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19, 2018

나의 크기는 키가 아닌 내가 보는 만큼의 크기




나의 크기는 키가 아닌 내가 보는 만큼의 크기
내게 신앙이 있는가? 우리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데, 가장 단순한 나의 답변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입니다. . . 아무도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우리의 운명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심오한 깨달음으로 나를 이끌어갑니다. 아마 천국이나 내세 역시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스테판 호킹 박사의 마지막 저서 커다란 질문들에 대한 간단한 답변들(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에 실린 내용입니다. 사실 그의 견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2008년 호킹 박사는 보편적 견해에서 자기 자신을 비종교적이라고 밝힌 바 있고, 온 우주를 지배하는 힘은 단연코 물리학 법칙이라고 밝혔습니다.


금년 3 7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간 호킹 박사는 이 책에서 열 가지 커다란 질문들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가? 우주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물론 이 밖에도 다른 질문들을 제시하며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스테판 호킹 박사를 존경하는 것은 청춘의 나이 때부터 루게릭병, 즉 근위추겅축삭경화증과 싸워가면서도 탐구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곧 주어진 신체적 어려움에 굴복하고서 생을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굴의 의지로 학문 세계 깊이로 들어감으로써 마비되어가는 육체의 도전을 뛰어넘는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삶의 환경은 호킹 박사로 하여금 신을 포함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의 운명을 맡기려 하기보단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깊게 심어주었습니다. 그런 정신사고가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스테판 호킹 박사는 아인슈타인과 버금갈만한 우주천제에 관련된 놀라운 가설들을 제시하거나 입증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하여 우주의 특이점을 증명하는가 하면, 블랙홀 열복사 방출이론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호킹 박사가 주장한 바대로 태초에 우주가 저절로 태어나 지금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태초의 특이점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그의 말대로 그것은 태초부터 그냥 존재했던 것일까요? 정말로 그것이 합리적 과학사고일까요?
페르난두 페소아의 양떼를 지키는 사람에 이런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내 마을은 다른 어떤 땅보다 크다. 왜냐하면 나의 크기는 내 키가 아니라 내가 보는 만큼의 크기니까.” 호킹 박사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천재적 과학적 사고에 정신적이고 신앙적 사고가 더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다시 한 번 크게 가져봅니다.



2018. 10. 21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성령강림절 절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열심히 기도로 함께 하기 바랍니다.

3. 평신도 주일: 다음 주일 2부 예배는 평신도주일로 지킵니다.

4. SF Valley CROP Hunger Walk이 11월 4일 오후 1시 30분부터 Northridge UMC에서 시작됩니다. 

5. 온성도주일(All Saints’ Sunday)가 11월 4일에 있습니다. 이날 써머타임(Summer Time)이 해제되니 시간 변경 유의바랍니다.

6. 이상호 목사께서는 내일(22일/월)부터 11월 3일까지 휴가 가십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화요성경공부: 10월 23일과 30일은 쉽니다. 

7. 교회 갱신과 부흥 일환으로써 교회 앞쪽 주차장을 활용을 적극 권장합니다. 

8. 오늘 2부예배 광고시간에 재정 보고가 있습니다.

9. 안내석에 준비된 새해(2019년) 헌화자,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제공자 지원서에 Sign Up해 주시기 바랍니다.

10.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Monday, October 15, 2018

거인 골리앗을 향해 돌진할 배짱





거인 골리앗을 향해 돌진할 배짱
삼상 17:41-54 (2018 1014일 주일예배)
거인 골리앗과 한 판 승부를 자처하고 나선 다윗에게 사울 왕이 자기 전투복을 벗어 입혀 주었습니다. 곧 다윗의 머리에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도 갑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칼을 차고 몇 걸음 걸어 보았지만 다윗은 투구와 갑옷이 거추장스러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이 옷을 입고 갈 수 없습니다. 거추장스러워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투구와 갑옷을 다 벗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시냇가에서 조약돌 다섯 개를 주워다 양을 칠 때에 쓰는 주머니에 넣고 손에는 물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골리앗을 향하여 곧바로 달려 나아갔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 거인 골리앗도 다윗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엔 방패를 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다윗을 보고서 골리앗이 매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가온 자가 전투복을 입은 건장한 용사가 아니라 어린 소년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 소년은 살결이 불그스레하고 매우 잘생겨 보였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오다니, 너는 내가 개인 줄 아느냐?” 그리고 자기 신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화가 잔뜩 난 어조로 다윗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또한 골리앗은 다윗에게 이렇게 겁을 주었습니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네 몸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하지만 거인 골리앗의 커다란 체구를 보고서 또한 그의 막말을 듣고서도 다윗은 좀처럼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리앗을 향하여 계속 돌진했습니다. 골리앗을 죽여 없애겠다는 의지에 활활 불타올라서.
그날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승리를 확신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 때문에? 아니면 시냇가에서 주워온 조약돌 다섯 개와 물매 때문에?
물론 그는 막대기를 잘 사용했습니다. 아버지의 양떼를 지킬 때 어려서부터 손에 들고서 사용했던 막대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물매를 잘 사용했습니다. 물매에 조약돌을 넣어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던질 수 있었습니다. 사자나 곰으로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해 평소에 자주 연습하고 실제로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막대기나 물매는 사실은 전쟁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거인 골리앗은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손엔 커다란 창이 들려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앞에는 방패 든 자가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건대, 전투준비를 잘못한 쪽은 다윗입니다. 그렇습니다. 얼핏 보기엔,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를 잘못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막대기를 가지고 오다니, 너는 내가 개인 줄 아느냐?”라고 한 골리앗의 지적이 백 번 옳아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윗은 그 전투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비록 턱없이 부족한 전투 병기를 갖고 있다 해도. 비록 두꺼운 갑옷은 입지 않았고, 커다란 창은 손에 들고 있지 않다 해도.
그렇다면 다윗이 승리를 확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골리앗에게 던진 그의 외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너는 여호와께 욕을 했다. 오늘 여호와께서는 너를 나에게 주실 것이다. 나는 너를 죽여 너의 머리를 벨 것이며, 블레셋 군인들의 몸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게 할 것이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하시기 위하여 칼이나 창을 쓰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싸움은 여호와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너희 모두를 물리쳐 이기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45-47).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이해할 것은 다윗은 결코 막대기를 의지하여 골리앗을 향해 나아간다거나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그렇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다윗이 확신한 것은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때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에 대한 그의 절대적 확신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서 살았습니다. 곰이나 사자로부터 아버지의 양떼를 지켜 보호할 때에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아가기 전에 다윗이 사울 왕에게 했던 말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사자와 곰에게서 구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이 블레셋 사람으로부터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37).
비록 오랜 생을 아직 살아보진 못했으나, 다윗의 삶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가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절대적 신뢰, 그분의 이름이 갖는 능력과 권세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이름이 갖고 있는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배운 학습이 아닌 양떼를 치면서 경험을 통해 배운 학습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알고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한 누구를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가느냐가 무척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알고 계십니까? 누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달리 말해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거인 골리앗, 곧 삶의 큰 장애물과 맞부딪칠 때, 누구를 먼저 기억해내십니까? 또한 그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십니까? 그런 상황에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십니까? 만군의 여호와를 신뢰하십니까?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골리앗과 능히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골리앗을 무서워해선 아니 됩니다. 골리앗 때문에 벌벌 떨면서 뒤로 숨어들어선 아니 됩니다. 오히려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골리앗을 쓰러 뜨려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만군의 여호와와 더불어,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그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그래서 삶 가운데 끊임없이 맞부딪지는 골리앗을 향하여 우리도 이렇게 담대히 외치며 나아가야 합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아멘?
삶을 통해 우리 믿는 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삶을 통한 전도입니다. 또한 그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또 없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해 다윗은 다음과 같은 증거를 드러내길 원했습니다. 골리앗에게, 블레셋 군대에게,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오늘 여호와께서는 너를 나에게 주실 것이다. 나는 너를 죽여 너의 머리를 벨 것이며, 블레셋 군인들의 몸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게 할 것이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하시기 위하여 칼이나 창을 쓰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46, 47).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골리앗과의 전투를 통해 다윗이 무엇을 소리 높여 증거하길 간절히 원했는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가정, 주변 이웃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소리 높여 증거할 것은 바로 만군의 여호와와 그분의 이름이 갖는 권세와 능력이어야 합니다.
어느 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사람이 구걸하길 시작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주목하여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3:6).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있던 모든 백성이 그 사람의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서 심히 놀라워했습니다(7-10).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다윗이 증거하고자 했던 것은 그의 용기, 배짱, 혹은 물맷돌 실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장수가 모욕하던 여호와의 명예를 다시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가 신뢰하지 못하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너는 여호와께 욕을 했다.  오늘 여호와께서는 너를 나에게 주실 것이다” (45, 46). 그래서 그날 골리앗과의 싸움은 다윗 자신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고, 다윗 자신과 골리앗의 싸움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싸움이었고, 만군의 여호와와 골리앗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47).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 역시 매일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영적전쟁을. 숱하게 많은 거대한 골리앗과 싸우고 있습니다. 사탄과 그의 군대와 끊임없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 싸움은 결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승리할 싸움도 아닙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 속한 싸움입니다. 고로 오직 그분의 이름이 갖고 있는 권세와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골리앗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우리도 이렇게 외처야 합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골리앗과의 싸움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싸움임을 안다면, 또한 그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골리앗과 맞선다면, 우리 역시 능히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갖는 권세와 능력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갖고 있는 권세와 능력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과 그 이름에 대한 절대적 신뢰밖에 달리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2:9-11).
성도 여러분, 혹시 현재 삶 가운데 거인 골리앗과 직면하고 있진 않습니까? 삶의 커다란 풍랑과 직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선한 일을 하다가 뜻하는 대로 열매가 맺히지 않아 답답하고, 곤고하며, 지쳐 낙심 중에 있습니까? 곧 실패와 좌절의 큰 장애물 가운데 힘들어하고 계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역시하고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배짱은 믿는 곳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야 배짱을 부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가 너무나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큰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때론 무모할 정도로 큰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짱을 가지고 골리앗과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싸우는 전쟁은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그 전쟁이 만군의 여호와께 속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서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골리앗과 맞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녕 승리할 것입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아멘?

Guts to Run to Goliath



Guts to Run to Goliath
1 Sam 17:41-54 (October 14, 2018)
King Saul took off his war clothes and put them on David, who had volunteered to fight Goliath the giant. It meant that the king put his own armor-a bronze helmet and a coat of mail on David. So putting the royal sword on his side, David took a step or two to see what it was like, for he had never worn such things before. Finally he realized he was unable to walk because King’s helmet and armor were so cumbersome. I can hardly move!” he exclaimed, and took them off again.
Then David picked up his shepherd’s sticks and collected some smooth stones from a stream and put them in the bag. And grabbing the sling he started across to Goliath.
On the other hand, Goliath was also walking out toward his opponent with his shield-bearer ahead of him. As seeing the approaching man, Goliath felt very unpleasant. His opponent was not a solider wearing a helmet or a coat of mail, but he was simply a young boy. Furthermore, he was a nice little red-cheeked boy.
So Goliath roared at David, “Am I a dog, that you come at me with sticks?” And he cursed David by the names of his gods. To threaten David, Goliath said, “Come here, and I'll give your flesh to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beasts of the field!”
But David was never troubled even after he saw Goliath's gigantic body or heard all his bad curses. He did not even back off. Rather, burning with determination to kill Goliath, he kept coming.
That day David believed to defeat Goliath. So on what base was he so sure of his victory? Was it because of the sticks in his hand? Was it because of the five smooth stones, collected from the stream and kept in his shepherd’s bag?
Of course, David knew how to utilize those sticks for they were what he'd used to hold in the hand since he was little. Also, he knew how to use the sling. He was able to throw a stone right at the target, using the sling. He had practiced it over and over and actually used it so often to save his sheep from lions and bears. But the sticks or sling in his hands were never actually combat weapons. Goliath the giant was wearing thick armor, on top of that, possessing a big sword. There was also a shield-bearer ahead of him.
Objectively, it seems David was the one to make the wrong judgment and preparation for battle. That's right. It seems David misjudged the battle. “Am I a dog, that you come at me with sticks?” It seems what Goliath pointed out was accurate. Still, David had no doubt to win the battle. Even if he had no combat weapons with him. Even if he wore no thick armor, or have a big sword in the hand.
So, why was David so convinced of his victory over Goliath? The answer can be found from his words thrown to Goliath: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This day the LORD will hand you over to me, and I'll strike you down and cut off your head. Today I will give the carcasses of the Philistine army to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beasts of the earth, and the whole world will know that there is a God in Israel. All those gathered here will know that it is not by sword or spear that the LORD saves;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all of you into our hands” (vss 45-47).
Here’s what we need to come to clear understanding: David never said that he would rely on the sticks or the sling to knock Goliath down. This is what David said,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vs 45). That’s right. David was sure of his win in the fight against Goliath because of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It was because of his absolute trust in the power and authority that very name had.
As usual David had lived only o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When protecting his father's flock from bears or lions, he relied o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We can get a glimpse of what David actually meant from his saying to King Saul before his battle with Goliath. “The LORD who deliver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the paw of the bear will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vs 37).
David was not fully grown yet, but there was one clear thing from his life. And it was his firm dependence in Jehovah God, his absolute confidence in the power and authority of God’s name. As growing up, he experienced many God's helpings. He’d experienced God not only once or twice but so many times. Therefore, he knew who the Lord God was and what power and authority his name possessed. He learned it not in the classroom but through his own personal life experiences.
In fact, it is very important that, during our life journey, who we know and in whom we put our confidence is so crucial. No matter how much we have, that’s no use for us if we do not know God, if we do not have unqualified assurance in God.
Dear brothers and sisters, who do you know and trust the most during your life journey? Do you know the Lord God? Do you put your trust in him only?
In other words, when facing your Goliaths, great obstacles in life, who do you remember first? And who do you depend on in such a critical situation? Do you remember the LORD Almighty? Do you put your confidence in him? If so, then. Then you can certainly fight your Goliaths.
We should never be afraid of our Goliaths. We should never hide when facing the giants. Rather, we should move toward them. We should knock down them. Then how? With the power and authority of God’s mighty name we undeniably trust, with Jehovah God whom we know only. So we should boldly call out to the giants, who constantly confronts us in our journey of lif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Amen?
Through life experiences, we believers must bear witness to the people about our God we trust and live with. It must the way we can preach the people about our God. And that’s the best way we can testify our God to the world. There is no better way than that.
To Goliath, to the Philistines, to King Saul, to the armies of Israel, and to the whole world, David wanted to prove the following evidence through his fight with Goliath: “This day the LORD will hand you over to me, and I'll strike you down and cut off your head. Today I will give the carcasses of the Philistine army to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beasts of the earth, and the whole world will know that there is a God in Israel. All those gathered here will know that it is not by sword or spear that the LORD saves;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all of you into our hands” (vs 46, 47). Is not it too obvious? That’s what David actually wanted to testify or reveal.
That's right. Jehovah God and his holy name and his mighty power and authority should be what we testify to our homes, our neighbors, and the world.
One day, Apostle Peter and John went up to the temple and met a man who had been unable to walk since he was born. Sitting at the temple gate, he began begging Peter and John who were about to enter the temple to pray. Peter looked straight at him, as did John, and said,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Acts 3:6). Then Peter took him by the right hand, helped him up, and instantly the man's feet and ankles became strong. He jumped to his feet and began to walk. Then he went with them into the temple courts, walking and jumping, and praising God. So when noticing what was happening, the people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In the fight against Goliath, David did not attempt to prove of his courage, guts, or his favorite tools of the shepherd’s sticks or the sling. It was to restore the honor of the LORD, despised by the Philistine. It was to restore the power and authority of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which King Saul and the armies of Israel did not trust. “Jehovah is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This day the LORD will hand you over to me” (vs 45, 46). So on that day the fight against Goliath was not a battle for David himself, nor a fight between David and Goliath. It was a battle for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a battle between the LORD and Goliath.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all of you into our hands” (vs 47). Today, we, God’s people, are also fighting every day. Fighting spiritual warfares. We are fighting against a lot of Goliaths. In other words, we are constantly fighting against Satan and his armies.
But when facing our giants, there is something we must remember: “The fight is not our fight. It is not a fight to win with our strength and power. It is a battle belonging to the Jehovah God, the LORD of hosts.” Therefore, we can win the battle only with the power and authority of God’s name. We can fight Goliath with the Mighty name. Like David or Peter, therefore, we must shout like this: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
If knowing the battle belongs to Jehovah God, and if confronting our giants with God’s name, we will be able to win the battle. It is all because of the mighty power and authority in the name of Jehovah God. It is all because of the power and authority of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we believe. Therefore, what we need is nothing but God’s name and our absolute confidence in that very name.
The Apostle Paul, who knew this so well, says this: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Phil 2:9-11).
Dear brothers and sisters, are you struggling because of your giants, your Goliaths, now? Are you battling with big storms in your life now? Or even though trying to do best, do you keep failing? As a result, are you frustrated, exhausted and depressed? Are you desperate because of too many failures and frustrations you’ve experienced? Nevertheless, I want you to remember Jehovah God, the Lord of the armies of Israel, who is still working. I want you to remember Jehovah, the Lord Almighty, who is still present in the midst of your difficult situations.
“Guts can produce from a thing we trust.” We can have guts only when we have something or someone we truly depend on. We are the people of the LORD of hosts. We are his army. It is very certain what we believe. Therefore, we must have guts, a lot of guts. Sometimes it is necessary for us to have reckless guts. And with such reckless guts we can face our giants.
Brothers and sisters, please remember that the battle we are in is guaranteed for our win. The reason is that the battle actually belongs to Jehovah, our Lord. Therefore, I hope you can place your trust in that name and move forward. I want you to approach your Goliath only with that name. Then you will surely win the battl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Amen?

Friday, October 12, 2018

2018. 10. 14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성령강림절 절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도록 열심히 기도로 함께 하기 바랍니다.

3. 지난 목요일 서먼옥스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합동구역회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평신도 주일예배가 10월 28일 2부 예배시간에 있습니다.

5. SF Valley CROP Hunger Walk이 11월 4일 오후 1시 30분부터 Northridge UMC에서 시작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바랍니다. 

6. 온성도주일(All Saints’ Sunday)가 11월 4일에 있습니다. 또한 이날 써머타임(Summer Time)이 해제되오니 시간 변경에 주의바랍니다.

7. 교회 갱신과 부흥 일환으로써 교회 앞쪽 주차장을 활용을 적극 권장합니다. 또한 교회 표어 선정에 적극적 동참바랍니다. 

8. 교회 기도제목:
- 나라와 민족(미국과 한국)을 위해
-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의 예배 및 모임과 행사를 위해
- 이정규 장로님, 최문자 권사님의 빠른 회복을 위해
- 노약자 및 환자들을 위해 
-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일어날 배짱




하나님을 위해 일어날 배짱
삼상 17:1-11, 32-40 (2018 10 7일 주일예배)
지난 3월 말에서 4월 초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의 김정은의 면담이 있었습니다북한을 방문한 폼페이오 국장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환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그리고 3~4차례 걸쳐 이뤄진 대화를 통해 지난 6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폼페이오 국장과의 회담 결과에 만족스러웠던 듯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나와 이렇게 배짱이 맞는 사람은 처음이다.”
한편으로이 만남에서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국장에게 “완전 핵폐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후 주변나라들특별히 중국이 끼어드는 바람에 핵 폐기 논의가 복잡하게 꼬이고 말았습니다.
나와 이렇게 배짱이 맞는 사람은 처음이다.” 오늘 아침에 김정은 위원장의 배짱을 높이려고 내가 이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닙니다그가 말한 배짱의 의미가 무엇인지그리고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아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배짱의 반대어는 비겁함소심함두려움연약함입니다또한 허세과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국민을 위한다면굳이 그토록 핵무기에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국민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참된 배짱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배짱이란 무엇일까요곧 우리가 가져야 할 배짱이 무엇일까요오늘 본문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위해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습니다그러자 방어차원에서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도 엘라 골짜기에 모여 진을 치고서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 싸울 대형을 갖췄습니다블레셋 군대는 한 언덕을 차지하고 있었고이스라엘 군대는 다른 언덕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이라는 대장이 통솔했는데그는 가드 사람이었습니다그의 키는 육 규빗 한 뼘 가량 되었습니다.
골리앗이 높은 곳에 올라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싸울 대형을 갖추고 있느냐나는 블레셋 사람이고너희는 사울의 종들이다한 사람을 뽑아 나에게 보내어 싸우게 하여라만약 누구든지 나를 죽일 수 있다면우리가 너희들의 종이 되겠다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죽이면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야 한다.”(삼상 17:8, 9)
더 나아가서골리앗은 이렇게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내가 너희 이스라엘 군대를 이렇게 조롱하는데 나와 싸울 놈이 없단 말이냐?”(10골리앗의 말을 듣고서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가 무서워 벌벌 떨고 숨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와 섰습니다성경에 의할 것 같으면그런 대치 상황은 무려 사십 일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었습니다(16).
한편으로에브랏 사람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이 전쟁에 출전한 형들을 찾아왔습니다아들들의 안부를 알고 싶어 아버지가 막내 아들 다윗을 시시때때로 이스라엘 진영으로 보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다윗이 형들의 의복과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다윗이 진에 도착했던 날 이스라엘 군대는 자기 진을 떠나서 싸움터로 나아가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20).
다윗은 자기가 가지고 온 음식을 짐 맡은 사람에게 맡긴 후 싸움터로 나아가 형들을 만나 그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다윗이 형들과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또 나왔습니다골리앗은 보통 때처럼 이스라엘을 향하여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다윗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골리앗을 보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다시 무서워 벌벌 떨며 줄행랑치고 말았습니다(22-24).
이스라엘 군대가 도망치기 분주할 때다윗이 바로 곁에 있던 군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에게서 수치를 없애 버리는 사람에게 어떤 상을 줍니까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 누군데 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욕을 한단 말입니까?”(26).
바로 이 구절에서 크게 분노하고 있는 다윗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그렇습니다그는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왜요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 장수가 살아 계신 거룩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다윗의 분노는 결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철들지 못한 어린 아이의 허세나 오만도 아니었습니다아니그것은 거룩한 분노였습니다거룩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위한 의분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바로 배짱으로 나타났습니다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용기거룩한 하나님의 군대를 위한 배짱으로 나타났습니다곧바로 그는 사울 왕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용기를 잃은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왕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32). 참으로 대단한 배짱이죠?
그때 사울 왕이 대답했습니다. “너는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다너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지만골리앗은 젊었을 때부터 싸움을 많이 해 온 뛰어난 군인이다”(33).
하지만 다윗이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왕의 종인 저는 내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키던 사람입니다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을 물어 가면저는 그놈을 공격하여 그 입에서 양을 구해 냈습니다그놈이 저를 공격하면저는 그놈의 턱을 잡고 때려 죽이기도 하였습니다왕의 종인 저는 사자와 곰도 죽였습니다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인 골리앗도 제가 죽인 사자나 곰과 같은 꼴이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골리앗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욕했기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34-36).
용기 있는 다윗의 말을 듣고서 감복한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전투에 나가거라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빈다”(37).
사울 왕이 어린 다윗의 용기에 크게 감탄한 것입니다다윗의 배짱에 감복한 것입니다그래서 골리앗과 싸우러 가겠다는 그를 끝내 막지 못했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할 수 있단 말인가?" 다윗은 의로운 분노로 가득합니다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치들의 상을 뒤엎던 "거룩한 분노"와 매우 흡사합니다여러분이 보기에 그날 다윗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이 서로 겹쳐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다윗은 확신했습니다이스라엘 군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고로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독 당하신 것과 일반으로 이해했습니다그래서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다윗이나 이스라엘 군대 모두가 모두 같은 상황을 보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이스라엘 군대는 거대한 장수 골리앗만 보았습니다골리앗이 내뱉고 있는 막말만 듣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겁을 먹고서 달아나기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그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골리앗 장수로부터 조롱 당하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그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거룩한 분노가 솟구쳐 올랐습니다결과적으로자기 자신이 그 골리앗 장수와 싸워 그를 쳐서 죽이겠다고 나섰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군대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대로 상황을 평가했습니다그들이 보고 들은 바에 의할 것 같으면거대한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길 자가 이스라엘 군대엔 없었습니다. ”골리앗과 대적할 자가 누구인가?”라고 했던 군사들의 말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비록 거대한 장수 골리앗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고 그의 막말을 두 귀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다르게 판단했습니다그가 보았을 땐골리앗은 하나님과 감히 견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고로 골리앗이 아무리 신장이 좋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그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과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피조물에 불과한 자를 어찌 창조주와 견줄 수 있단 말입니까피조물이 감히 어찌 창조주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스라엘 군대는 그 싸움을 골리앗과 자신들의 싸움이라고 보았으나다윗은 그것을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으로 이해했습니다큰 차이가 있죠?
이렇게 보건대장수 골리앗 때문에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분주했던 이스라엘 군대가 틀렸습니다상황을 잘못 이해한 자는 다윗이 아니라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였습니다그들은 처해 있던 상황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오직 거대한 장수 골리앗만 보았던 것이 큰 문제였고실수였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로 듣는 대로만 현실을 이해하노라면결국 현실의 파도에 파묻히고 맙니다물론 현실은 정확히 직시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처해 있는 현실보다 더 큰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그분은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우주만물을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우리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그의 백성입니다그의 거룩한 군대입니다고로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 판단할 때반드시 우리는 그 상황 가운데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더불어 보아야 하고그분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그래야 상황을 옳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마치 다윗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때문에 분노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분노하길 원합니다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때문에 분노하길 원합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된 교회가 갈 길을 잃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 때문에 분노하길 원합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 누군데 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욕할 수 있습니까?”이라고 외쳤던 다윗의 말이 우리 입술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또한 다윗처럼 분노만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길 원합니다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길 원합니다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길 원합니다. “용기를 잃은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왕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라고 했던 다윗의 말이 우리 입술의 고백 되길 원합니다.
거룩한 분노를 품고서 주를 위해 일어날 때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는 거대한 골리앗처럼 힘든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 할지라도하나님을 의지한다면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골리앗은 우리가 두려워할 자가 아니라 마땅히 쓰러 뜨려야 할 자입니다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드시 쓰러 뜨려야 할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할 수 없다. 아니 된다는 말과 생각보단 할 수 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긍정적 말과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능히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위해 우리 모두 담대한 용기와 배짱을 가져보지 않으시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지 않으시렵니까?

Friday, October 5, 2018

쓰레기를 보배로 바꾸는 하나님




쓰레기를 보배로 바꾸는 하나님
지난 주 화요 성경공부 시간에 시청한 영화 Same Kind of Different as Me중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교훈이 있어 이 목회칼럼에 실어봅니다. “하나님은 쓰레기를 보배로 만드는 리싸이클링 사업에 열심이십니다 (God is in the recycling business of turning the trashes to the treasures).”
이 영화는 눈물겨운 감동이 물씬 담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우리 모두가 죄 가운데 죽어 마땅하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이 되어 이 땅에서 선한 사업에 헌신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도록 일깨워줍니다. 만약 이 영화를 시청하지 못했다면, 꼭 한 번은 시청해 볼 것을 적극 권면합니다.  2017년 영화인고로 극장에서 시청할 순 없겠지만, 넷플릭스(Netflix), 아마존 영화(Amazon Movies), 구글 플레이(Google Play) 등과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시청이 가능합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텍사스 주에 거주한 란 홀(Ron Hall)이라는 사업가는 값비싼 그림을 거래하는 중계상인데,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행복한 가정도 꾸렸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바람을 피우다 아내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데비(Debbie)는 남편과 이혼하기보단 그를 무숙자 선교센터로 인도해 그곳에서 봉사하면서 변화된 삶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던 중 그 선교센터에서 덴버(Denver)란 무숙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매우 폭력적이고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속에서 그를 본 경험 때문에 데비가 그에게 관심을 갖고서 끈질긴 사랑으로 다가가자 덴버도 결국 감동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점차 거듭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사와 같은 마음을 가진 데비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가고 맙니다.
이 영화는 쓰레기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보배와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지에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놀라운 은혜 때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쓰레기를 값진 보석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김 없이 쓰레기를 보석으로 만들어가는 참으로 귀한 사업에 한창 열심이십니다. 결코 자랑할 것도 없고, 귀한 것도 없으며, 오히려 추악하고 더러운 죄악으로 오염된 우리를 끝까지 외면치 아니하시고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끗하게 닦아주시고, 치유하시면서 우리가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바로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인종차별, 가난, 믿음, 깨어진 가정 그리고 사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같은 우리 삶에 매우 밀접한 주제도 매우 현실감 있게, 또한 매우 지혜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들로 하여금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Tuesday, October 2, 2018

광야를 지나갈 배짱



광야를 지나갈 배짱
8:1-10 (2018 9 30일 주일예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숱하게 옥고를 치렀던 이육사 (Lee, Yook-sa) 시인의 광야 (Wilderness)”입니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수인번호가 264번이었기에 이육사라고 불립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다 선언했다 하지요? 일제 강점기에 민족혼을 불러 일으킨 애국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광야(曠野)”는 텅 비고 막막히 넓기만 한 들녘을 의미합니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사막이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험악하고 토질이 척박하여 생물이 거의 없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사막은 광야보다 더 치열한 생과 사의 공간입니다. 어떤 글을 보니까, 연 강수량이500밀리미터 이하이면 사막이라 부르고, 그 이상이면 광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동쪽으로 길다랗게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요단 강 지역과 서쪽 지중해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평지를 제외하면, 거의 산악과 광야와 사막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비가 내리더라도 물을 저장할 수 없어 그저 황량하게 보이기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곳, 바로 그곳이 광야요 사막입니다. 그래서 광야와 사막은 삶을 살아가기엔 너무나 불편하고, 도전적이며, 끊임없는 고난과 고통과 고독과 맞서야 하는 곳입니다. 고로 굳이 광야나 사막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유난히 광야와 사막이 자주 언급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한 곳이 주로 광야와 사막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광야,” “황무지혹은 빈 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드바르(mid-bawr')”란 단어 의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미드바르광야, 황무지, 빈 들이란 의미 이외에도 “(말하는 도구로서의) 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드바르의 어원은 말하다란 뜻을 지닌 다바르(da-bawr')”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다바르,” 곧 말씀하신 곳이 바로 미드바르,” 광야, 황무지, 빈 들입니다. 비록 미드바르가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험난하고, 고난과 고통이 연속되는 곳이긴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그 미드바르에서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미드바르, 곧 광야와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장소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접한 축복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드바르, 곧 광야와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환경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훈련 받으면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다듬어지는 훈련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미드바르, 곧 광야와 사막을 지날 때, 하나님께서 세밀한 관심으로 그들을 지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4).
또한 출13:22, 23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날 여러분의 삶이 광야와 사막을 걷는 것과 매우 흡사하진 않습니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고독하진 않습니까?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진 않습니까? 무척 힘드시죠? 무척 괴로우시죠? 무척 외로우시죠?
그런데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힘들게 걷고 있는 광야와 사막과 같은 인생살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곧 미드바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지켜 보호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가 친히 우리에게 다바르,”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의 미드바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다바르, 곧 무엇을 가르치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궁금증을 풀어보려 합니다.
첫째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2).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완악합니다. 목이 뻣뻣합니다. 자꾸만 고개를 높게 쳐들고 싶어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참지 못하고 금방 발끈합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마음이 온순합니다. 자아가 죽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을 굳이 자랑하지 않습니다. 광야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곳이 아닌 준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쏟아놓지도 않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둘째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십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 .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2, 3)
광야에는 모든 게 부족합니다.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마다 내려주신 만나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광야에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샘물을 허락하셔야 기갈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길을 가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5, 6).
한편으로, 40일 광야 금식기도 후 극도로 허기진 예수께 사탄이 다가와 던졌던 첫째 유혹이 이러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3). 하지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 4:4).
그렇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떡이 아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아가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우리는 그 어려움에서 급히 빠져나가려 합니다. 기도할 때도, 어려움에서 빨리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힘든 일이 속히 지나가도록 해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절대 신뢰하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배짱이라 부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겠다는 믿음,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셋째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이외엔 의지할 자가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7-10).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생활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고독하긴 했지만 그 여정 가운데 오직 하나님 이외엔 의지할 자가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결국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란 희망이 담긴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마음에 심어주고자 하신 교훈은 하나님 이외엔 그 어느 누구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43:19-21).
한편으로, 40년 광야생활 가운데 불평만 늘어놓았던 자들에게 광야는 끝내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의 뒤를 이어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후손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광야경험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되찾도록 이끄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광야 길을 걷고 있다면, 너무 두려워 말기 바랍니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광야여정이 찾아온다면, 두려워 말기 바랍니다. 또한 그 광야 길을 굳이 피해가려 하지도 말기 바랍니다. 광야 길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합니다. 어찌 보노라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광야 길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혹시 광야 길에 들어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치 도피자가 동굴을 찾아 들어가듯,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도피처를 찾기 바랍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광야 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란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잃게 되면, 설령 푸른 초장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광야가 되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러 광야 속으로 들어갈 배짱을 가져보지 않으시렵니까?
사울 왕을 피해 광야와 사막을 전전긍긍하며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때, 다윗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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