜩 떠올랐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면, 왜 나뭇잎 색깔이 변하고, 낙엽이 지는 것일까?” 가을에 활엽수 색이 변하고, 낙엽 진다는 것을 당연한 순리로 알고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셀폰을 꺼내 들고서 구글 검색기에 단풍, 낙엽이라고 쳤습니다. 그렇더니 가을 나뭇잎 색깔 변화와 낙엽 지는 이유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검색을 통해 배운 바를 짧게 정리해 나누노라면 이렇습니다.
가을이 되면, 겨울맞이 차원에서 푸른 나뭇잎에 있던 영양분이 줄기로 이동하고, 가지와 나뭇잎 연결 부분에 특별한 세포층이 새롭게 형성되는데, 이것을 이층(離層, absciss)혹은 떨켜라고 부릅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기 전 나뭇잎을 가지로부터 떨구어내기 위한 사전조치입니다. 그래야 나무가 추운 겨울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생겨난 떨켜 때문에 줄기로부터 물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나뭇잎은 그래도 광합성 작용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잎에 있던 엽록소(녹색)가 대량 파괴됩니다. 그리고 평상시 엽록소 힘에 짓눌려 있던 카로티노이드(노란색), 안토시안(빨간색, 보라색), 타닌 (노란 갈색) 등의 보조색소가 표면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가을철 잎 표면에 드러난 보조색소 강도에 따라 나뭇잎이 제각기 다른 색깔로 옷 입게 됩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나뭇잎들은 봄철부터 여름철 동안 나무가 자라고, 열매 맺도록 힘써 돕다가 마지막으로 자기 존재를 화려한 색깔로 마음껏 드러낸 보인 후 나무가 추운 겨울철을 견딜 수 있도록 살신성인, 즉 스스로 나무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가을 나뭇잎 단풍을 보고, 낙엽을 보노라니, 도종환 시인의 시()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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