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3, 2019

꿈꾸는 교회가 됩시다



꿈꾸는 교회가 됩시다
2:14-21 (2019 6 23)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성령께서 오시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영어성경은 환상비전(vision)”으로 번역합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해, 성령께서 오시면,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오시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연로하신 분들도 꿈을 꿉니다. 간혹 꿈 이야기를 하노라면, 어떤 분들은 이 나이에 무슨 꿈을?”이라고 대꾸하십니다. 하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연로하신 분들도 꿈을 꿉니다. 성령께서 그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로 들어서, 아브람(아브라함) 75세 때 하나님께서 계시한 꿈을 보았고, 그 꿈을 좇아 고향과 친척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오늘날 이스라엘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모세는 80세 때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계시 받았습니다. 호렙산에서 불 붙은 가시덤불로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애굽으로 들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그래서 그 명령을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꿈으로 인식하고서 모세는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찌 보노라면,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슬픈 때는 꿈을 상실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허송세월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꿈을 갖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부어주심을 간구해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꿈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성령 부어주심을 간구할 이유는 꿈을 갖기 위함입니다. 우리교회가 성령 부어주심을 간구할 이유는 꿈을 되찾기 위함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흔히들 세상 사람들에게 말세란 어두운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세는 어둡거나 침울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세는 설렘과 꿈이 있는 시간입니다. 희망과 비전의 시간입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느냐고요? 오늘 본문 17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말세, 즉 어두운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의 영을 그의 백성에게 부어주십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데,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이 예언합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봅니다. 또한 연로 하신 분들이 꿈을 꾸게 됩니다. 모든 말입니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령을 받는 자마다 예언하고, 환상을 보며, 꿈을 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부어 주실 대상은 제한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 자녀들과 젊은 청년들, 또한 노인들 모두가 그 대상입니다. 곧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그 축복의 대상입니다. 할렐루야!
한편으로, 주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4:16).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성령은 성결의 영입니다. 성령은 능력의 영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바로 그 영을 자기 제자들, 곧 우리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 주 예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참고로, “예언,” “환상,” “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미래에 관해 말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곧 세상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고, 모두가 낙심하고 포기한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을 꿉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꿈꾸는 자들입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꿈을 먹고서 살아갑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교회로 하여금 미래에 관해 말하게 하시고, 환상을 보도록 하시며, 꿈을 꾸게 하십니다.
사실 교회에 예언과 환상과 꿈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꿈은 마치 공기와 같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듯, 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꿈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사라집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닙니다. 꿈이 우리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쉽게 상처 받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노라면, 대부분 꿈이 없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말을 듣던지,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비난이나 조롱의 말을 들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힘든 환경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꿈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교회는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하며, 계획을 구상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교회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 좋은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런 요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문제로 여기는 것이 문제로 보이기보단 오히려 기회로 보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가장 관심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을 받기 위해 힘써 기도하는데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로 오시면, 정녕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서 할 수 없다란 문장을 지워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교회는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해하기엔, 교회의 위기는 눈에 보이는 외적 조건 악화가 아닙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이 교회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위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며 그와 동시에 허락하신 예언과 환상, 꿈이 교회로부터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예언과 환상과 꿈을 허락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더불어 거룩한 꿈을 이루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대한 꿈을 품고서, 그 꿈의 성취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주시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하나님께서는 특정 사람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고, 그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들어 사용하겠다란 의미로 꿈과 환상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꿈과 환상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약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모두로 하여금 상상하지 못한 꿈을 꾸도록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전혀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전혀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마음이 달구어지고 뜨거워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에 열정으로 넘쳐납니다.
18세기 영국을 뜨거운 부흥의 물결로 인도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한 주간에 무려 40-60시간씩이나 설교했다고 합니다. 매주마다 40-60시간 설교하려면, 엄청난 말씀의 지혜가 있어야 하고, 쉼 없는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늘 가슴이 뜨거워져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넘쳐나야만 합니다. 물론 그런 지혜와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에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합니다. 곧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 있어야 가능합니다.
조지 휫필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녹슬어 없어지기보단 닳고 닳아 사라지고 싶다.” 참으로 멋진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녹슬고 맙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단 힘써 그것을 사용함이 옳습니다. 사용하고, 또 사용하기에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옳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녹슬어 사라지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다가 떠나면, 결코 우리에게 후회는 남진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입은 자가 거룩한 꿈을 품고서 인류역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성령에서 주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그런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가 있기에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있기에 이 지역사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는 2천년 전 오순절만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바로 오늘이 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모두에게 바로 오늘 부어 주시려 하십니다. 우리가 예언하도록. 우리가 환상을 보도록, 우리가 꿈을 꾸도록.
왜요?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온 세상 영혼에게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우리가 온 세상 나라와 민족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성령이 임하셔야 마음이 열립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린 가슴으로 모두를 품어야 합니다. 
어느 독일 신학자가 말했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뜻은 단수이다. 단 하나이다. 물론 그것은 모든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과 일치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이 세상 나라 확장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써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여, 주 예수의 군사들이여, 우리 모두 성령충만을 위해 힘써 지속적으로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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