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 2019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2:4-9 (2019 9 1일 주일예배)
창세기를 읽을 때 우리가 만나는 딜레마 중 하나는 창 1장과 창 2장에 소개된 창조 이야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시 창세기를 읽다가 여러분도 그런 딜레마를 만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어떻게 그 딜레마를 해결하셨나요?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을 이렇게 해결했습니다. “ 1장은 범우주적 창조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고, 2장은 인간 창조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창 1장과 창 2장을 읽었더니 그 둘의 차이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둘의 차이가 나를 딜레마로 몰아넣기보단 오히려 성경을 이해하는데 보완역할을 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어찌 하여튼, 오늘 본문은 에덴동산과 인간창조에 관한 기사입니다. 땅이 벌거숭이였을 무렵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삶의 터전으로써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7). 무엇보다 먼저, 이 구절에서 우리가 눈 여겨 살펴야 할 부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지었다(formed)”는 히브리어로 요싸르(yaw-tsar')인데, “(어떤 형상으로) 빚어내다란 의미입니다. 곧 토기공(potter)이 진흙으로 원하는 형상을 빚어낸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면, 일정한 목적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손수 빚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러가는 동안 흙에서부터 사람이 진화되어 나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빚어졌습니다. 누구에 의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더 나아가서, 토기공이 목적을 가지고 원하는 그릇을 빚어내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일정한 목적 가운데 우리를 손으로 직접 빚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가 눈 여겨 살펴야 할 부분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빚으셨느냐?”는 질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 곧 땅의 티끌을 사용해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아담(aw-dawm')”불그레한, 뻘건, 선홍색의, 진홍색(ruddy, red, crimson, scarlet)”이란 의미를 가졌습니다. 아담 곧 사람이 불그레한, 뻘건이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건대, 우리 인간은 흙에서 나온 게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낸 창조물입니다.
그런데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극히 하찮게 보인 흙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선 그 안에서 사람을 미리 구상하신 것입니다(흙 속에서 사람의 형상 이미지 PPT).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위대한 예술가이십니다. 최초의 예술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술가 중 최고의 예술가이십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서 실로 소중한 것을 만들어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 갤러리에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스튜디오로 걸어 가면서 몇 년 전 산에서 가져온 커다란 대리석이 풀과 덤불로 덮인 채 길가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길을 수없이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아침엔 그 거대한 대리석 앞에 멈추어 서서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번 더 그곳을 찾아가 살폈습니다.
He had walked this way many times, but this time, he stopped and examined the huge block of marble, walking around it several times.
그러다 갑자기 그는 그 대리석이 시 당국으로부터 자기에게 위임한 숙제였던 조각상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함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작업실로 가져다 거의 4년 동안 다윗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문헌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나는 그 대리석에서 다윗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다윗만이 남을 때까지 다윗이 아닌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돌보다는 가치 있는 대리석을 가지고서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운 다윗상을 조각해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하찮은 흙, 땅의 티끌을 가지고서 위대한 아담(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욱 위대한 예술가입니까? 물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위대하시죠.
흙을 보더라도 어떤 눈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그것의 가치가 달라 보입니다. 또한 그것의 쓰임 받는 용도가 달라집니다. 우리에게도 흙 속에서 아담(사람)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올바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실로 중요하거든요.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 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신 후 날 바라보시고서 실로 좋다, 참으로 아름답다고 감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31).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심히 보기 좋습니까? 심히 아름답습니까? 참으로 소중해 보입니까? 물론 그렇게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7)입니다.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어낸 후 하나님께서 그것의 코에 생기(the breath of life)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흙으로 빚어진 형상이 생령(a living soul)이 되었습니다. “생령살아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사림이 생령이 된지라.”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같은 행동, 즉 먹고, 마시고, 걷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할뿐만 아니라 이성적 존재로서 생각하고, 사고하며, 결단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은 단순한 먼지 덩어리, 고깃덩어리가 아닌 생령, 즉 살아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도덕적으로 인격을 성숙시키고, 하나님께 받은 영감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고귀한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특별한 목적 가운데 기획되었고, 빚음 바 되었습니다. 그것도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 가운데. 그래서 우리 각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서 이 땅에 태어났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뜻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획하신 최고의 자신을 분명히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나도 아름답겠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나(the Me in God’s grand design)를 찾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 이래서, ~ 저래서 어쩔 수 없다란 궁색한 변명을 더 이상 품고 살아선 아니 됩니다. 차라리 이렇게 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 그의 손으로 친히 빚음 바 된 소중한 존재이다.” 더 이상 패배주의 희생자가 되어선 아니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의 모습대로 지음 바 된 창조의 걸작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금껏 어떻게 걸어왔느냐 보단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슴에 새겨두기 바랍니다. “무엇이 가능한지 생각하기 앞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무엇이 되고자 하느냐가 주어진 환경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물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이 갖고 있는 꿈이 그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꿈은 하나님 우리를 손수 빚으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음을 늘 기억했으면 합니다.
많은 경우 참으로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뜻하신 최고의 나 자신이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상이 대리석에 갇혀 있었던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중 숙제는 바로 갇혀 있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습을 회복하도록 이젠 풀어놓아야 합니다. 나사로를 헝겊으로 둘둘 말아 무덤에 매장했던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그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11:44).
어떻게?
모든 두려움, 의심, 불안, 부정적 감정, 또한 그릇된 믿음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가 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뜻하신 나를 추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실수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다이빙 선수 그렉 루가니스(Greg Louganis)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그렉 루가니스가 아메리카 경기에 참가했을 때, 국제 다이빙 게임 경쟁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보드에 올라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내가 이 다이빙에서 실수한다 해도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런 후 최고 점수를 추구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가 심호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설령 오늘 내가 실수한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오늘 역시도 완벽한 10점을 추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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