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1, 2017

사랑으로 한 해를 마감합시다





사랑으로 한 해를 마감합시다
요일 3:11-20 (20171231. 주일예배)
하나님의 사랑
중세기에 어느 한 수도사가 다음 주일 저녁 미사 설교제목은하나님의 사랑(The love of God)”이라고 미리 광고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저녁 미사를 드리려 회중이 성전으로 들어섰는데 다른 날과는 달리 제단이 굉장히 어두웠습니다. 제단 위 촛불도 켜져 있지 않았습니다.
설교시간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수도사가 제단 위의 촛대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촛대를 십자가 위쪽으로 들어올렸습니다. 그러자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촛대를 옆쪽으로 옮기자 못 박힌 예수님의 두 손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이후 창에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로 촛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쪽으로 가져가자 회중은 예수님의 못 박힌 두 발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후 촛불을 끄고서 제단을 내려오더니 수도승은 조용히 밖으로 가버렸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폐회를 알린다는 언급도 없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날 저녁설교와 미사가 끝났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줌으로써 그 수도사는 회중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완벽하게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하셨습니다. 사실 천지창조 후 골고다 위에 우뚝 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선명히 표현된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무릎 꿇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으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셔야 했을까? 얼마나 간절히 나처럼 못난 인간을 죄의 형벌로부터 구해내고 싶으셨으면,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울부짖는 아들의 외침마저 외면하셔야 했을까?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아버지의 가슴을 찢고 또 찢었을 텐데. . .  도대체 나란 인간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웠으면. . .”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그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옵니까? 또한 아들의 울부짖음을 듣고서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느껴집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으면, 하나님께 얼마나 사랑스러운 영혼이었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가 십자가 위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마저 묵묵히 지켜보셔야 했을까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화니 제인 크로스비란 여류 찬송 작가는 잦은 질병으로 고통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완벽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생애를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담긴 그녀의 찬송시는 수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녀가 작곡한 수많은 찬송 중에서도 통합 144장은 특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1)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2)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아 죽였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조건부 사랑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베풀어졌습니다. 모두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호의를 받을 만했기에 주어진 게 아니고, 우리가 의로웠기에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베풀어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5:5, 6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백성은 십자가에서 완벽히 제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용서하신 우리 자신을 우리 역시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물론 금년 한 해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노라면 후회스럽고 아쉬운 면도 많았겠지만,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이 정도 했으면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온 우리 자신을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서, 그 사랑을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같은 날엔 더더욱. . . 성도 여러분, 이렇게 여러분 자신에게 말해주기 바랍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단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가족 구성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우선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물론 금년 한 해 동안 살을 비비고 살아오면서 서로 의견이 달랐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얄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쉬워도, 얄미워도, 이해하기 힘들다 해도,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가족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껴안아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가족을 있는 그대로 껴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껴안아주겠습니까?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 안에서 그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갈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쉐퍼는 20세기말의 교회란 책에서교회는 죽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덕을 세울 수 없고, 오히려 분열만 있습니다. 교회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 또한 주장하고 싶은 것마저도 때론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가 요구됩니다.
사도행전을 펼쳐보노라면, 초대교회에는 화려한 건물이나 잘 조직된 부서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두 눈으로 목격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랑에 눈물 흘리며 감격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꼈던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은 자신들의 말로써, 그리고 구체적인 구제활동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허다한 무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제스 무디라는 분은사람들은 행동이 있는 곳으로가 아니라 사랑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교회에 적용시키면, 사람들은 사랑이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훌륭하게 준비된 수많은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프로그램에 식상하면, 그런 교회를 떠나갑니다. 하지만 교회에 사랑이 있으면, 설령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시설이 미비하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곳에 정착합니다.
어떤 허물이나 부족하고 미비한 부분마저 덮어주는 능력을 사랑은 품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바로 이런 사랑이 있었으면 합니다.
전도할 때, “우리교회 안에는 잘 짜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또는우리교회는 주차장도 넓고, 교육 시설도 좋습니다라고 자랑하기보단우리교회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와서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적극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게 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십시오라고 말하기에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돌립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한 자들이 사랑의 행위를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가기에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이렇게 전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스콧틀랜드에서 태어난 로버트 모리슨(1782-1834)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방황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말썽을 부렸든지 주변 사람들이구제불능의 저질이란 별명을 그에게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그리스도인이 그 소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강한 열정을 가지고, 그 소년에게 옷을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옷을 받자마자 모리슨은 즉시 찢어버렸습니다. 다시 새 옷을 사주었더니, 그것마저 찢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리스도인은 모리슨에게 또 다시 새 옷을 사주었습니다. 모리슨은 그 사람이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서 그를 좇아 주일학교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며 모리슨의 신앙은 날이면 날마다 커져 갔고, 결국 자신이 받았던 하나님의 사랑을 남에게 전하고자 선교사역에 헌신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중국선교의 꿈을 품고서 열심히 중국어를 학습했습니다. 결국 그는 중국어 사전과 성경을 출간했고, 중국선교 개척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테레사 수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매듭 짓고자 합니다.
1946 910일 테레사 수녀는 칼커타에서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소위 그녀가 말한 부르심으로의 부름을 받습니다. 이 영감은 새로운 사역을 위한 확실한 목적과 소명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의 구원과 성화를 위한그리고 사랑과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무한한 목마름을 해소시켜드리기 위한사역입니다. 그래서 결국 1950 10 7, “자선 선교단(Missionaries of Charity)”란 새로운 선교단체가 캘커타 대교구 안에 공식적으로 태어났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다음의 이야기 하나를 들려 줍니다.
어느 날 나는 하수구에서 한 남자를 꺼냈습니다. 그의 몸은 벌레가 우글거렸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리에서 동물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랑을 받고 관심 속에서 천사처럼 죽어가는군요" 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를 깨끗이 씻기는 데 무려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수녀님, 나는 이제 주님 계시는 집으로 갑니다." 그러고 죽었습니다.
나는 한 인간의 얼굴에서 그토록 빛나는 미소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주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랑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양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대단한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살리고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서 대속제물로 삼아주셨기에 우리의 존재가 소중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보건대, 우리가 대단한 존재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받은 사랑을 남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도 축복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남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사랑의 마음으로 마무리 짓고, 다가오는 2018년을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즐겁고 희망찬 새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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