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사명을 다하기까지
영국 해군 장교이자 남극 탐험가인 로버트 스콧. 인간적으로 볼 것 같으면, 그는 탐험대장으로서는 별로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를 좋아하지 않은 당대 사람들은 스콧이란 사나이를 음험하고, 쪼잔하고, 오만하며, 고집불통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별볼 일 없는 사나이가 영국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남극 탐험 완수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다 최후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당대 탐험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섀클턴도 남극원정에 동행했지만 1908년 12월에 남극점 100마일 전방까지 갔다가 상황이 악화되자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새클턴과 경쟁관계이던 스콧은 섀틀턴에게 남극점 도달 최초 영예를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섀클턴보다 앞서 남극점에 도달하고자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땐 섀클턴이 아니라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과 경쟁에 돌입합니다.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된 스콧의 탐험대가 최후 원정에 나선 지 3개월 후, 즉 1912년 1월 17일 어렵게 남극점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극점 정복 후 그 일행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곳에 이미 꽂혀 있는 깃발과 그들에게 남겨진 노트를 통해 로알 아문센이 이끈 노르웨이 탐험대가 한달여 전 이미 그곳을 다녀갔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극점 도달한 후 영국 탐험대는 귀향 길에 극한의 추위, 굶주림, 그리고 탈진 속에서 한사람 한사람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그해 3월말 베이스 캠프를 불과 11마일 앞두고 스콧도 최후를 맞습니다.
탐험대원이 하나하나 목숨을 잃어갈 때 남겨진 감동 이야기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발 동상 때문에 탐험대 베이스캠프로 귀환 속도가 늦추어지자 로렌스 오츠 대원이 3월 16일 이렇게 말을 전하고 텐트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I am just going out and may be sometime).” 그리고 눈보라 속으로 총총 사라진 그는 다시는 모습을 그러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때문에 탐원대 전체가 위험에 처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희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원정대원 중 하나도 고국 영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맡겨진 임무를 감당한 후 이 세상을 떠나간 영국 남극 탐험대. 그들의 사망 95주년 2007년 1월 탐험대장 스콧이 부인과 아들 그리고 친구에게 남긴 편지들이 발견되었고, 그후 그것들이 차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편지에서 스콧은 살아 생전 국가의 명을 받아 남극점 정복에 나설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밝히고, 노르웨이 탐험대에 최초 남극점 도착이란 영예를 빼앗긴 것에 대한 회한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편지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있는데 유난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만약 병든 동료들을 내팽겨쳤다면 귀환이라는 임무는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 . (하지만) 우리 탐험대는 궁지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 궁지와 당당히 맞섰다는 이유에서 충분히 영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세웠노라 자부한다." 그리고 그 서신 아래에 이런 추신을 달고 있습니다. "영하 40도입니다. 근 한 달 동안 그러네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主)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복음(福音) 증거(證據)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生命)을 조금도 귀(貴)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