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27, 2015

고립된 자, 아니면 해방된 자?


고립된 자, 아니면 해방된 자?

지난 주간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I, II, III)”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어본 적이 있는 책인데, 사실 그 당시엔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워낙 두꺼운 책이었던 고로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저자의 생각이나 사상을 읽어내려 하기 보다는 완독이 주요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책장을 그냥 넘기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하지만 지난주엔 속독보다는 정독을 택했습니다.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저자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능한 많이 듣고자 노력했습니다. 자투리 시간뿐만 아니라 이른 새벽과 늦은 밤 시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금번에는 책에서 참으로 많은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들려온 외침 가운데 다음과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수도원 벽 속에 고립되었고, 인류에게 형제와 같이 봉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가?” 물론 이것은 조시마 장로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바로 직전 수도원의 동료 수도승들에게 던진 말이긴 했으나 내 자신에게 던져진 도전적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서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고립된 자인가, 아니면 해방된 자인가? 나의 사상과 교리 안에 갇혀 살아가는 자인가, 아니면 품고 있는 사상과 교리를 사람들 가운데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자인가?”
기원 전 6세기 그리스에 탈레스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철학자였는데, “밀레투스 학파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긴 아리스토텔레스가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했다고 하니 그의 깨달음이 실로 깊이가 있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이 그토록 깊긴 했으나 자신의 현실적 삶엔 대단히 무지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실례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길을 걷다가 그만 우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것을 목격한 하녀가 이렇게 빈정거립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다 한 치 발 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군요.”
하늘을 바라보며 깨달음의 깊이를 더하긴 했으나 정작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보지 못함으로써 우물에 빠져들고 말았다는 탈레스. 그런데 혹시 내 자신 역시도 나의 사상과 교리적 이해를 더하려 힘써 노력하다가 내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만 우물에 빠져 남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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