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7, 2019

내 이야기가 아닌 그분 이야기를





내 이야기가 아닌 그분 이야기를
고후 4:16-5:10 (2019 4 7일 주일예배(많은 내용을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인용)
이 땅에서 살아가노라면, 우린 크고 작은 숱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미래지향적 선택을 하면 좋겠지요. 미래 지향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질문은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첫째 유형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곧 구원은 받았으나 여전히 자기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로 들어, 찬양 집회나 특별 세미나에 참석하길 좋아하는데, 그런 곳에서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집회나 선교활동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필요와 축복 그리고 자기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또한 그의 믿음은 ‘나 우선(me-first)’입니다. 곧 하나님의 목적보단 자기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위한 그리스도인은 구원 받은 자로서 섬기는 사명을 늘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특정한 일로 부름 받았음을 깨닫게 되면, 그것을 부담스러워하기보단 기뻐합니다. 세상 속에 변화를 불러오는 일에 함께 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열정이 있고, 기쁨과 자신감으로 넘쳐납니다. 물론 그의 뜨거운 열정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린 과연 어떤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되길 희망해야 할까요?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위대하고, 중요한 일에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다름이 아닌 그분의 이야기, 즉 그분의 나라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억했으면 합니다. 역사(History)는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입니다. 영원히 함께 존재할 가족을 만들려 하나님께선 오늘도 일하십니다. 또한 그의 거룩한 일로 여러분과 나를 초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할 것 같으면, 때가 차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가 꿈꾸는 위대한 일이 멋지게 펼쳐질 것입니다. 그때엔 모든 인종, 민족, 국가 그리고 언어”( 7:9)의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그를 찬양하고 경배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사람이 되어 그분의 이야기에 동참한다는 것은 마지막 때 성취될 천국의 삶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참으로 멋진 기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두 가지로 정리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 중심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하는데 있어선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고전 14:20, 쉬운성경).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단계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자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인이 되어가면서 다른 이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명하십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 ( 2:4).
물론 우리 인간의 본성이 자기 중심적이고, 삶 속에서 자주 접하는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이기적으로 생각하도록 부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야기, 즉 그분의 거룩한 사업에 동참하고픈 사고전환이 쉽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사고전환이 가능하도록 돕는 방법은 순간순간 하나님께 의지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도록 방치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고전 2:12, CEV). 아멘.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믿지 않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전도를 늘 염두에 두고서 그들이 영적 필요를 느끼게 해달라고 성령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잊지 말고 이 기도를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용히 속으로 하는 기도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로 들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로 하여금 깨닫게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그들이 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전 10:33).
또한 우리는 선교지에서 전도와 선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기도 동역자들에게 권했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고후 1:11).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은 신문과 뉴스를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관점에서 읽고 듣는 것입니다. 사회와 나라에 어떤 변화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긴장 상황이나 전환기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욱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분히 인식했다면, 이젠 우리는 본격적으로 실천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깊은 곳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둘째로, 지금 여기만 바라보는 사고에서 영원을 바라보는 사고를 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은 영원한 관점을 항상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사소한 일에 너무 큰 비중을 두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급한 것과 궁극적으로 중요한 일을 구분 짓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가만히 우리 삶을 돌아보노라면, 우리가 시간과 힘을 쏟아 붓고 있는 대부분의 일은 일 년 혹은 이 년 후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영원한 시간이란 관점에서 볼 땐,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중한 삶을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과 맞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측면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 9:62).
더 나아가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6:20)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제부터 어디에 보물을 쌓아두시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6:9). 여기서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는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가지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천국여정을 함께 할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그들이 우리를 반겨줄 영원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 땅에서 우리가 소유한 것을 가지고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혹시 빈 손으로 떠나는 인생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혹시 그 말에 동의하십니까?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천국으로 발걸음을 향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투자함으로써 천국에 보물을 쌓아둘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로 고민합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정체성(identity)의 문제입니다. 둘째, “내가 과연 중요한 존재인가?” 이것은 삶의 중요성(importance)의 문제입니다. 셋째, “삶 속에서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 이것은 영향력(impact)의 문제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 답을 찾으셨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찾고 있습니까?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다섯 가지 목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린다
·         다른 믿는 자들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린다
·         맡겨진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13:17).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깨달았다면, 우리가 그것을 행함으로써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다섯 가지 목적을 잊어버린 채 많은 이들이 혼돈의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그 중요한 목적으로부터 멀어진 채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목적을 상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의 목적 선언서를 작성하고서 그것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기자가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네가 가는 방향을 제대로 알면, 그 기본 방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4:26, CEV).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릭 워렌 목사께서  삶의 목적 선언문 예를 몇 개 적어놓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렇습니다.
내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며, 그리스도에 대해 나누고,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섬기며, 나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항아리를 이용해서 원숭이를 잡는 남미 인디언 부족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부족은 원숭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목이 좁은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바나나를 넣어둡니다. 그러면 호기심 많은 원숭이들이 다가와 항아리를 살피다가 안에 바나나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서 손을 집어넣어 바나나를 잡습니다.
그런데 항아리의 목이 좁아서 원숭이가 주먹을 쥔 상태에서는 손이 빠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숭이는 바나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눈만 멀뚱거릴 뿐입니다. 인디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말입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은 것일까요? 아니면 바나나가 원숭이를 잡은 것일까?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항아리 속 바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나나를 손에서 놓는 것이 우리를 자유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붙잡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가장 집요하게 묶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 2. 33)
그런데 만약 우리가 여전히 세상적인 것에 집착한 채 살아간다면, 다음의 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언젠가 이 땅에서 우리 삶은 끝날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삶은 지속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삶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중도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수고에 대한 영원한 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늘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서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말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1925년 노벨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95세의 삶을 산 후 자신의 묘비에 새겨질 문구를 이렇게 새겼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위대한 교육가로 알려진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1745~1827)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여졌습니다. "모든 일을 남을 위해 했을 뿐, 그 자신을 위해 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이름에 축복이 있기를!"
참으로 멋진 묘비명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뒤에 남겨진 이들이 우리 무덤에 어떤 묘비명을 세워줄까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성취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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