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8, 2017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34:7-24 (2017 1126. 그리스도 왕 주일)
이미 주보에 언급한 것처럼, 교회력으로 오늘은 “그리스도 왕 주일(Christ the King Sunday)”로 지키고, 다음 주일부터 우리는 대강절(Advent)로 들어갑니다. 천주교에서는 이날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혹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Sollemnitas Domini Nostri Iesu Christi Universorum Regis)”이란 호칭으로 대신 사용합니다.
참고로, 천주교 교황 파이어스 11(the Catholic Bishops, Pope Pius XI)는 이날의 중요성을 강조코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 우리 주께 주어졌다면, 만약 그의 보혈로 속죄 받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통치 아래 있다면, 만약 모든 사람이 이 권세 아래 있다면, 우리에게 있는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그분의 소유가 아닌 게 없음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이 그분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함이 마땅하기에 계시된 진리와 교리에 우리는 온전한 복종과 확고한 신념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의지가 그분에 통치 아래 있어야 함이 마땅하기에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에 우리는 온전히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마음은 그분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함이 마땅하기에 우리는 본능적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해야 하며, 오직 그분께만 집중해야 마땅합니다.
우리의 온 몸과 모든 것이 그분의 통치 아래 있음이 마땅하기에 우리 영혼의 내적 성화를 위한 도구와 하나님의 공의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마땅합니다. (Pope Pius XI, Quas primas, §33, Libreria Editrice Vaticana)
여러 가지 이유에서 아직까진 개신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왕 주일이 그다지 강조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나 이날의 의의는 크게 장려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하늘과 땅 위에 있는 모든 교회는 이렇게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이 사실은 빌 2:9-11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은 온 우주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날입니다. 오늘은 모든 피조물이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시자 왕 되심을 입술로 고백하는 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이렇게 크게 외쳤으면 합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물론 수세기 동안 우리는 실로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전쟁, 폭력, 테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족, 결혼, 건강, 직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한 인류는 정서적으로 근심과 걱정, 공허함과 회의감에 극도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믿음을 확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그의 통치는 절대적이고, 그의 권세는 범우주적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통치와 권세에 우리의 신뢰는 결코 변치 않을 것입니다.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곳에서. 특별히 어둡고, 힘든 곳에서.
그래서 주의 주권에 관하여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이렇게 전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 34:11, 12)
더 나아가서, 15, 16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34:15, 16)
우리 삶 가운데서, 특별히 어둡고 힘든 곳에서 자기 자신의 주권을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확고히 신뢰하기에 우리 역시 이렇게 크게 외칩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또한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여전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찐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 .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 34:20, 22-24)
물론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시는 자,” “그들을 먹이는 목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십니다.
25장에서 예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 25:31-34)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이시고 왕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통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에 안전과 희망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도전적 환경 속에서도.
설교 시작하기 전 우리는 예수 우리 왕이여란 찬송(새찬송가 38)을 불렀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우리가 왕께 드리는 영광을 받아 주소서.
우리는 주님의 백성, 주님은 우리 왕이라.
왕이신 예수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왕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무척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왕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역사를 살펴보노라면,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서 그에게 충성을 다한 복된 사람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11:33-40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 관한 대표적 증거입니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주후 155년경 그는 로마 총독에게 끌려가 극한 심문을 당했습니다. 이런 강요를 받았습니다. “예수가 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로마 황제가 왕임을 고백하라.”
그러나 폴리캅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86년 동안 나는 날 구원하신 나의 왕을 섬겨 왔소. 그리고 그 분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잘못하신 일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의 왕을, 나의 구세주를 모독할 수가 있겠소. 잠시 활활 타오르다 꺼지고 마는 불로써 그대는 나를 위협하지만 악한 자를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이 무엇인지 그대는 모르고 있소. . .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왕이오.”
그리고 나서 그는 당당하게 불로 태워지는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주기철 목사는 일본경찰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본 천황 앞에 경배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주 목사께서는 끝까지 왕 되신 주님께 충성하며 순교하셨습니다.
1939년 어느 날 주 목사께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다른 신에게 정절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사에 절하지 못합니다. 아 내 주여,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날마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라고 고백하십니까? 정말 그러합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이시고 왕 되신 예수께 여러분의 삶의 중심, 곧 삶의 보좌를 내어드릴 수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왕 되신 예수께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습니까? 하물며 여러분의 자유마저도?
해군에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훈련병이 자기 상사에게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가출 허가서 발부를 부탁했습니다. 가출 허가서를 건네주면서 일요일 오후 7시까지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상사가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훈련병이 상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제가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그러자 상사가 짧게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아니. 오해는 자네가 하고 있군. 자네는 지금 해군에 몸담고 있어.”
피터 포사이드(Peter T. Forsythe)란 분이 이렇게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첫째 되는 본분은 자기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인을 찾는 것이다.” (Warren W. Wiersbe, The Integrity Crisis, p. 22.)
나는 그의 가르침이 백 번 옳다고 믿습니다.
반스 해브널이란 분이 이렇게 말했죠? “85% 정도만 남편에게 신실한 아내는 결코 남편에게 최선을 다한 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파트타임 충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날 주님께서 앤드류 머레이에게 물으셨습니다. “나는 네게 어떤 존재냐?” 그러자 앤드류 머레이가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물론 늘 첫째이십니다.”
그는 자신이 대답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별로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에 문뜩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 내가 대답을 잘못했구나.”
그래서 다시 주께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주님, 주님은 저에게 모든 것이십니다.” 그러자 주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이십니까?
마지막으로, 조지 맥도널드(George MacDonald)의 시 한 편을 읽어드리며 오늘 아침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내가 말씀드렸습니다. 들로 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도시로 가거라.
내가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엔 꽃들이 없습니다.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꽃들은 없으나 면류관은 있다.
내가 말씀드렸습니다. 그곳 하늘은 어둡고, 시끄러우며, 소음이 많습니다.
나를 보내며 그가 흐느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 있는 게 또 있다. 그곳엔 죄가 있다.
내가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두껍고,
안개가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영혼들이 아프고,
암흑 속에 내버려져 있다.
내가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빛을 그리워하고,
친구들은 나를 그리워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에 결정하렴.
내가 너를 그리워하게 될지, 아니면 그들이 널 그리워하게 될지.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결정하는 게 그토록 힘드니?
하늘에서는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나는 들판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도시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양보한 거니?
영광의 꽃들을 뒤로 하기로 한 거니?
그리고 그의 손으로 나의 손을 내밀었고,
그리고 그분께서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빛 되신 하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내가 보기에 두려웠던 그 길로.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Eze 34:7-24 (November 26, 2017. King the King Sunday)
As I’ve already mentioned in the bulletin, according to the Lectionary, today is “Christ the King Sunday,” and then we are going into the Advent Season from the next Sunday. In the Catholic Church, it is observed as the “Feast of Christ the King” or the “The Solemnity of Our Lord Jesus Christ, King of the Universe.” 
For reference, Pope Pius XI had emphasized the significance of this day as follows:
If to Christ our Lord is given all power in heaven and on earth; if all men, purchased by his precious blood, are by a new right subjected to his dominion; if this power embraces all men, it must be clear that not one of our faculties is exempt from his empire.
He must reign in our minds, which should assent with perfect submission and firm belief to revealed truths and to the doctrines of Christ.
He must reign in our wills, which should obey the laws and precepts of God.
He must reign in our hearts, which should spurn natural desires and love God above all things, and cleave to him alone.
He must reign in our bodies and in our members, which should serve as instruments for the interior sanctification of our souls, as instruments of justice unto God. (Pope Pius XI, Quas primas, §33, Libreria Editrice Vaticana)
For various reasons it is still a sad reality that the Protestant Church doesn’t recognize this important religious observance, but nevertheless, its significance should be emphasized for any reasons.
All the churches abov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ould cry out at the top of their voices this morning: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That's right. Jesus Christ is the King over all creation, over all times and spaces.
The Apostle Paul teaches this truth in Phil 2:9-11:
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It is about the sovereignty of Christ, his reign over all creatures here and there and everywhere. It is about our firm conviction that no one but Jesus is the Christ and the King for us.
In this sense, I want all of us to make a loud voice in union once again: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Of course, our world has been a frightening place for centuries. War, violence and terrorism have never ceased. Our family, marriage and workplace are shaking tremendously. Also, humanity is emotionally anxious, worried, emptied and skeptical.
Yet in this turbulent world we are still keeping the Christian faith that Jesus Christ has a cosmic reign. Furthermore, his reign is supreme and his authority is absolute in the present time. Our firm trust in Christ’s reign and authority will never change, even though it may not seem to be in our eyes.
Christ as King still rules this world according to his own will. The fact can be found in many places. Indeed in so many places. Especially in dark and difficult places.
So Prophet Ezekiel speaks of the sovereignty of the Lord in today’s reading:
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I myself will search for my sheep and look after them. As a shepherd looks after his scattered flock when he is with them, so will I look after my sheep. I will rescue them from all the places where they were scattered on a day of clouds and darkness. (Eze 34:11, 12)
Furthermore, in verses 15, 16 God proclaims:
I myself will tend my sheep and have them lie down, declares the Sovereign LORD. I will search for the lost and bring back the strays. I will bind up the injured and strengthen the weak, but the sleek and the strong I will destroy. I will shepherd the flock with justice. (Eze 34:15, 16)
Because we know and believe in God, his own sovereignty in our lives, especially in dark and hard times and places, we should cry out loudly this morning once again: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God is still exercising his power in the coming hours as well.
Therefore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to them: See, I myself will judge between the fat sheep and the lean sheep. . . I will save my flock, and they will no longer be plundered. I will judge between one sheep and another. I will place over them one shepherd, my servant David, and he will tend them; he will tend them and be their shepherd. I the LORD will be their God, and my servant David will be prince among them. (Eze 34:20, 22-24)
Of course, we know who “the judge between sheep and sheep,” and “the shepherd feeding them” is. He is Jesus Christ our King.
In Matthew 25, Jesus Himself confirms this claim:
When the Son of Man comes in his glory, and all the angels with him, he will sit on his throne in heavenly glory. All the nations will be gathered before him, and he will separate the people one from another as a shepherd separates the sheep from the goats. He will put the sheep on his right and the goats on his left. Then the King will say to those on his right, “Come, you who are blessed by my Father; take your inheritance,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MT 25:31-34)
That's right. Jesus is still Christ and King in the world that is now and in the world to come.
Because of our firm belief in his reign, we have security and hope, during our life turbulences.
Before we began this sermon, we sang the hymn "The King of Jesus."
Jesus we enthrone You. We proclaim You are King, standing here, in the midst of us.
We praise You up with our praise and as we worship, build Your throne.
And we worship Your throne and as we worship, build Your throne.
Come, Lord Jesus, and take Your place.
Our attitude to the King is very important. It is important we acknowledge and confess Jesus to be our only King. And it is so important that we kneel before Him in humility.
If we look back at the church history, there are so many blessed people who have confessed Jesus as King and had loyal to Him to the end. Their names are not recorded individually, but Hebrews 11: 33-40 is evidence of such people.
Polycarpus, a 2nd-century Christian bishop of Smyrna, was one of those martyrs. Around 155 AD he was taken to the Roman governor and interrogated. He was forced to say this: “I deny that Jesus is the King, and I confess that the Emperor of Rome is the king.”
But Polycarpus replied as follows: “Eighty and six years I have served Him, and He has done me no wrong. How then can I blaspheme my King and Savior? You threaten me with a fire that burns for a season, and after a little while is quenched; but you are ignorant of the fire of everlasting punishment that is prepared for the wicked. . . Only Jesus is my King.”
Then with a burning fire he was martyred without being fear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Rev. Kichul Joo was taken to Japanese police and suffered all kinds of torture. And he was forced to worship before the Emperor of Japan. However, he was loyal to his King until the end and martyred.
One day in 1939, Rev. Joo confessed his own faith as follows:
Christ’s bride cannot break fidelity to other gods. The bride of Christ cannot bow to the Japanese shrine. O my Lord, regretfully Jesus’ name is disgraced. But I will, I will, I will give this life to my Lord.
Dear brothers and sisters, everyday do we cry out that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Truly?
If so, can you give your heart, your throne of life, to Jesus, to your Christ and King?
To Jesus Christ King, can you offer your everything? Even your freedom?
Shortly after joining the Navy, the new recruit asked his officer for a pass so he could attend a wedding. The officer gave him the pass, but informed the young man he would have to be back by 7 p.m. Sunday.
“You don't understand, sir,” said the recruit. “I’m in the wedding.”
“No, you don’t understand,” the officer shot back. “You’re in the Navy!”
One day Peter T. Forsythe said as follows: “The first duty of every soul is to find not its freedom but its Master.” (Warren W. Wiersbe, The Integrity Crisis, p. 22.)
I believe his point is correct.
A wife who is 85% faithful to her husband is not faithful at all. There is no such thing as part-time loyalty to Jesus Christ” (Vance Havner).
One day the Lord asked Andrew Murray, “Who am I to you?” Then Andrew Murray answered immediately, “Of course you’re always the first to me.”
He thought he had a good answer. But it seemed that the Lord was not very pleased. So he came to think, “What did I do wrong in my answer?”
He had a heavy heart all day long. Then a learning came to him in the evening, “Oh, I did wrong answer.”
So he came to the Lord and confessed, “Lord, you are all to me.” Then he felt the Lord was pleased.
Dear brothers and sisters, who is Jesus to you, to your life?
I said: Let me walk in the field.
God said: Nay, walk in the town. 
I said: There are no flowers there.
He said: No flowers, but a crown. 
I said: But the sky is black, there is
nothing but noise and din.
But He wept as He sent me back,
"There is more," He said. "There is sin." 
I said: But the air is thick, and fogs are
veiling the sun.
He answered: Yet souls are sick, and
souls in the dark undone. 
I said: I shall miss the light, and friends
will miss me, they say.
He answered me: Choose tonight, if I
am to miss you, or they. 
I pleaded for time to be given;
He said: Is it hard to decide?
It will not seem hard in heaven to have
followed the steps of your Guide. 
I cast one look at the fields,
Then set my face to the town;
He said: My child, do you yield? Will
you leave the flowers for the crown? 
Then into His hand went mine,
and into my heart came He; 
And I walk in a light Divine,
the path I had feared to see.


Wednesday, November 22, 2017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교회력(Lectionary)에 의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 왕 주일(Christ the King Sunday)”인 오늘이 금년 마지막 주일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대강절 (Advent)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교회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보건대,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란 고백과 더불어 우리는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천주교에서는 그리스도 왕 주일(Christ the King Sunday)”그리스도 왕 대축일혹은 온 세상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일컫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왕 주일은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이자 대강절 첫째 주일, 11 20 ~ 11 26일 사이의 주일로 지정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안타깝게도 이 날이 추수감사주일과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개신교회에서 이 날의 의미를 그다지 크게 장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의미가 워낙 크게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선한 일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는 외침이 교회에서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이 날을 특별한 교회절기로 지정하면서 온 세상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D. N. Iesu Christi universorum Regis)”이란 명칭과 함께 축일 중 최고 등급인 대축일(Feast)”이란 이름을 붙였던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Christ Is the King).” 이 외침 속엔 하늘에 있는 교회나 땅에 있는 교회나 시간과 공간의 구분 없이 그리스도께서는 모두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는 교회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온 성도는 오늘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이렇게 크게 외침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왕이시다!
Christ Is King! Christ Is King!
Cristo Rey! Cristo Rey!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자리 잡고 계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삶의 중심, 곧 삶의 보좌를 전적으로 그리스도 왕 예수께 내어드렸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의 보좌를 그분께 내어드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의 말로 대신해볼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온전히 맡겨진 삶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God is ready to assume full responsibility for the life wholly yielded to Him).” 아멘




Tuesday, November 21, 2017

감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감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107:1-9 (2017 11 19일 추수감사주일)
어느 날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열차를 타고서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부인이 투덜거리며 이것저것에 관해 불평했습니다.
좌석이 너무 불편해.” “시트가 너무 지저분해.” “청소가 엉망이어서 냄새가 지독해.” 심지어 승무원도 불친절해등의 갖은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멈출지 모르는 부인의 불평을 듣고 있던 남편이 앞에 앉아 있는 필 박사에게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자입니다.”
필 박사가 물었습니다. “부인께서 어떤 종류의 제조업에 종사하시는지요?”
그러자 남편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제 아내는 항상 불평을 만드는 제조업자입니다.”
보편적으로, 어른이 될 때면, 평균적으로 2 6천 개의 단어 학습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단어는 단연 감사합니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인간의 최고 단어 역시 감사합니다입니다.
아마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는 유대격언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유대인 탈무드에 이런 가르침이 있지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어떤 사람의 행복지수는 그의 감사함의 깊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칠레에 사는 마푸체 인디언들(the Mapuche Indians)은 누구나 특별한 지도를 갖고 산다고 하지요? 그들은 성스러운 낙원인 우엘렌(Uellen)에 장차 들어갈 것을 고대하며 살아가는데, 평소에 그곳에 찾아 갈 수 있는 지도를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도는 다름이 아닌 각자의 얼굴이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굴이야 말로 유일한 지도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인상을 짓고 사는 사람은 우엘렌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통로를 알 수 없다고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또한 어찌 보노라면, 우엘렌에 이르기 전에 그들은 이미 낙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영어 성가대에서 불렀던 “10,000 Reasons”에 이런 가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을 노래하고 또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헤아려 알고 있는 만 가지 이유를.”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더러운 말이나 저속한 농담을 입에 담지 말며, 늘 입에 감사가 넘치게 하십시오”( 5:4. 쉬운성경).
더러운 말, 저속한 말, 불평의 말은 가능한 한 입에 담지 말아야 하고, 그 대신 감사의 말로 채워야 합니다. 불평의 말이든, 감사의 말이든 언젠가는 메아리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이것을 삶의 부메랑이라고 부르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그대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이 악한 백성이 언제까지 나에게 불평하려느냐? 나는 이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사는 한, 내가 들은 말대로 너희에게 해 줄 것이다”( 14:27, 28).
여러분은 혹시 “gratitude,” 고마움, 감사란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을 갖습니까?
아마도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 오프라 윈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오프라의 감사일기에 관해 들어보셨는지요?
그녀는 매일 저녁마다 거르지 않고 그날 자신이 고마워했던 일, 그녀를 웃게 만들었던 일, 놀라워했던 일, 아름답게 느꼈던 일, 혹은 그녀의 마음이 노래하도록 했던 일을 기억해내고서 일기장에 적습니다.
그러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녀의 삶이 위대해졌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행복한 삶으로 변했습니다.
다음은 오프라의 말입니다.
수년 동안 나는 감사의 능력과 즐거움에 관해 말해왔습니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지난 10년 동안 감사일기를 적어왔는데, 여러분도 그와 같이 하시도록 권합니다. 그러면 삶이 활달해질 것입니다.
물론 나의 스케줄은 무척 빡빡합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여전히 나는 일기장을 열어 그날에 감사했던 일 다섯 가지를 적고 난 후에야 하루를 매듭 짓습니다.
다음은 감사일기를 꾸준히 적어갈 것을 권하면서, 오프라가 한 말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더욱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 갖지 못한 것에 초점을 모은다면, 여러분은 결코 여유로울 만큼 충분히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 가운데 감사생활을 해치는 방해꾼은 단연코 비교의식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비교의식에 시달리는 살리에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그는 당시 최고의 음악가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모차르트와 비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행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치기까지 합니다.
왜 저에게는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만 주시고, 모차르트와 같이 천재적인 작곡 능력은 주시지 않았습니까?”
평생감사란 책에서 전광 목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감사가 행복해지려는 연습이라면,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이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감사연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잠시 여러분과 함께 감사연습을 실천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브리가도(Obrigado)”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이것은 브라질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로써, 포르투갈어로 고맙습니다란 의미입니다. 이것의 여성형은 오브리가다”(Obrigada)입니다.
물론 이것이 감사합니다란 의미로 주로 사용되지만, 본래 의미는 제가 빚을 많이졌습니다입니다.
한편으로, 스페인어로 고맙습니다그라시아스(Gracias)”인데, “당신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란 의미입니다.
옆에 앉아 있는 분들에게 옆에 앉아주셔서 오브리가도(Obrigado)”라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Obrigado por sentar-se ao meu lado)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7:10).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감사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간단히 세 가지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입술로 감사를 표현하거나 노래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 하나하나를 얼마나 고마워하는질 말씀드리십시오.
둘째로, 감사의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대상 16:8).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하여 가족, 친척, 친구 혹은 직장 동료에게 자신 있게 증거하십시오.   
셋째로, 필요에 처한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십시오. 우리가 작은 자에게 나누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25:40).
오늘 예배를 시작할 때, 우리가 일어나 불렀던 입례송( 66, 통합 20)을 기억하시죠?
이 찬송은 마틴 린카트(Martin Rinkart)란 목사님께서 작시했습니다. 그 시기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17세기 전반부 때, 독일은 전쟁, 가뭄 그리고 역병에 극도로 시달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절망의 시기, 즉 전염병이 마을을 덮치고, 30년의 긴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때, 린카트 목사는 어떤 경우엔 하루에 50번의 장례식을 집례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그 당시 린키트 목사는 자기 혈육 장례를 집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둡고 절망적 시기에, 매일마다 죽음과 파괴가 덮쳐오던 시기에, 린카트 목사는 무려 66곡의 성가와 찬송을 지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 감사드리세 (Now Thank We All Our God)”입니다.
극한 슬픔이 밀려올 때에도 여전히 린카트 목사는 이렇게 노래했던 것입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린카트 목사는 실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감사생활은 번영과 평화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님을.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임을.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 설교가 조지 마떼슨이 시력을 잃고 난 후 깊은 갈등 후 깨달았던 바를 기도로 옮겨 적었던 것을 읽어드리면서 오늘 설교를 매듭 짓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지금껏 내게 있는 가시에 대해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장미에 관해선 수천 번의 감사를 했으나, 나의 가시에 관해선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짊어진 십자가 때문에 내게 상급이 주어질 하나님 나라는 바라보며 살아왔으나, 십자가가 현재의 영광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시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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