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5, 2017

꺼내야 할 선물(Gifts to Unwrap): 희망





꺼내야 할 선물(Gifts to Unwrap): 희망
이사야 9:1-7 (2017 12 3. 대강절 첫째 주일)
오늘 본문을 보노라면,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외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2).
흑암, 곧 어둠 속에 걷는 자들에게 큰 빛이 비추었습니다. 죽음의 그늘진 곳에 거하던 자들에게 밝은 빛, 환한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현실은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대지역은 여전히 앗수르의 속국이었습니다앗수르 군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공한 후 이미 처절하게 황폐시켰고, 이젠 남왕국 유대지역마저도 그와 같이 하려고 위협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대지역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신실하고 충성하기보다는 정치적 안녕을 추구하고자 앗수르 제국에 비위나 맞추기에 분주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지도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선지자 이사야와 소수의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께 신실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한다면,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음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전쟁과 위협 가운데 몹시 궁핍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선지자 이사야처럼 소수의 사람들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은 오래 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억압자들로부터 구원하신 바로 그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시기에, 세상의 억압, 위협 그리고 전쟁을 계속해서 방관하진 않을 것이라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속으로 들어와 전쟁과 억압을 멈추게 하시고, 이 땅 위에 자기 왕국을 건설하시며, 태초에 뜻하신 대로 모든 피조물을 회복하실 그 때를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모두가 한 분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2:9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그 때, “(하나님께서)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한 바로 그런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두움이 온 세상을 덮였고, 깊은 어두움이 백성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  . 하지만 그곳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일어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백성을 자신의 영광으로 감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희망을 외칩니다. “(주의 백성아,)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 60:1, 2).
물론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외적의 억압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강한 억압자들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때는 정녕 다가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세상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볼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노라면, 사도 베드로의 서신은 극한 상황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좇기 시작한 후, 기대했던 평화, 안전, 혹은 번영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조롱과 핍박과 죽음만을 경험했을 뿐입니다.
온갖 유형의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벧전 1:6). 억울하게 당하면서 슬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벧전 2:19). 비방과 비난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벧전 3:9, 16). 끊임없이 배척 당하고, 모욕 당했습니다 (벧전 4:4, 14).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그런 환경에서 고통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우리는 가능한 자주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꿈을 꿀 필요가 있습니다. 더 큰 꿈을 꾸어야 합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기에.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정녕 가능합니다.
대강절은 하나님의 강림, 약속된 메시아의 오심, 참 빛, 곧 생명을 주는 빛의 오심에 관한 절기입니다
이 특별한 절기에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꾸었던 꿈을 꾸어야 합니다.
곧 나누어진 마음들 가운데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모두를 하나 되게 하시는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언제나 그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그 때를 모릅니다. 하지만 꿈을 꾸면서 여전히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기다림 가운데 그가 오사 모든 약속을 이루실 그 날을 위해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그분께서 정녕 오실 것이고, 모든 것을 성취하실 것을.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을 헤아리며 우린 이렇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20년 전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여전히 갈등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다. 나의 삶을 위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습니까?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귀를 기울어야 할 조언은 바로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를 기억하십시오라는 것입니다.
딛전 1:1에서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리스도 예수하나님 우리 구세주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소망.” 예수께서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희망은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희망은 그것을 외치는 자들의 것이라고.
루쉰이란 작가가 고향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희망이란 그것을 가슴에 품는 사람에게만 실존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겐 희망은 존재하는 것이고, 희망을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은 실존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한창 아시아 정복사업을 추진하던 때, 자기 개인 소유를 장병들과 지역주민들에게 모조리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의 소유물이 거의 모두 양도되었을 무렵, 한 신하(General Perdiccas)가 왕에게 물었습니다. “폐하, 그렇게 다 나누어주시면, 폐하에게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때 알렉산더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짐은 희망을 갖겠노라.”
그러자 페르디카스(Perdiccas)가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은총을 누리는 우리도 왕께서 소유하신 그 희망을 공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할애된 모든 것을 왕에게 드렸고, 왕의 절친인 다른 이들도 그와 같이 했습니다.
17세기에 30년 전쟁이 한창일 때, 폴 게르하트(Paul Gerhardt)란 독일의 한 목사가 집을 포기하고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가족과 함께 조그마한 마을 여인숙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 두려움 가운데 그의 아내가 절망하며 울부짖습니다
아내를 위로하고자 게르하트 목사는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보호하심에 관한 성경구절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홀로 뒤뜰로 나가 슬피 눈물을 훔칩니다. 그때야말로 생애에 가장 어두운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 후 마음을 짓눌렀던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주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즉시 펜을 들고서, 그가 찬송을 쓰기 시작했고, 그 찬송은 훗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때 그가 쓴 찬송은 이렇습니다.
그대의 걱정을 바람에 날려보내고, 희망 가운데 낙심치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의 한숨을 들으시고 눈물을 헤아리신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머리를 들게 하실 것이다.
큰 파도가 일고, 검은 구름이 뒤덮고, 풍랑이 거세다 해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분의 때를 기다리라. 정녕 밤은 끝나고 희망찬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많은 경우 삶의 가장 어두운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우리에게 뚜렷이 보여주시곤 합니다. 곧 고통과 어려움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과 힘의 근원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만약 게르하트 목사님처럼 이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요즘 힘든 시간 속에 있진 않는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찾아오심과 그분의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과 낙심 가운데서도 우리의 희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춥시다.
유대 랍비 휴고 그린(Rabbi Hugo Gabriel Gryn)은 독일 집단 수용소에서 겪은 뼈아픈 체험담을 전후 독일 잡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세계 2차대전 시, 1944년 추운 겨울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수용소 건물 한 구석으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어렵게 구한 버터 한 조각을 진흙으로 만든 그릇에 넣고서 거기에 심지를 꽂은 뒤 불을 붙였습니다. 촛불을 구할 수 없어 버터로 불을 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아도 3주간을 살 수 있단다. 물을 마시지 않고도 3일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단다. 어둠을 밝히는 이 불이 곧 희망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여호와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희망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희망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희망차게 살아갑니다.
통합 찬송가 415장에 이런 가사가 들어 있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고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되시네.” 아멘. 아멘.
금주부터 우리는 교회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네 주간의 대강절 순례로 들어갑니다
주의 성탄을 준비하는 순례의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준비의 계절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방법이 여럿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준비를 제안합니다.
강림절 화환을 만들어보기 바랍니다. 화환은 둥그런 모습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결코 끊임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화환이 녹색인데, 그것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화환 안에 네 개의 촛불을 꽂는데, 성탄절까지의 네 번 주일을 의미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화환 중앙에 흰색 촛불을 꽂는데, 그것은 이 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곳엔 희망도 없다.”
그의 말을 반대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엔 언제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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