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4, 2019

어머니의 인생





어머니의 인생
7:24-30 (2019 5 12일 어머니주일)
오늘 본문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수로보니게 족속 헬라인이었습니다. 곧 그녀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두로 지방으로 쉬려 가셨는데, 그녀가 예수께 나아와 악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녀를 개로 비유하시며딸을 귀신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는 그 어머니의 애원을 완곡히 거절하셨습니다.
27절에 보노라면,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토록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떡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물론 는 이방인을 빗대어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한 멸시와 비난의 표현입니다. 흔히들 이방인들은 떠들고, 싸우고, 욕심 많고, 더럽고, 음란하고, 악한 행위를 일삼았기에 유대인들은 즐겨 그들을 개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런 차별적 언어를 사용하셨다는 게 의아할 뿐입니다.
하지만 개처럼 취급 받는다 해도 그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 당해도, 멸시 천대 받아도, 불평하거나 실망치 않고 계속 따라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개 취급 받고서 그녀가 예수님을 계속 좇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딸, 곧 자식의 삶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온갖 비난과 멸시를 기꺼이 껴안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비록 예수께서 혹독하게 말씀하셔도 그 여인은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7:28).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개와 같은 하찮은 존재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아이들이 먹다가 상에서 떨어뜨리는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도록 허락하듯,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진 축복 중 남겨진 부스러기와 같은 게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취해 갈 수 있게 해달란 부탁입니다. 왜요? 그 부스러기를 자기 딸에게로 가져가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부스러기처럼 조그마한 축복이라도 받아다 딸에게로 가져간다면, 그것 때문에 딸이 귀신으로부터 놓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방 여인의 믿음을 듣고 놀라신 예수께서 이렇게 화답하셨습니다.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왔느니라”(7:29). 그리고 그 즉시 딸의 몸에서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나았습니다. 딸의 치유를 위해 어머니가 보인 사랑과 희생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딸을 위해 무릎 꿇은 어머니 그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과 희생을 담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보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
엄마의 인생이란 말이 있지요? 그런데 사실은 이것은 굉장히 무거운 말입니다.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그 책임이 너무 중합니다. “엄마로서의 인생이란 의미인데,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엄마의 인생이란 표현이 너무나 무겁게 들리는 것입니다.
오래 전 한국의 GOD(Groove Over Dose)가 불렀던 어머니에게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 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웠어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 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지 않았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자장면을 좋아하지 않기에 어머니가 그것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장면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행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배가 고파도 어머니는 자장면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을 많이 합니다. 배부른 척, 건강한 척. . . 그래서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는데 드시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면, 침대에 들어 누워도 되는데 굳이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 가족의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이렇게 보노라면, 가족의 눈에 어머니는 참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어머니도 배고픔을 압니다. 어머니도 몸이 아픕니다. 어머니도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고 싶어합니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옷가지 던져 놓고 싶습니다. 입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 게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의 인생에 충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성으로서의 삶을 어머니로서 삶과 바꾸신 것입니다. 왜요? 누구를 위해서? 물론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자녀의 인생을 위해, 남편의 인생을 위해.
얼마 전 한국의 우먼센스란 잡지에 소설가 이외수의 아내였던 전영자 씨가 43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한 후 고백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글쓰기 밖에 모르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43년 동안 그녀는 가정의 조력자, 가사 노동자, 요리사, 간병인, 기타 등등 모든 잡일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혼외 자식, 매일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들 앞에 차려서 내놓은 밥상과 술상. . . 남들은 그런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전영자 씨를 보살이라고 불렀으나 그녀는 자기 자신을 계집종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3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면서 전영자 씨가 솔직하게 말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열심히 살았죠. 지난 43년은 다 행복했고, 다 지겨웠어요.” 그녀는 그런 내조는 더 이상 하기 싫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보살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역시도 한 인간입니다. 어머니도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때론 어머니도 쉬고 싶습니다.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고 싶습니다. 실수하고 싶습니다. 약점을 내보이고 싶습니다. 사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 힘써 노력합니다. 충실하게 어머니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소개된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개 취급 당해도 여전히 예수님 발아래 무릎 꿇고 간청한 것은 그녀가 바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자존심이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인생이란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곧 딸의 인생을 위해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기꺼이 내려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424일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한 여성이 27년 만에 깨어나면서 제일 먼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죠? 무니라 압둘라는 32세였던 1991년 아부다비 인근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당시 4살의 아들 오마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길에 트럭과 부딪친 사고를 당했습니다. 압둘라는 뒷좌석에 아들과 앉아 있었는데, 사고 순간 아이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을 뿐입니다. 27년의 혼수상태 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압둘라는 깨어나자마자 오마르라고 외쳤습니다. 압둘라가 깨어났을 때, 32세의 성인이 된 아들이 그녀를 간병하던 중이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노라면,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수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다 간섭하고 사랑할 수 없기에, 모든 어머니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대신 돌보도록 하셨습니다.
자나 깨나 가족 생각밖에 없는 이 땅 위의 모든 어머니들. 우린 그들의 사랑과 희생을 결코 잊어선 아니 됩니다. 아니 최선을 다해 감사를 표하는 게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아멘할지니라”( 27:16).
어머니는 젊을 때나 연세 드셨을 때나, 학식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존경 받아야 하고, 소중히 여김 받아야 마땅합니다.
에리히 프롬(Eric Fromm)사랑은 돌봄이다(Love means caring)”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를 돌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도 돌봄이 필요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돌봄이 필요합니다. 어머니도 약합니다. 어머니도 약점이 많습니다. 시시때때로 어머니도 몸이 아픕니다.
몇 년 전 노사연 씨가 불러 큰 사랑을 받았던 바램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어머니는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지쳐 있을 때, 아플 때, 가족으로부터 사랑합니다란 진심 어린 말 한 마디를 바라십니다.
마지막으로, KBS에서 방영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란 이야기를 소개하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딸 하나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분식점을 운영하면서 딸을 잘 키우려 애썼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냈습니다.
어느 날 분식점에서 일을 하는데 비가 오더니 장대비가 막 쏟아집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딸이 돌아올 때가 된 것을 알고 우산 두 개를 가지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서 학원 문 앞에 서서 보니 아차 일하던 모습 그대로 왔습니다. 여전히 앞치마를 둘렀고 옷은 말이 아니었고,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모양을 하고서 학원에 찾아왔습니다.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텐데. . .” 그러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산 둘을 들고 처마 밑에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이층에서 딸이 내려다보아서 엄마가 왔다 하고 손을 흔들었는데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딸은 나오지 않습니다.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해서 한 달 동안 말을 안 했습니다. 한 달 후 딸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 발표회에서 상을 받는다는 연락을 받고서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수상작품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어머니가 빗속에서 딸이 나오길 기다리던 그 날의 어머니 모습을 그린 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도 고마워서 딸을 얼싸 안고 행복에 겨워했습니다.
어머니날을 축하합니다.” “Happy Mother’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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