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25, 2016

열린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열린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허수아비와 함께) 도로시가 식사를 마치고 노란 벽돌길 쪽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깊게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 . 거대한 나무 하나가 반쯤 베어져 있었고, 그 옆에 몸 전체가 양철로 만들어진 사람이 손에 도끼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그의 머리와 팔과 다리는 모두 몸통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꼼짝도 할 수 없는 듯 조금도 움직임이 없이 서 있었다.

도로시가 물었다. "당신이 신음 소리를 냈나요?" 

양철 인간이 대답했다. "그래, 내가 그랬어. 일 년도 넘게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내 소리를 듣고 나를 도와주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요?" 그 슬픈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인 도로시가 상냥하게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기름통을 가져다가 내 연결 부위에 기름칠을 해줘. 너무 심하게 녹이 슬어서 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 기름칠을 하면 난 곧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내 오두막집 선반에서 기름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곧장 오두막집으로 달려가서 기름통을 찾아 다시 돌아온 도로시가 그의 목에 기름을 넣어주었다. 하지만 너무 심히 녹슬었기에 허수아비가 양철나무꾼의 머리를 붙잡고 부드럽게 움직일 때까지 이쪽저쪽으로 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양철나무꾼은 스스로 머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위대한 마법사 오즈(The Wizard of OZ)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양철나무꾼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녹이 슬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들어가자 목, 팔 또한 발도 움직여 도로시와 함께 길을 동행합니다. 이것은 피드백(Feedback)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적절한 피드백이 주어지면, 오랫동안 녹슬어 움직일 수 없는 양철나무꾼도 스스로 움직일 뿐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의 길을 함께 합니다.

두 주전 성도들과 열린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한 궁금증을 듣고 설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질문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접했는데, 그 중 이런 의미가 깊게 베인 질문도 있었습니다. "왜 우리가 미국교회와 함께 해야 하죠?"

당혹스런 질문이어도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좀 더 자주 또한 분명하게 말씀 드려야 할 필요성을 내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칭찬에만 귀를 기울이고 눈이 멀어 있기보단 분노와 감정 어린 질문에도 지혜롭고 충실히 대답하는 것이 목회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믿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교회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 또한 목회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필요한 기름을 적절하게 교회에 채어 넣는 자세로...

Tuesday, August 23, 2016

당신의 문화를 변화시켜라


당신의 문화를 변화시켜라
당신이 당신의 문화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당신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Either you will manage your culture or it will manage you).” 라저 카너스(Roger Connors)와 탐 스미스(Tom Smith)문화를 변화시켜라(Change the Culture)라는 책 서두에서 독자들에게 던진 도전적인 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양식을 의미합니다.
어떤 공동체이든 그 안에 독특한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공동체 문화를 조직 풍토라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조직 문화를 그곳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공유 가치(shared value)”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곳 문화를 피해갈 수도 없거니와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승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곳 문화에 적응할뿐더러 그것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면, 그 공동체의 문화를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이끄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요? 교회 방문자들이 우리교회를 찾을 때, 그들이 느끼는 첫 인상이 무엇일까요?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교회를 찾는 이들이 우리로부터 바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교회는 참으로 참신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있어 보인다. 열정적이다. 미래 지향적이다. 전도와 선교지향적이다.”
 물론 그런 긍정적 인상을 보이기 위해서는 우리교회 문화를 조심스럽게 또한 과감하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바람직한 부분은 더욱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고,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은 과감히 버리려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두문불출하고서 관상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거울을 앞에 두고 자기 자신의 상을 살폈답니다. 아무리 자기 얼굴을 살펴보아도 천하고 가난한 팔자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관상 책에서 다음 구절을 읽은 후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얼굴이 좋은 것이 몸이 좋은 것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이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 그 후 그는 관상이 좋은 얼굴보단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도록 힘썼습니다. 오늘날 그의 노년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처럼 곧고 인격적인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도 우리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교회의 얼굴은 교회 문화(풍토)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어떤 생각이 담겨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얼굴, 즉 우리의 문화가 달라집니다. 공자의 말이 문뜩 생각납니다.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의 미움을 받으면, 그는 마지막이다.” 

Friday, August 12, 2016

리우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


리우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시작되던 날 화려한 개막식을 기대하며 TV를 틀었습니다시간 차이 혹은 이곳 시청자의 편의를 고려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NBC는 곧바로 개막식을 보여주지 않아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시청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리우 올림픽 개회식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불안한 경제와 정치 상황으로 낮은 예산으로 기획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개막식은 환경보호라는 분명한 주제를 던졌고특별히 그날 피날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개막식 피날레를 장식할 사람곧 리우 올림픽 성화 마지막 주자에게 관심이 쏠렸습니다혹시 축구 황제 펠레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아마도 이것은 나만의 생각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펠레라면브라질뿐 아니라 전세계 스포츠 팬이 인정할만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성화가 마지막 주자에게 넘겨졌는데아뿔싸 그는 펠레가 아니었습니다사실 그때까지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그의 이름도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개막식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의 소개로 그가 누구인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31회 리우 올림픽 최종 성화 주자는 반데를레이 코르데이루 지 리마(Vanderlei Cordeiro de Lima)라는 불운의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살인적인 무더위와 싸우며 35km까지 선두를 달렸고, 2위 선수와는 무려 300m 간격을 두고 있었습니다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면어렵지 않게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남성이 갑자기 뛰어들어 그를 잡아 넘어뜨렸습니다괴한의 등에 이런 같은 문구가 쓰인 큰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Israel Fulfillment of Prophecy (이스라엘 예언 실현).” 그는 코넬리우스 호런이란 아일랜드 출신 종말론자였고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전세계에 알리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괴한의 습격으로 넘어지긴 했으나 다시 일어난 반데를레이 리마는 계속 달렸습니다그런데 페이스를 잃은 상황인지라 3km 남겨둔 지점에서 2위와 3위를 달리던 선수들에게 차례로 추월 당했습니다하지만 끝까지 달렸고웃으며 결승점에 들어섰습니다.
괴한의 습격으로 소중한 금메달을 잃은 브라질은 금메달 공동수여를 IOC에 청원했으나 페어플레이 선수에게 부여되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로 만족해야 했습니다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금메달에 놓쳐 누구보다 실망했을 당사자 반데를레이 리마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설령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우승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나는 3위 이내 입상을 목표로 했고영광스런 동메달을 받았습니다.”
개막식을 중계한 아나운서와 인터넷 자료를 통해 반데를레이 데 리마라는 인물을 알고 나니 누구보다도 그가 올림픽 성화 마지막 주자로서 합당했다는 생각입니다불운을 탓하기보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던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Friday, August 5, 2016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태어난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나무가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른다는 듯이 말이야. 나무가 온 에너지를 다해, 온 집중을 다해, 전력투구로 서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 말이야.”
늘 서 있으니까.”
?”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어째서 실뿌리 가닥까지, 모세혈관 같은 실뿌리 한 가닥까지 나무가 온전히 제자리에 서 버티고 있을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한다는 생각은 못하는 거지?”
나무들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논리는 벗어난 그 말만 나는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2015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김숨의 뿌리 이야기 중에서)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이 짧은 말 한마디는 흔히 일컫는 고정관념(stereotypes)이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눈높이 대백과사전은 “고정관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사람을 볼 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생각이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관념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관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설명이자 정의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을 좀 더 쉽고 짧게 설명하자면, 사물을 볼 때, 틀에 박힌 시각으로 보는 것이 고정관념일 것입니다.
고정관념은 타인을 향한 부정적 시각 혹은 편견(prejudice)의 사생아입니다. 그래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각 개인의 차이를 고려하려 노력하기보단 모든 이들을 모조리 싸잡아 생각, 곧 범주화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고정관념의 가장 큰 해악은 어떤 집단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부정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미리 가정해버립니다. 뿌리 이야기에 소개된 것처럼 고정관념의 희생자가 되면, 한 그루 나무가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며, 늙고 병들어 결국 자신을 낳아준 흙으로 되돌아가는 고귀한 삶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못합니다.

"신념이 비틀어지면 편견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념은 자신이 믿는 바를 확고히 고수하려 힘쓰면서 그와 동시에 타인의 생각을 섣불리 무시하려 하기보단 열린 마음으로 대하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옳게 바라보고 감사하며 서로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런 시각이 주님의 교회에서 더더욱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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