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7, 2018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1:1-12 (2018 8 5일 주일예배)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5).
배어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살 길을 찾고자 수고할 때, 요나는 배의 가장 아래 층으로 내려가 바닥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모두가 깨어 수고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요나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나는 조국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을 가진 구국 선지자였습니다. 아니 그 시간에도 고국을 향한 열정으로 그의 가슴은 여전히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니느웨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한다는 것이 요나의 철저한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니느웨에 기회를 주시겠다 하십니다. 곧 요나는 하나님의 공의를 주장한 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려 하십니다.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2).
그래서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니느웨로부터 가능한 멀리 도망치려던 중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그가 순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고자 급히 항구 도시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리고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배 삯을 치른 후 배에 올랐습니다. 참고로, 다시스는 오늘날 스페인 남부 지브롤터 해안 도시입니다. 이것은 그가 니느웨로부터 정반대 방향으로 도주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나는 이젠 되었다싶었습니다. “마음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싶었습니다. “모든 게 원하는 대로 되었다싶었습니다. 가능한 니느웨에서 멀리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로부터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4). 하나님께서 요나가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큰 바람을 바다에 불게 하심으로써. 마치 희랍 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과 같습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다를 격동시켜 대적을 괴롭혔습니다.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막아 서시자, 요나 자신에게만 해가 다가온 게 아니라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이 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5). 다른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선지자가 오히려 화를 불러오고 만 셈입니다.
모태귀소본능(母胎歸所本能)”이란 게 있죠?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흔히들 미성년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써, 과도하게 폐쇄적 성격을 보이거나 유아기의 습관으로 퇴행하려는 증상입니다. 쉽게 말해, 어머니 뱃속에 있던 때가 그리워 현실에 적응 못하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어떤 공간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에만 마음에 평온과 평화를 느끼는 것이 바로 곧 요나 콤플렉스입니다.
사실 요나 콤플렉스는 분석심리학자의 창시자 칼 융(Carl G. Jung)이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과 사명을 피하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성향을 비꼬아 사용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죽던 살든 상관없이 배의 맨 밑층에 내려가 그곳에서 깊이 잠들어버린 요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혹시 요나가 나 자신은 아닐까?” 그리고 혹시 여러분은 아닙니까?” 남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던 간에, 여전히 잠을 자고 있진 않습니까?
배 가장 아래층에 내려가 깊이 잠들어 있는 요나를 발견한 선장이 이렇게 꾸짖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6). 선장이 선지자 요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뭐라고 말합니까?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는 선장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가 자는 자가 아닐까요? 그래서 자는 자여,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는 소리가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하여 들려오는 외침은 아닐까요?
급작스럽게 임한 재앙의 원인을 찾고자 배에 탔던 사람들이 제비뽑기를 합니다. 그리고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습니다. 결국 요나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9).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 중이기에 엄청난 재앙이 임했음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배에 들이 닥친 재앙이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라고 인정한 요나. 바로 그것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 모두를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었습니다.
특별히 큰 파도가 일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가 힘들어질 때, 이런 책임감 있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원인이 다른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즈음 사람마다 내 책임이 아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정의가 사라진 것이 모두 다 네 탓이다라고 외치는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부류입니다.
물론 비난의 화살이 다가오면, 기분 좋을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두다 너 때문이다라고 외치는 곳에는 원망과 분쟁만 있을 뿐입니다. 싸움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모조리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손뼉은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서로의 이기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게 내 탓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모든 것이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고로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 놀랍게도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불화는 잠잠해집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그날 설교를 그릇치고서 힘없이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설교를 죽 쓸 때, 그 누구보다도 설교자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예배가 끝난 후 한 늙은 집사님이 목사님의 손을 꼬옥 붙잡고 훌쩍훌쩍 울었답니다. “집사님, 왜 우세요라고 목사님이 물었더니, 집사님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설교를 잘못하신 것은 제 탓입니다.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위해 토요일 밤마다 늘 기도했는데, 어젯밤엔 손님이 오는 바람에 기도를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목사님께서 설교를 죽 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목사의 설교가 은혜롭다, 은혜롭지 못하다라고 투정하기보단 목사의 설교를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목사의 설교가 놀랍게도 은혜로워질 것입니다.
결국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해 요나가 이렇게 외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12). 단호히 결심하고서 책임을 껴안겠다고 한 것입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Pick me up and throw me into the sea).” 이것은 바다에 진노를 쏟아 붓고 있는 신에게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큰 죄인입니다. 고로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지 말아주십시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기 위해 요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어드리는 것 밖엔 없었습니다.
사실 문제는 요나 자신이었습니다. 맡겨진 사명을 뒤로 하고 마음 편하게 살겠다고 도망친 요나 자신이 문제였습니다. 이제 다시스를 향해 도망하는 것이 멈추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풍랑 속으로 내던져짐으로써. 자신이 일으킨 재앙 속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온몸으로 대가를 치르겠다는 의미입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5).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 풍랑이 곧 그쳤습니다. 격동하던 바닷속으로 요나가 들어가자 바다가 평정을 찾았고, 배가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나를 들어.그런데 이 구절이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지 않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3:14).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사 백성을 물도록 하심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으로 만든 뱀을 장대 위에 달라고 명하시고,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놋뱀이 장대에 달린 것처럼, 예수께서도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것이고, 십자가에 달린 그를 보고서 믿는 자마다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는 전혀 죄가 없으셨지만, 마치 죄인처럼 높게 들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책임을 기꺼이 껴안는 자들이 있는 곳엔 원망이 사라집니다. 불신이 사라집니다. 긴장과 불화가 사라집니다. 그 대신 그곳에 신뢰가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번영이 있습니다.
이솝우화여행자와 그의 개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막 여행을 떠나가려던 사람이 자기 개가 문 앞에서 온몸을 쭉 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개를 쏘아보며 말합니다. “왜 입을 쫙 벌리고 하품만 하고 있는 게야? 너만 빼고 모두 다 준비되었으니 당장 같이 가자.”
그때 개가 꼬리를 흔들며 화답합니다. “, 주인님, 주인님이야 말로 제가 여태껏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빈둥거리길 좋아하는 자가 일이 지연되면, 더욱 활동적인 자기 친구 탓만 한다란 속담이 있죠?
성도 여러분,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 사회의 문제로부터 회피하지 말기 바랍니다. “혼자 편히 살겠다라는 생각은 갖지 말고, 오히려 문제 속으로 기꺼이 뛰어 들기 바랍니다. 가정이나 교회에 있는 문제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서 이렇게 외치기 바랍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현안 문제 속으로) 던지라.” 만약 이렇게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진다면, 우리교회엔 정녕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센 풍랑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책임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역사를 펼쳐가실 것입니다. 고로 거센 풍랑 속으로, 곧 뜨거운 현안 문제 속으로, “나를 들어 던지라는 소리가 우리교회에서 더욱 크게 울러 퍼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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