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8, 2017

평화, 평화, 그리고 평화




평화, 평화, 그리고 평화
어느 날 시인 단테(두란테 델리 알리기에리, Durante degli Alighieri)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맙니다. 12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정치무대에 들어선 단테는 피렌체가 로마 교황의 세력에 들어가지 않도록 힘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길고 긴 망명생활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망명생활이 그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긴 했으나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좋은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왕 망명을 떠나갈 것이라면, 의미 있는 삶을 찾고 싶은 생각에서 그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먼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멀고 먼 보행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차갑고 늦은 어느 날 밤, 단테가 프란치스코 수도원 한 곳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립니다. 그러자 문 두드리는 소리에 한 수도승이 얼굴을 내밀긴 했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묻습니다. “이 늦은 밤에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단테가 대답합니다. “나는 평화를 찾는 중입니다.” 그러자 수도승은 밤이 너무 늦어 문을 열어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단테를 안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결국 단테는 수도원에서조차도 평화를 얻지 못한 채 외로운 길을 계속 떠나야 했습니다.
한편으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가 우물에서 물 긷는 여인을 우연찮게 보고서 관찰하게 됩니다. 가만히 보노라니,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후 그 여인은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띄우더니 그제야 그것을 어깨에 메고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강한 호기심에 끌린 프란체스코가 여인에게 묻습니다. “물 항아리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화답합니다. “그 이유를 모르시는군요. 물 항아리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죠.
그 여인의 대답을 듣고서 프란체스코에게 큰 깨달음이 다가왔습니다. “그렇구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날 때, 동요가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내 마음에 띄우면 되겠구나.
유대지역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의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라고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천사들의 찬양대로라면,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화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평화를 주기 위해 우리에게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그가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평화의 왕(Prince of Peace)을 금번 대강절에 우리 모두 마음에 영접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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