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7, 2015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전에 어느 미국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목사님께서 교우들 중 한 분의 소개로 어떤 가정에 전도 심방을 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그 가족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도중 그 아버지의 마음을 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이런저런 것을 이야깃거리를 꺼내 힘들게 대화를 간신히 이어갔습니다. 그리고상황이 허락된다면 교회에 한 번 나와 보지 않겠습니까?”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고서 절대로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 교회는 우리를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장애자인 내 아들이 자유스럽게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사실 그 목사님이 섬기던 교회에 장애자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물론 그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에게 굳이 장애자 시설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 발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아버지에게 장애자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휠체어에 의지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힘들게 교회 나오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갈 때마다 그토록 힘들게 남의 신세를 지느니 차라리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서 목사님은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얼굴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결단이 선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저희 교회가 아드님께서 편안하게 성전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한다면 저희 교회에 나오시겠습니까?” 결국 목사님의 간곡한 설득 후 장애자 시설이 마련된다면 교회에 나가겠노라고 그 아버지가 약속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주간에 긴급히 재단이사회를 소집해 장애자 시설 설치를 제의했습니다. 너무 뜻밖의 제안에 재단이사회 모두가 당혹해 했지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서 결국 장애자 시설을 설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긴급예산을 세워 장애자 램프와 엘리베이터까지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자신과 약속했던 그 가족 모두를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장애자 가정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교회가 십만 불 넘게 투자했지만 그 십만 불은 지불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돈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 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된 교회는 돈의 가치가 아닌 영혼의 고귀함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귀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기꺼이 투자할 의향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사랑나무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Thursday, September 10, 2015

삶의 현장은 배움의 학교



삶의 현장은 배움의 학교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 (Mein Kampf)에서 삶의 현장은 배움의 학교라고 정의합니다. 특별히 삶의 현장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학교는 더욱더 큰 배움의 산실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런 이해 속에서,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그런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을 신()의 절대적 섭리라 여기고서 감사했습니다. 또한 설령 그 학교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게으름을 부린다든지 불평과 원망의 수단으로 삼고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바로 그런 힘든 학교야말로 히틀러 자신을 더욱 빠르게 그리고 철저하게 교육시켜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다음은 히틀러의 말입니다.
당시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그들의 외면적인 관습이나 생활과 그들이 타락해가는 원인을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만 했다. 절망하지 않고 이러한 모든 것을 견뎌나가자면 이 방법뿐이었다. 그 경우에 모든 불행과 비참 속에서, 오물과 외면적 타락 속에서 이미 인간이 아닌 슬퍼해야 할 법칙의 슬퍼해야 할 결과가 생겨난다. 그때 나 자신의 결코 용이하지 않은 생존경쟁의 고난이 비참한 감상에 빠지고, 이 진행 과정의 타락한 산물 앞에 고개 숙이는 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아니, 이것은 그와 같이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 앞에 펼쳐진 불행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하나는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보다 나은 기회를 추구하고자깊이 있는 사회적 책임감을 소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심히 힘든 괴물이라 할지라도기어이 꺾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결심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히틀러가 일으켰던 실로 무시무시한 세계2차대전과 수많은 유태인들을 잡아다 무참히 살해했던 행위를 결코 동의하거나 칭찬할 순 없습니다.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의 행위가 악했다 할지라도 그에게서 배움을 얻을 순 있습니다. 특별히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힘들게 삶을 개척하다가 독일이 세계1차대전 화염 속에서 황폐되고, 전쟁 패배국으로써 숱한 빚을 짊어지고서 깊은 신음 중에 빠져 있을 때, 자국민(自國民)을 향하여우리 독일 민족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의를 딛고 우리는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신의 뜻입니다라고 외치며 희망의 씨앗을 심었던 것은 높이 살만합니다. 물론 그가 전쟁의 폐허로부터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 속에서 세계2차대전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유태인들을 그토록 학대하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좋았겠지요.

Thursday, September 3, 2015

삶의 행복과 고통



삶의 행복과 고통

내 책상 위에는 누에고치가 여러 개 있다고치에는 누에 나비가 나오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 작은 구멍으로 큰 누에 나비가 나올 수 있으리라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에나비 한 마리가 작은 구멍에서 긴 시간 동안 온갖 몸부림을 치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그 가엾은 나비를 도와주려고 누에고치를 가위로 오려 큰 구멍을 내주었다좁은 구멍에서 나온 누에고치들은 날개를 찢기는 고통을 당했으나 가위로 크게 구멍을 내준 나비는 쉽게 고치에서 나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아름다운 날개를 퍼덕거렸다나는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러는 동안 구멍을 비집고 나온 나비는 한 마리 한 마리씩 날개를 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나온 나비는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책상 위를 맴돌더니 얼마 후 지쳐서 쓰러졌다.
누에나비는 작은 구멍으로 나오며 애쓰는 동안 힘이 생기고 물기가 알맞게 말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으랴.

이것은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 일부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그의 말대로 사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는 만약 우리에게 고통이 없다면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비극적 상황 역시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죠물론 느닷없이 찾아오는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굳이 우리가 고통을 필요로 하지 않겠지요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오직 천국에서만 가능할 뿐이겠죠.
유대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1942년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 끌려갔으나 3년 후 구사일생 생존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그래서 92세가 되어 이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바로 오늘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했고살아 있는 동안 순간마다 늘 감사하고 그 순간에 대한 의미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보니까 몸이 튼튼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살아남지 않더라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더라.” 삶에 의미를 찾고자 싶다면주어진 고통을 속에서도 반드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단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옮겨 적습니다.

행복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저 어리석은 작자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한단 말이야비록 저들이 현자의 돌을 손에 넣어 봐야현자는 사라지고 돌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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