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5, 2018

이 사람이 누구인가?






이 사람이 누구인가?
21:1-11 (20183 25일 종려주일)
유월절 주간이 찾아 들자 그 소문난 유대축제에 참석하려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과 인근마을로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 주로 다니셨던 북쪽 갈릴리 지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한편으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계신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성내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수많은 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서 그를 맞으러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멀리서 그가 오는 것이 보이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
시편 118편에 유월절 축제와 관련된 시가 있는데, 그 축제에 참석한 이들이 익히 그 싯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 118:25, 26).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는 히브리 말로 호쉬아나(Hoshiana)”인데, 우리는 이것을 호산나(Hosanna)”로 발음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길 원합니다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것은 주님을 찬양하는 찬송시가 되었는데,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젠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란 약속 성취에 대한 염원이 그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이 손에 종려나무를 들고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그토록 열광적으로 맞이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신비한 기적과 치유능력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풀어 설명하실 때 하나님의 지혜가 그 가르침에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임할 수 있는 큰 권위가 예수께 있음을 보고서 지극히 놀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놀라운 행적을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들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열렬히 그를 환영했습니다. 커다란 희망과 기대를 안고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외치며 찬송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결국 열렬한 환영 속에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성내에 들어섰을 때 그곳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마태는 그 당시 예루살렘 성내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10).
이곳저곳에서 시끄럽게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누구뇨?”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가?”란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예루살렘 성을 그런 소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질문은 동일한 주간 예수께서 빌라도와 군중 앞에 섰을 때와 그가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고 죽어갈 때에도 제기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숱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비난과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나사렛 예수란 자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 사람이 누구인가?”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대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란 질문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요? 2천년 전에 살다 떠나간 이에 관한 질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소용이 있느냐고요? 
그런데 진실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의 인격과 신앙체계 그리고 삶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까지 좌우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을 결코 회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예수가 누구입니까? 그가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한 역사적 인물입니까?
유대인들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께서 위대한 다윗 왕의 혈통으로 오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좌에 오르고 대적의 억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후 이스라엘을 위대한 왕국으로 다시 회복시킬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호산나를 외치며 그를 열광적으로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고서 환호한 것입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은 곧 메시아를 의미했습니다.
물론 그날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께서 다윗의 혈통인 게 분명합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란 사실도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간과한 실로 중요한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용맹스런 말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게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그들은 직시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께서 성내로 들어오셨을 때, 그곳이 그토록 요란스럽진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숙연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벳바게란 동네에 다다랐을 무렵 그의 두 제자를 보내어 맞은편 마을 입구에 매여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풀어 오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3). 또한 다음과 같은 구약의 예언까지 인용하시며 그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하라”(4). 그래서 명령 받은 대로 두 제자가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풀어왔습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얹어 예수께서 그 위에 오르시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보건대, 예루살렘에 오르실 때 예수께선 자기 자신이 어떠한 메시아인지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께서 이미 명확히 제시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감당코자 예루살렘에 오르셨습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해해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몰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낮에 굳이 나귀를 타고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이해했기에 해방자적 존재로만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만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요구했을 뿐입니다.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엄마와 풀밭에서 재롱 떨며 장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새끼 호랑이가 어미 호랑이에게 묻습니다. "엄마, 나 호랑이 맞아? 나는 달리기도 못하고, 아직까지 토끼 한 마리도 못 잡았으며, 사냥도 못하는데. . . 내가 참으로 호랑이 맞아?"
어미 호랑이가 대답합니다. "그럼. 내가 낳았으니까 너는 틀림없는 내 새끼 호랑이란다."
새끼 호랑이가 엄마 호랑이를 귀찮게 자꾸 되묻습니다. "엄마, 나 정말 호랑이 맞아! 강아지만도 못한데, 내가 호랑이 맞아?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내가 진짜 호랑이 맞아?"
자꾸 물어보니까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개새끼야,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그래서 졸지에 아기 호랑이는 개새끼가 되어버렸습니다.
흔히들 많은 사람이 남의 기대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다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남의 기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높은 기대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자기 자신의 소신과 소명까지도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소중한 사명까지 포기하고 맙니다.
남의 기대치에 끌려 살아가는 우리와는 달리 예수께는 결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묵묵히 자기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완수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옛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란 누구입니까?
예로 들어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읽었듯,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는 겸손히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타고 오는 겸손한 왕입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고난 받는 종입니다. 자신의 백성을 위해 대신 죽는 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께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너무나도 분명히 밝히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편견과 기대감에 사로잡힌 채 그들은 예수께서 굳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오르는 이유를 깊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열광은 금새 식었고, 불과 며칠 만에 그들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이 질문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반드시 이 질문에 확실한 답변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삶이 소란스럽습니다. 우리 신앙이 혼란스럽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민정시찰을 하던 중 어느 시골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엔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여왕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으나 그럴듯한 음식을 내놓을 수 없는 형편이어서 평소에 아끼던 소중한 차를 대접했습니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중 여왕이 그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이 집에 많은 사람이 방문 했을 텐데, 그 중 가장 귀한 손님이 누구였습니까?
여왕은 그 농부가 예수님이라고 대답할 줄로 기대했는데,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우리의 가장 귀한 손님이십니다.
실망하는 눈치로 여왕이 말했습니다. “나는 여왕일지라도 여전히 사람인데, 가장 존귀하신 분은 예수님이 아닌가요?
그때 그 농부가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폐하, 예수님은 나의 손님이 아니라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 말을 듣고서 여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회개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아니하고 손님으로 모셨구나.
이 세상을 살아 가는 동안 예수께서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누구입니까?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의 메시아이십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과 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십자가를 친히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의 거룩한 피를 흘려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란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십자가 위에서 한 강도가 죽어가면서 떨리는 심정으로 예수께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23:42).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이런 화답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23:43).
예수란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죽을 때, 그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목격한 백부장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15:39)
이 사람이 누구인가?” 성도 여러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을 여러분의 왕으로, 여러분의 메시아로 고백하며 찬양하십시오. 믿음의 큰 함성으로 그를 환영하십시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 무척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도 우리와 더불어 기쁨의 축제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와 더불어 그들 역시도 호산나를 크게 외치며 주님을 맞이하게 해야 합니다. 아멘?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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