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6, 2019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고후 2:12-17 (2019 8 4일 주일예배)
사도 바울이 드로아 항구도시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방문, 즉 그의 두 번째 선교여행 때와는 달리 전도의 문이 쉽게 열려 이곳 저곳을 돌며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전할 수 있었습니다. 순조로운 전도활동이 가능케 했던 연유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12). 곧 주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일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디도와 만남을 갖지 못해 사도 바울의 마음이 무척 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13절 상반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참고로, 바울에게 디도는 믿음의 아들이자 신뢰할만한 선교 동역자였습니다. 선교여정에서 마치 디모데처럼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교회를 힘써 돌보던 디도에게 서둘러 드로아로 건너와 그곳에서 만남을 갖기로 약속했었습니다. 분쟁 많던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교회형편을 디도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계획보다 일찍 그 도시에 도착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정상 디도가 늦게 왔는진 알 수 없지만, 끝내 그 둘은 그곳에서 만남을 갖지 못했습니다.
결국 드로아에서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사도 바울은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서 마게도냐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마게도냐로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반스 (Barnes) 성경주석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첫째,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해 심령이 편치 못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게도냐로 건너온 디도가 바울을 찾아 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린도교회에 보냈던 바울의 권면이 받아들여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디도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 눈물로 적었던 그의 조언에 고린도교회가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셋째로, 마게도냐 선교가 성공적일 것이란 강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사도 바울은 모처럼 큰 위로와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그 결과 그가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 드린 조건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감사조건은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항상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도록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14). 온갖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속적인 인도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로 이곳 저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향기)를 드러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4). 좋은 향기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곳 저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입술과 삶을 통해 전해지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의 믿음의 승리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 속에서 드러낼 수 있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가능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우리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 모두에게 바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고 쓰러지기보단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처한 환경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들 앞에서나. 죄악 가운데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 앞에서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15).
아무리 값이 비싸고 좋은 향수일지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썩고 맙니다. 좋은 향기를 품었다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썩은 냄새만 풍겨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면, 요단 강 남쪽 끝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호수이자 강입니다.
길이는 47마일, 폭은 10마일, 해발 1,292피트입니다. 요단 강에서 매일마다 오백만 톤의 물이 유입됩니다. 그러나 아래에 위치한 계곡으로 물을 흘러 보내지 않기에 그곳은 건조한 사막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곳 물은 바다보다 무려 다섯 배나 수분 농도가 강하고, 쓴 맛이 나며, 어떤 곳은 기름기가 섞여 있습니다. 그 물엔 어떤 물고기도 살지 않고, 그 기슭엔 꽃도 피지 않으며, 과일도 자라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새도 그 주변에서 노래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 주변 모두 하나님의 저주가 덮친 것처럼 황폐하고 우울한 기분을 자아낼 뿐입니다. 오직 죽음만 연상됩니다. 그래서 그곳을 죽은 바다”, 사해(死海)”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좋은 것을 받고서도 정작 아무 것도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 역시 사해, 즉 죽은 바다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냄새가 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이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있습니다. 삶의 냄새도 있습니다. 물론 셋째 냄새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16).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냄새가 나는 것일까요?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 아니면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17절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첫째,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귀로 듣고,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고, 입술로 외치며, 삶으로 말씀을 실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성이나 세상 철학, 윤리, 도덕과 혼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것은 아니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둘째 아들 현우가 하와이에 전도여행 갔다가 코나 커피 두 봉지를 사왔습니다. 100% 코나 커피라고 강조하더군요. 물론 코나 커피 향을 재대로 즐기고 싶다면, 그것을 다른 커피와 섞어선 아니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다 해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이 있는 곳에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 열심히 동참해야 합니다.
어느 정원에 향기 나는 항아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평범한 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였습니다. 하지만 정원에 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상하게도 그 항아리에서 좋은 향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식물들이 그 항아리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좋은 향기를 만들어내니?” 그때 그 항아리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전에 무척 좋은 향기를 내는 카사블랑카 백합과 가까이 있었거든.”
사실 우리가 뿜어내는 향기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린 그 향기를 말로써, 삶으로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발티모어의 외과 의사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하워드 켈리 박사는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면, 양복 옷깃에 싱싱하고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를 꽂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장미는 하루 종일을 시들지 않고 싱싱함을 유지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비밀을 묻자, 그가 옷깃을 들추어 그 비밀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물이 담긴 작은 병이었습니다.
만약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면, 늘 싱싱할 것입니다. 뿜어내는 삶의 향기도 변질되지 않고 항상 신선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아름답고 향기 나는 생활은 그리스도의 생수를 날마다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향기 나게 커피 잘 뽑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녹차 잘 우려내기는 더 어렵다. 차 향내를 밝히면서도 사람 향내는 풍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찻잎이 그렇듯이 사람도 자라면서 점점 타고난 향내를 잃어버리고 떫은 맛만 낸다. 향내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사람 냄새라도 풍기는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강운구, 시간의 빛 중에서)
우리 각자에겐 향기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향기가 달라집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현재 자신이 풍겨내는 향기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15, 16). 꽃의 향기처럼, 우리의 삶의 좋은 향기가 다른 이들을 우리에게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 예수께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삶이 극한 도전입니까? 그런 환경에선 그리스도의 좋은 냄새를 발산하기 힘들다 하소연하십니까? 그렇다면 혹시 발칸산맥 장미 향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가장 향기로운 향은 발칸산맥에서 피는 장미에서 추출된다고 하겠죠? 그것도 밝은 대낮이 아닌 어두운 밤 2시에. 그 어둔 시간에 장미가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랍니다.
베개의 눈물을 적셔본 자가 삶의 아름다움을 압니다. 그런 삶이 풍겨내는 냄새가 향기롭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뿜어내는 삶의 향기가 진정 아름답습니다.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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