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2, 2018

인생 밑바닥에서 찾은 하나님






인생 밑바닥에서 찾은 하나님
1:17-2:10 (2018819일 주일설교)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하여 한 손으로는 폭풍을, 다른 한 손으로는 구원을 펼치고 계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향했을 때, 거센 바람이 불어 바다에 풍랑을 일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가 자신의 불순종을 깨닫고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온전히 내어 맡기자 하나님께서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예비하여 요나를 통채로 삼켜 풍랑 속에서 그의 목숨을 보존케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어떻게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동안 머물며 생존할 수 있는가?”라고 의아해 합니다. 물론 현실적이고 합리적 사고가 담긴 똑똑한 의심입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과학적 사고로 성경을 읽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 즉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세상의 과학과 지식으로만 성경을 바라보노라면, 온통 거짓투성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보노라면, 세상의 과학과 지식으로 풀지 못하는 것조차 능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면,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기에 성경을 사뭇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언급된 물고기 뱃속에서 머물러 있는 요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죽음의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요나 (2:1-8)
언젠가 어린이 성경 이야기를 보노라니, 요나가 바다로 내던져지자마자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입을 떡 벌린 채 기다리고 있다가 요나를 삼키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잘못 그려진 그림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 요나는 한동안 바닷속 깊이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스올의 뱃속, 즉 바다의 가장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2). 물속 깊이로 떨어지면서 깊은 바닷속에 생식하는 해초들이 그의 몸을 둘러쌌습니다(5). 바다 아래에 솟아 있는 산의 깊은 계곡까지 내려가는, 즉 죽음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6). 하지만 바로 그 밑바닥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요나는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바다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동안 심판의 아픔을 처절히 경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순종한 요나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절망적 순간에 요나가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요나에게 내미셨습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보내어 요나를 통째로 삼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2).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심각한 환란을 만나면, 제일 먼저 부정 혹은 부인(denial)의 단계를 밟습니다. “설마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닐 거야. 무엇인가 잘못 되었을 거야!”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20여년 전 4 20일 나치 독재자 히틀러의 생일을 거사일으로 삼아 콜로라도 주의 덴버 시의 교외 리틀턴의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서 14명의 학생들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한 트렌치 코트 마피아단의 소행을 기억하십니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러한 만행이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학생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못했습니다.
범행을 단행했던 딜란 클레볼드와 에릭 해리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범행을 저지를 아이들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의해20094 20일 오전 11 30분 경에 고요하던 학교가 갑자기 총소리와 수류탄의 폭발음으로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교내를 한 시간 가량 돌아다니면서 자동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졌으며, 결국엔 도서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접한 클레볼드의 어머니는 전화를 받으며 설마 자기 아들이 그런 끔찍한 일에 가담했음을 믿지 못하고 그것은 아닐 것이다. 내 아들이 아닐 것이다고 극구 부인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들이 해리스와 함께 총을 들고 다니며 학생들을 무차별 난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인(denial)의 단계에서 사실이 확인이 되면, 흔히들 체념 단계로 들어섭니다. 체념의 긍정적 면은 현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겠다는 희망마저 놓아버릴 수 있다는 부정적 면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의 의미와 목적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면서여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하는 깊은 회의감과 좌절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느 누구나 심각한 곤경에 처하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그러한 순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찾기 때문입니다. 스올로 내려가는 길에서, 바다의 해초가 온몸과 머리를 에워싸는 상황에서, 즉 죽음의 상황으로 몰리는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움을 구할 수 있기에 결코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설령 순간적으로 좌절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에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애가 3:55).
이렇게 보건대, 삶의 밑바닥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연약함이 아닌 참된 용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와 구원을 간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우리가 깊이까지 추락했느냐?”가 아니라, “삶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밑바닥에서 다시 올라서도록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다 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던 때, 즉 죽음에 이르는 절박한 순간은 오히려 요나가 하나님께 울부짖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요나는 큰 물고기를 통한 하나님의 실로 놀라운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바다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요나는 살았다고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요나는 목숨을 잃지 않고 뱃속에 잠시 머물러 있었을 뿐입니다. 비록 풍랑 가운데 죽지 않았으나 오히려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몸이 점점 삭아가면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건대, 물고기 뱃속에 있는 갇혀 있는 자신을 생각하노라면, 상황은 여전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어둡고 답답한 물고기 뱃속에서 희망만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그곳을 기도처소로 바꾸었습니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
그리고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자기의 시각을 하나님께로 재조정했습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 환경이 남의 탓이 아닌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파도와 큰 물결을 일으키셨고, 요나 자신을 그런 풍랑 속으로 던지셨으며, 스올의 가장 낮은 자리로 요나 자신을 이끄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요나는 현실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수단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도움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내쫓김을 받으면서도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처한 환경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요나와 같이 이제 주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 앞에 꿇어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6)는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으로 겸손히 나아오기 바랍니다.
어떤 순간에도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요나와 같이 물고기 뱃속과 같은 어두운 환경을 기도의 장소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물고기 뱃속이야 말로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있는 시간을 하나님을 피부로 경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바꾸기 바랍니다. 곧 인생의 밑바닥을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기도처소로 바꾸기 바랍니다.
야고보 장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5:13).
환란을 통해 변화된 요나와 하나님의 구원 (2:8-10)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요나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가 풍랑을 만나고 바다에 내던져짐을 당하고, 물고기 뱃속에 삼킴 바 되었을 때, 는 자신이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자신의 교만과 자기 중심적 성경관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깨어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하나님께 헌신을 다시 다짐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9).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겠노라 서약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생각이나 소신과는 다른 명령이 주어진다 해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면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겠노라는 의지 천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환란의 경험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고, 또한 그분께 온전히 헌신된 자로 변화되는 통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회개한 요나,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요나, 환란 중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요나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셨고,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해변가로 토해내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을 매듭짓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현실이 너무나 암담하다고 하여 부인과 체념의 단계에 접어 드신 분들이 계십니까? 만일 부인하려면,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자만을 부인하고, 만일 체념하려면,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온전히 맡기는 체념하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의 채찍으로 아파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심정으로 돌아올 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근거하여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할 때, 그들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며, 더 나아가서는 감사조건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요나처럼 비록 여러분의 환경이 물고기 뱃속처럼 암담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바로 그곳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로 바꾸어가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나처럼 우리도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할 수 있길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랍니다. 아멘?

Twitter Delicious Facebook Digg Stumbleupon Favorites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