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28, 2019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세워주십시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세워주십시오
3:12-19 (2019 7 28일 주일예배)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탄생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격려로 용기를 불어넣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교회 성도들은 아무도 그를 그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교회는 그를 격려/위로의 아들(son of encouragement)”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쯤 말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는 바나바인데, 그것은 격려의 아들이란 의미의 별명입니다.
우리는 그가 보였던 수많은 격려의 말과 행동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4장에 보노라면, 그가 자신의 논밭을 팔아 사도들 앞으로 가져왔는데, 그것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필요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9장을 보노라면, 바나바가 다시 등장하는데, 그때는 사울, 곧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를 배척하려 했는데, 그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쉽게 믿기 힘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시간에 교회 핍박자이었던 사울의 곁으로 누가 다가갔던가요? 그는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로 데려와 어떻게 그가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개종하게 되었는지, 또한 개종 후 다메섹에서 그가 예수의 이름을 얼마나 담대히 선포했는지를 대신 말해주었습니다.
15장에 보노라면,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선교여행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너무 힘들다고 선교팀을 떠나버린 마가를 두 번째 선교여행에 다시 동참하도록 누가 길을 열어주었던가요? 물론 그는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 그는 사람을 믿어주는 자였습니다. 격려하는 자였습니다. 끝까지 품어주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세워주라고.
사실 격려의 본은 바나바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혹시 성경에서 예수께서 어떤 사람을 낙담시킨 적이 있었나요?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예수께서 사람을 낙심케 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런 적이 결코 없으셨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께서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은 죄악으로 엉망진창이 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런 여인에게 격려의 말씀을 하셨나요? 아니면 낙심케 하는 말씀을 하셨던가요? 물론 예수께서 그녀의 영성과 믿음을 세워주는 격려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8장에 소개된 간음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 당시 지도자들은 그녀를 돌로 쳐서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에 예수께선 어떻게 하셨나요? 그녀를 격려하셨나요? 아니면 낙담케 하셨나요?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런 실로 놀라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8:11). 
7장에 소개된 바리새인의 집으로 들어와 예수님의 발에 엎드려 울던 그 죄 많은 여인을 생각해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악명 높은 죄인을 자기 집에서 쫓아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녀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던가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7:50).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들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16장을 보노라면, 골고다 십자가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앞둔 바로 전날 밤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갖고서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실 때였습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6:33).
그토록 힘들고 괴로운 시간에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염려하시고, 그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런 격려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길 희망하신 모습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서/주 예수께서 우리가 서로 격려하길 원하시건만, 우린 그와 반대로 행동하곤 합니다. 서로 격려하는 대신에 서로 낙심케 합니다. 남의 장점을 보기보단 약점에 집중합니다. 남의 좋은 면을 칭찬하기보단 결점을 비판합니다. 서로 세워주려 하기보단 넘어지게 만듭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3:13).
혹시 격려하다란 헬라어 단어 파라칼레오(parakaleo)가 신약성경에 무려 105번씩이나 사용되었음을 알고 계셨습니까? 참으로 자주 언급된 단어이죠?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격려 혹은 권면은 지극히 귀한 성령의 은사 중 하나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까, “격려하다(encourage)”는 고대 프랑스어 encoragier에서 유래되었더라고요. , en(make, put in) + corage (courage, heart)로써, 쉽게 말해서, “~에게 용기를 불어넣다(to add courage to)”란 의미이겠죠?
격려는 다른 사람을 대담하고 용감하도록 돕습니다. 격려는 타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확고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반면에, 낙심의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용기를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맨 앞쪽에서 달리던, 맨 뒤쪽에서 따라오던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 만약 사람들의 응원이 있다면, 그 응원 때문에 우린 힘을 내어 열심히 달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격려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해 베풀어야 합니다. 격려는 매우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 링컨 대통령 역시도 격려를 필요로 했습니다. 포드 극장(Ford’s Theatre)에서 암살 당한 그날 밤 링컨 대통령에게서 몇 가지 휴대용품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찬한 신문 기사 스크랩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격려가 필요함을 입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격려하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힘써 일하면, 그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격려해주길 원합니다. 최선을 다해 계속적으로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힘을 불어넣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는 경건한 격려 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조언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격려는 더욱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견책(譴責) 후 격려는 비가 온 후 태양과 같습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말로써 격려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서로에게 격려를 베푸는 가장 보편적 수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25:11).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특별히 제조된 보석과 같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선교여행 중 세웠던 교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그곳 제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믿음 안에서 계속 거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믿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우린 서로를 세워주고자 힘써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 가운데 시시때때로 우리 모두가 힘들고 도전적인 상황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사도 바울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11, 12).
그의 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바울 역시도 격려를 필요로 했습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하는 사람이 되려 힘썼습니다.
우리가 힘들어 할 때, 곁으로 다가와 앞에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와 그분의 선하심으로 우리 생각을 맞출 수 있도록 권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격려와 위로의 은사를 잊지 말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내게 아첨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비판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무시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를 격려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아더 워드)
누군가로부터 좋은 것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말해주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에 큰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예로 들어서, 만약 예배 도중 누군가가 은혜롭게 찬양을 부른다면, 그에게 그것을 말해주십시오. 만약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단했다면, 믿음 안에서 굳게 설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만약 누군가가 일을 잘했다면, 잘했다고 그의 등을 두들겨 주십시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적당한 때 격려의 미소는 시든 꽃닢에게 햇볕과 같다.” 우리의 미소가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판매왕 지그 지글라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권면을 들려줍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할 때, 그 과정 속에서 당신 역시 격려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격려가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불러온 헌신과 변화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격려는 실로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지그 지글라)
우린 구체적 행동으로써 서로를 격려할 수 있습니다. 행동은 말보다 소리가 크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 꾼이 되도록 권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로 서로를 격려합시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를 말해줍시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줍시다. 그리고 본을 통해 남들을 격려합시다. 바로 오늘.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3:13).
주님의 교회는 격려 꾼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야 말로 교회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동력이 됩니다. 바로 여러분과 내가 그런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교회 안에서 격려 꾼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비난 꾼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어릴 때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가수가 되고픈 열망을 가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열 살이 되었을 때, 생애 첫 보컬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으로부터 고무적인 칭찬은 듣진 못하고, 오히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노래할 수 없어. 네겐 음악적 소리가 없어. 네 목소리는 덧문 바람소리처럼 들리거든.”
하지만 어머니는 그가 노래 부르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아들을 껴안고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보컬 학습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마.”
어머니의 격려와 헌신은 그 아들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악가 중 하나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엔리코 카루소입니다.
1916년 그가 불렀던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 "Cantique de Noël")을 들려드리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5t7pOs4vc)

Friday, July 26, 2019

한인연합감리교회 미래를 위한 평신도 설문조사

한인연합감리교회 미래를 위한 평신도 설문조사
한인연합감리교회 전국 평신도연합회

아래 링크를 누리시면,
설문조사 웹싸이트로 들어갑니다.

용기는 이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용기는 이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겁쟁이 사자가 나오는데, 그는 자신이 밀림의 왕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사자를 막아서며 왜 도망치느냐?”고 묻습니다. 두려워 발로 자기 꼬리를 감추며 사자가 대답합니다. “누군가 내 꼬리를 잡아당기고 있어.” 그러자 네가 그것을 잡고 있잖아라고 말하며 허수아비가 꾸짖습니다.
도로시와 허수아비는 겁쟁이 사자에게 필요한 게 용기임을 깨닫고서 그를 데리고 마법사에게로 갑니다. 마법사에게 부탁해 그가 용기를 찾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자는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란 확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용기를 달라고 마법사에게 물어보기가 두려워!”라고 말하며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며 눈물을 훔치며 도망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법사 앞에 섰으나 겁쟁이 사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법사가 그에게 용기를 선물로 주려 하나, 사자는 그것을 받을 자신이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마법사가 사자에게 제안합니다. “마녀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네게 용기를 주겠다.” 그 제안을 듣고서 사자가 마녀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 죽을힘을 다해 싸워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의기양양하게 마법사 앞에 선 사자가 용기를 달라고 하자 마법사가 종이 한 장에 용기라고 적어 그의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큰 실망 가운데 사자가 마법사에게 따졌습니다. “용기를 준다고 해서 죽을힘을 다해 싸웠는데, 이게 뭡니까? 겨우 종이 한 장이라니요?” 그러자 마법사가 답했습니다. “사실 용기는 이미 네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너는 단지 그것을 꺼내어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야.”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두려울 때, 정작 필요한 게 용기입니다. 그런 시간에 용기를 꺼내어 적극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꺼내어 상황을 돌파해야 합니다. 그것을 꺼내 들고서 두려움을 넘어서야 합니다.
혹시 앞뒤좌우를 살펴보아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주변을 살펴보아도 도와줄 이가 보이지 않습니까? 빠져나갈 길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용기를 꺼내 들고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길이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누군가가 시작했을 뿐입니다.
혹시 두려움 속에서 힘들어 하십니까? 스스로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십니까? 결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습니다. 또한 그 두려움을 능히 극복할 용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용기를 꺼내어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두려운 상황 속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용기는 처음부터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 안에 선물로 넣어두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쉴 새 없이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두려워 말라! (Don’t be afraid!). 용기를 내라! (Take courage!).”



2019. 7. 28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다음주일은 성만찬주일입니다.

3. 주일성경공부와 화요성경공부가 8월 4일(주일)과 6일(화) 각각 개학합니다. 더욱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 동참 바랍니다.

4. 속장/인도자 모임이 오늘 2부예배 친교 후에 있습니다.

5. 남선교회 헌신예배가 8월 25일 2부예배 때 있습니다.

6. 연합감리교회 다저스의 밤(UMC Dodgers’ Night)이 8월 3일 (토) 오후 6시부터 다저스 구장에서 있습니다.

7. 2019년 서부지역 평신도 지도자 수련회가 “회복(Restoration)”(강사: 이덕주 목사, 정희수 감독)이란 주제를 가지고, 8월 19-22일에 레익타호 Zephyr Point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립니다.

8.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9. 헌화 및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0.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Sunday, July 21, 2019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십시오
시편 19:7-14 (2019 7 21일 주일예배)
지불한 만큼 좋은 것을 구입할 수 있다란 표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말을 할 때, “싼 게 비지떡이다란 의미였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구입하려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돈이 아니라 물건의 가치와 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일 품목을 구입하려 할 때는 다른 문제이죠. 물건의 질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갖고 사용할 귀한 것을 원한다면,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질과 가치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이 없다면, 제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한 권 기꺼이 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성전 입구 케비넷 안에도 성경이 여러 권 들어 있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성경이 삶을 위한 안내서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작성하신 것으로써 우리 삶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고로 성경은 삶을 위한 진리의 보고(창고)입니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힘든 과정을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성경이 자세히 가르쳐줍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주 펼쳐 읽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콜로라도 깊은 산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한 늙은 광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죽게 되자, 먼 친척까지도 그의 소중한 유품을 챙겨가고자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평소엔 얼굴도 내밀지 않았던 사람들이. . .
그들은 낡은 판자집 뒤쪽에 세워진 광부의 채석장에 도착했습니다. 채석장 안에는 오래된 요리 냄비, 광산 장비가 있었고, 조그마한 창문 옆에 다리가 셋 밖에 달려 있지 않은 금이 간 낡은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또한 전엔 긴요히 사용되었을 오랜 기름 램프 하나도 탁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유품을 모조리 꺼내어 트럭 안에 싣고서 친척들이 막 출발하려 하는데, 광부의 오랜 친구가 다가와 크게 외쳤습니다. “저 낡은 채석장 안에 남은 것을 제가 가져도 괜찮겠습니까?”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 .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가지세요. 가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챙겼으니까요. 그 안에 남겨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도 좋습니다.”
광부의 오랜 친구가 감사하다고 말하자 그들은 곧 길을 떠났습니다.
광부의 친구가 채석장으로 걸어 들어가서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탁자 아래로 몸을 굽히더니 마루판 하나를 뜯어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친구가 수십 년 동안 채굴해 모아두었던 것을 꺼내길 시작했는데, 그것은 수백만 달러 가치가 되는 금 조각들이었습니다.
늙은 광부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던 친한 친구에게만 그 사실을 알려주고 떠나간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알려주길 원하시건만, 때론 우리가 그를 먼 친척처럼 대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분에 관해 깊게 알게 된다면, 우리를 위해 그가 예비해두신 무한한 보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보화들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분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하시니라”( 10:7).
그 보화들에 관하여 오늘 본문은 이렇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 19:7-11)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을 유익케 할 진귀한 지혜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성경을 대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7).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자꾸만 변해간다 할지라도, 이 시대의 도덕과 윤리관이 자꾸만 타락해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7). “소생케 하다란 단어는 소생케 하다, 회복시키다, 변화시키다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소생케 합니다. 우리 영혼을, 우리 몸과 마음을 회복시킵니다.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로 인도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실로 깊은 지혜를 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학습하고, 암송하며, 귀하게 여긴다면, 만약 그 진리의 말씀을 삶에 꾸준히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미련한 자라 할지라도 지혜로운 자로 능히 바꾸어 줄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8).
성경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제시해줍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의 생각 가운데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매일마다 쉬지 않고 우리가 성경을 책별로, 장별로 읽어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섯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만족과 행복으로 인도함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8).
간혹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면, 불행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염려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노라면, 우리는 정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우리를 위해 성경에 보존해 놓으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에 의할 것 같으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우리 삶을 위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잠언서 기자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30:5, 6).
부흥사 라드니 짚시 스미스가 몇 차례 성경을 훑어보았으나 아무런 감동도 받을 수 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짚시 스미스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들려주었다고 하지요. “그럼 이젠 말씀이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관통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정녕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대충 성경을 훑어보지 말고 정독해서 읽어보라란 의미였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은 성경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은 얼마나 자주 성경을 펼쳐서 읽고 있습니까?”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든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지식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삶의 변화를 위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문학서적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화시켜야 합니다.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을 위한 말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대할 때, “오늘 내 자신을 위해 이 안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나?”라고 물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경은 우리 삶을 위한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삶의 안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이해하면서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속되는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가 변화를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을 깊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짐바브웨 성서공회 사무총장인 게이로드 캄바라미(Gaylord Kambarami)가 어느 날 매우 호전적인 사람에게 신약선물을 건네주려 했습니다.  그러자 남성은 그 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캄바라미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신약성경 한 장 한 장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우기 먼저 그것을 먼저 읽겠노라 약속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 남성은 동의했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15년 후, 두 사람이 짐바브웨에서 열린 컨벤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운 그 이방인은 구원받았고, 이제 전임 부흥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청중에게 이렇게 간증했다고 합니다. “나는 마태복음으로 담배를 피웠습니다. 마가복음으로 담배를 피웠습니다. 누가복음으로 담배를 피웠습니다. 하지만 요 3:16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말아 담배로 피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내 인생이 변했습니다.”
설교 가운데 찰스 스펄전 목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끝까지 믿거나 아니면 아예 믿지 않길 권합니다. 하나님의 책을 믿되. 그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을 믿거나 아니면 모두 거부하십시오. 이 둘 사이엔 논리적 타협은 존재치 않습니다. 거룩한 계시의 넓은 강물에서 힘껏 헤엄치는 신앙 이외엔 만족하지 마십시오. 기껏해야 강물의 가장자리에서만 노를 젓는 것은 가난한 믿음입니다. 그것은 육지에서 노를 젓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도덕관과 윤리관이 혼탁했던 때가 유사이래로 없었습니다. 이런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의 말씀을 향하여 가깝게, 더욱 가깝게 나아가고자 힘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매일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암송하십시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에 절대 복종하십시오. 그러면 삶의 변화를 경험할 것이고, 삶이 정녕 행복해 질 것입니다.
1852년 데이빗 리빙스턴이 아프리카 대륙 여행을 시작했을 때, 180 파운드 무게가 나가는 73권의 도서를 실었습니다. 300 마일 정도 나아갔을 땐, 상당량의 책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 많은 책을 가지고 정글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밀림 속으로 더욱 깊게 들어가면서, 그는 계속해서 책을 버리고 또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단 한 권의 책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었는데, 그것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90 9 24일 한국 김포공항을 떠날 때, 두 권의 책을 들고 왔습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갈매기 요나단이었습니다. 갈매기 요나단은 원본 그대로 지금까지도 소장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렇지 못합니다. 매년마다 적어도 한 번씩 성경을 통독한 습관이 있는지라, 처음 가져왔던 성경은 손떼가 묻고 묻었고, 표지와 안쪽이 모조리 헤어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벌써 몇 번째 성경은 새 것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어떤 책이라도 아무리 좋다 해도 몇 번 읽으면 식상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더라고요.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책이 성경이더라고요. 그래서 시편 기자처럼 나 역시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9:10).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고 지혜를 얻읍시다. 성경을 믿어 하나님의 보호를 누립시다. 성경을 삶에 적용하여 거룩함으로 나아갑시다. 아멘?

Friday, July 19, 2019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성경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성경
기원 후 303년 어느 날 로마의 다이오클레션 황제(Emperor Diocletian)가 황제 명의로 로마 전역에 공문을 발표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기독교 불꽃이 사라지길 희망한다고. 희망 성취를 위해 그가 가장 무게를 둔 것은 성경을 회수해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말경에 북 아프리카의 지역 행정관들이 황제가 내린 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는데, 가장 표적으로 삼은 대상이 바로 카르티지(Carthage) 근교 도시 팁주카(Tibjuca)의 주교 펠릭스(Bishop Felix)였습니다. 그 도시 시장은 펠릭스 주교에게 모든 성경을 내놓으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펠릭스 주교는 단호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를 내어주길 거부했습니다. 결국 관료들은 펠릭스를 체포해 로마로 압송했고, 펠릭스 주교는 그곳에서 소신을 지킨 죄로 소중한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것입니다. 
펠릭스 주교의 순교는 우리에게 이런 도전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내게 어떤 책인가? 내게 성경은 어떤 의미인가?
성경은 마치 망원경과 같습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노라면, 자신의 세계를 넘어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망원경 그 자체만 보게 된다면, 사실 망원경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성경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아쉽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 자체만 대충 훑어보고서 어떤 이상한 규례나 명령만 잔뜩 새겨진 책으로 밖에 보질 못합니다.
반스앤노블(Barnes & Nobles)과 같은 서점을 들어가 보면, “행복,” 혹은 “행복한 삶”과 관련된 책이 수없이 많습니다. 아마도 요즘 들어서 유난히 그 주제와 관련된 책이 많이 출판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현대인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우울하며, 희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성경을 손에 들고 그것을 펼쳐서 읽게 된다면, 그 안에서 우린 정녕 참된 행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빛입니다. 우리 마음과 영을 살찌우는 양식입니다.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는 위로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성경은 길을 가는 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여행 안내서입니다. 영적 순례 동안 손에 잡고 가야 할 지팡이입니다. 비행기 조종사에게 나침반이고, 병사에겐 칼과 총과 같은 무기와 같습니다. 우리 기억은 성경구절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하고, 우리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며, 우리 발걸음은 성경의 인도를 절대적으로 좇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는 성경을 천천히,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속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기쁨의 강()이자 행복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에게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  



2019. 7. 21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주일성경공부와 화요성경공부가 7월 방학 후 8월 5일과 7일 각각 개학합니다. 더욱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 동참 바랍니다.

3. 속장/인도자 모임이 다음주일(7월 28일) 2부예배 친교 후에 있습니다.

4. 한인연합감리교회 총남선교회 주최 가주태평양 한인연합감리교회 감독배 소프드볼 대회가 Torrance Wilson Park에서 8월 3일 (토) 오전 8시부터 있습니다.

5. 2019년 서부지역 평신도 지도자 수련회가 “회복(Restoration)”(강사: 이덕주 목사, 정희수 감독)이란 주제를 가지고, 8월 19-22일에 레익타호 Zephyr Point Conference Center에서 열립니다.

6. 목회사역 오리엔테이션이 Aldersgate UMC of Tustin에서 8월 24일 오전 10시-오후 3시까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연락바랍니다.

7. 평신도 사역자 훈련(Lay Servant Ministry)가 7월 19, 20일에 있습니다.(장소: 2873 Willow Oak Dr, Ramona, CA 92065) 

8. Food Pantry, Prayer Shawls, Hats for Cancer Patients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 동참을 바랍니다. 

9. 헌화 및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지원서에 Sign Up 바랍니다.

10.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Tuesday, July 16, 2019

삶의 계획을 하나님과 함께





삶의 계획을 하나님과 함께
139:13-18 (2019 7 7일 주일예배)
많은 경우 기도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바라는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해 놓으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지 않습니다. 곧 하나님의 크신 계획 안에서 살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언제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헤아리려 진지하게 기도하셨습니까? 언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자 성경을 신중히 읽어보셨습니까? 그와는 반대로, 혹시 자신이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빨리 성취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혹시 이 사실을 부정하는 분이 이곳에 계시나요? 물론 그런 분은 단 한 분도 아니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께 특별히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우리 각자를 위한 독특한 계획을 갖고서 그 계획을 친히 성취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삶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특별히 세우신 계획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잘 아시며, 자신의 특별한 존재로 구별하신 그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계획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16:4).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1:5).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를 위한 삶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계획된 것입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139:16).
이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우연이 아니라 매우 세밀한 계획 아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적절히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조건입니다. 물론 단점 혹은 장애 역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의할 것 같으면, 우리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놀랍고 축복된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29:11).
그리고 그가 세우신 계획은 확실한 성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면서 우리가 그것을 능히 이룰 수 있도록 필요한 지혜까지 허락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16-19).
멘델스존이 프라이부어그 대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웅장한 오르간 소리를 듣고서, 그 악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혹시 그것을 연주해 보아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악기에 대한 자부심에서 늙은 오르간 연주자가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멘델스존은 그 대성당에서 천둥소리를 지으신 자란 대곡을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멘델스존의 연주를 얼마 동안 듣고 있던 늙은 연주가가 큰 기쁨, 황홀감, 그리고 경외심에 젖어 들었고, 멘델스존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름이 무엇입니까?”
멘델스존입니다라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멘델스존께서 이 오르간을 연주하려는 것을 내가 감히 거절하려 했다니!”
참으로 아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손을 자기 삶 속으로 초대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결과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우리 삶을 인도하신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상상할 수 없는 실로 놀라운 결과로 이어질 텐데. . .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삶의 가장 큰 발견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삶의 가장 위대한 만족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삶의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삶 속에 말할 수 없는 기쁨, 평화 그리고 만족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우리에게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삶을 우리가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우리는 이 성경의 약속을 알아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약속대로 삶을 살아가겠노라 선택해야 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믿는 자들은 자기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그것을 확신할 수 있나?”
이런 궁금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우리 삶을 향한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숨기지 않으십니다. 아니 그의 자녀들이 그 뜻을 분명히 깨닫고 그 뜻을 좇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싶다면, 우리 인생의 창조주 하나님 그분께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야고보 장로께서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5).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선하신 인도가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것을 승인해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좋은 기도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만이 우리가 온전히 신뢰할 선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서 열린 가슴으로 읽으십시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 귀를 기울이십시오.
잠언서 기자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5-6).
믿는 자로서 우리는 창조주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의 뜻만이 가장 완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참된 행복, 아름다운 삶은 온전한 복종을 통해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한 독특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가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뜻을 성취하고자 힘써 노력하면서 그분께서 지속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성경은 여러 곳에서 믿는 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에 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로 들자면, 살전 5:16-18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께 온전히 신실한 것입니다. 
그의 큰 계획은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가 그분을 지속적으로 따르고 살아가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매진하는 것입니다.
미국인 삶(An American Life)이란 그의 자서전 도입부분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무작위적인 운명의 장난처럼 보이는 것 역시 그분의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믿음 가운데 자랐습니다.
적갈색 머리 색깔과 조그마한 몸매를 가졌지만 우주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뛰어들 수 있는 낙천적 개성을 지닌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삶의 모든 것이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고 일러주셨습니다.
가장 슬픈 일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고, 궁극적으론 모든 것이 가장 선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무언인가 잘못 되었을 때, 그 일이 너를 낙심하게 만들도록 내버려두지 말아라. 잠시 물러나 멀리서 그것을 다시 바라본 후 계속해서 전진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나중에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날 때, 너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내가 그 문제를 계속 껴안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좋은 일은 결코 내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야라고.”  
언젠가 진 게츠 교수가 성경의 인물 요셉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요셉은 강력한 집중력과 체험 없인 결코 수행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행정업무를 능히 감당할 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의 수련은 보디발의 집에서 제반 업무를 살피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후엔 감옥에 갇혀 있던 모든 수감자들을 책임을 지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3년 후엔 애굽 전역을 통치하는 업무가 그에게 맡겨졌습니다.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예정하셨던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실 모든 일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철저히 그를 준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모든 준비를 훌륭히 마쳤기에, 또한 온갖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었기에, 더 나아가,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결국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애굽인들뿐만 아니라 지역 인근 백성들의 목숨을 7년의 대 흉년에서 건질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한 삶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계획된 것입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139:16).
더 나아가,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16:3).

Twitter Delicious Facebook Digg Stumbleupon Favorites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