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7, 2016

We can learn. We can choose.



We can learn. We can choose.
한국과 일본 시간으로는 지난 주 금요일인 5 27일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습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후71년이 지났을 무렵입니다. 그곳에서 그가 전했던 17분 연설은 전쟁의 공포와 폐허의 참혹성을 거론했습니다.
연설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특별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전쟁에서 사용한 경험이 있는 군사 초강대국 지도자로서의 책임 있는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원자폭탄 투하로 참혹하게 파괴된 도시를 바라보게 될 때 느낄 공포감을 언급했고, 그와 동시에 아침마다 어린이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소리를 언급하면서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하루하루의 행복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71년 전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날 아침 하늘로부터 죽음의 사자가 떨어졌고, 그것은 세계를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강력한 빛과 불기둥이 한 도시를 파괴했고, 그 사건은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할 수단을 갖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연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왜 우리가 이곳, 히로시마에 왔느냐고요? . . . 부녀들과 자녀들을 포함한 십만의 일본인들, 수천의 한국인들, 그리고 수십의 미국인 포로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 안을 살펴보라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라고. 또한 우리가 어떤 존재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깨달으라고.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도록 지음 받진 않았습니다.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 전쟁이나 잔혹을 거부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71년 전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을 사과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습니다. 히로시마 방문 후 미국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2차 대전 원흉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으로 목숨을 잃은 숱한 희생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 위령비에 헌화했습니다. 하지만 실로 아쉽게도 그곳에서 불과 15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한국인 위령비는 찾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그곳으로 발걸음 옮겨 꽃 한 송이라도 놓아 주었더라면. . . 만약 그랬더라면, 금번 그의 히로시마 방문이 결코 일본의 전쟁 과오에 대한 면죄부가 아님을 더욱 강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 .

과거의 역사를 거론하는 것은 그때의 일을 잊기 위함이거나, 잘못한 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때의 과오로부터 배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Friday, May 20, 2016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이 쓴 “흔들리며 피는 꽃”입니다지난 날 자신의 삶을 꽃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도종환그는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의정활동을 시작했으나 금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청주 홍덕구 선거구에서 당선해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하지만 내가 이 목회칼럼에 그의 이름을 적는 이유는 국회에 두 번째 입성한 그의 성공담을 늘여놓기 위함이 아니라 지난 날 척박한 삶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생의 향기를 추구했던 그의 의지를 높이 치하하기 위함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중학교 시절 부친이 사업에 실패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고모 집에 의탁된 어린 도종환은 부모가 보고 싶은 밤이면 창틀을 붙잡고 눈물 흘리며 편지를 썼습니다가난 때문에 책을 구입해 읽진 못했으나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가 시인이 된 것은 어린 날 꿈의 실현이라기보다는 현실에 적응한 결과입니다미대를 가서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이 허락하지 않자 지방대 국어교육과를 선택했습니다광주민중항쟁이 터졌을 때그는 군대에 있었고여수와 순천 국도변 바리케이드 뒤에서 총을 들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그때 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문학은 상실과 좌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아내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을 때 32살이었습니다두 살짜리 아들넉 달밖에 되지 않은 딸을 두고 떠났습니다홀로 어린 자녀를 키워내기 위해서라도 시 창작에 매달려야 했습니다학교 교사로 있었을 때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조성해보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학생들을 뒤에 두고 감옥에 끌려가야 했고 결국엔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그 후 학교로 복귀하는데 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외로움과 가난과 좌절과 억방과 상실과 버림받음과 아픔이 없었다면 나의 문학도 없었을 것이다나는 이제 그것들에 감사하며 그것들 하나하나가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외롭고 가난하고 절망스럽지 않았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그가 했던 말이 나의 마음을 진하게 울리며 다가옵니다.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지 않는다."

Friday, May 13, 2016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과 인공지능
금년 3월 한국은 이세돌과 인공지능(AI)과의 바둑대결이 있었습니다. 대국 전날까지만 해도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인공지능이 복잡한 추리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 두뇌를 따라올 수 있겠는가? 아직 인공지능을 인간에 견주기엔 역부족이다. 금번 대국은 5-0 이세돌 완승이 예상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인공지능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첫째, 둘째 그리고 셋째 대국에서 연달아 이세돌 9단을 꺾는 기염을 토함으로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큰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떻게 복잡한 묘수가 요구되는 바둑게임에서 인공지능이 그토록 창조적 사고로 대처할 수 있나?” 물론 이세돌 9단은 다섯 대국의 넷째 판에서 가히 천재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발한 묘수로 알파고를 이겨내어 인공지능이 인간에게서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습니다.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경기는 인공지능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한껏 고조시키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가 국가 예산으로 인공지능 계발에 투자하도록 했습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IT 회사들은 사업의 극대효과를 위해 곧바로 인공지능과 자신들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재빨리 연동해 고객의 관심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과의 실용적 연대능력에 따라 미래 IT 산업의 승패가 엇갈릴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IT 업계에서만 활용되지 않고, 인간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에 무관심하면 뜻하지 않는 순간에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평생 몸담을 것이라 믿었던 직장도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하긴 조만간 인공지능이 창작한 소설을 읽게 될 것이라 하니 놀랍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갖는 것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점차적으로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요? 물론 인공지능의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곧 인공지능의 능력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 중 누가 미래의 승자가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질문에 별로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패배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인지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개미, , 나무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창작해 낸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가 한국 방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군요. “인공지능(AI)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AI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전적으로 그의 말에 동의합니다.

Friday, May 6, 2016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프랑스가 낳은 대() 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 2. 26-1885. 5. 22)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 1831)로 전 세계적으로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을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국제적 문호로 등극했습니다. 물론 이 소설 이외에도 숱한 주옥과 같은 글이 그의 손을 통해 쓰였습니다.
그는 83년의 일생을 살았는데, 그가 생존했던 19세의 프랑스 사회 변천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비록 현실은 힘들어도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할 것이라는 낙관적 신뢰와 이상주의적 사회 건설을 여전히 꿈꾸었고, 그런 생각이 그의 저서에 눅눅히 녹아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첨예하게 맞붙게 된 신(()체제, 공화파와 왕당파, 귀족과 시민, 더 나아가서는 프랑스와 영국이란 숱한 대립과 긴장 속에서 방데 반란(War in the Vendée, 1793-96)이 일어나는데, 바로 그 반란을 배경으로 쓰여진 글이 93(Ninety-three)입니다. 이 책 가운데 독자로 하여금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혁명 후 불란서는 극도로 어지러운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온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어느 군부대가 이동하면서 숲 속을 지나가던 중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서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배가 고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쓰러진 아이들을 목격하고서 너무 불쌍하게 여긴 나머지 상사 한 하나가 빵 한 덩이를 던져주었습니다. 빵을 받은 어머니는 지체 없이 그것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세 아이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기뻐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상사에게 묻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그때 상사가 조용히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바로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자식에겐 먹을 것을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어도 자식이 빵을 먹으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자식은 모릅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을. 어머니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계속해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배고픔과 목마름을 묵묵히 참아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식을 조건 없이 그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 . 어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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