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9, 2019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란 명작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틀에 박힌 아이로 자라난 싱클레어가 동년배 아이들보다 성숙해 보인 데미안이란 친구와 만나고 그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한 성인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미안으로부터 이런 글을 받고서 그의 내면의 눈이 활짝 뜨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싱클레어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선 반드시 고정 관념과 기존 습관이란 알()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새가 밖으로 나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보호해준 껍질을 깨뜨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알 속에서의 생활이 습관화 되었기에,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알을 깨고 빠져 나가는 고통을 껴안아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새가 새답게 넓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긍정적 변화는 껍질 속에 생명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전제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그 속의 것이 죽은 것이라면, 결코 그 어떤 것도 껍질을 깨고서 밖으로 빠져 나올 순 없겠죠.
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셨습니다. 죄의 멍에 짓눌린 채 멸망으로 질주하던 인류에게서 저주의 사슬을 벗겨내고 희망찬 약속의 세계로 인도하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원대한 꿈의 성취를 위해 그가 감당할 대가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큰 것인데,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을 위해 대신하여 그 자신이 죄(죄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끔찍한 형벌로 인해 큰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골고다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삼일 후 아침 그 시신을 봉하고 있던 거대한 무덤 돌이 안에서부터 밖으로 내던져졌고, 안에 있던 자가 무덤 문을 부수고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죽은 자의 몸에 하나님이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곧 죽은 자에게 생명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산 생명은 무거운 무덤의 돌을 멀리까지 내던진 후 밖으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구주이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한 날입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언젠가부터 부활절이면 교회에서 달걀을 나누어주는 관습이 생겼는데,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껍질을 깨고 나온 생명을 비유해 보여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달걀 속 생명체는 반드시 껍질을 깨고 나와야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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