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30, 2015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오늘은 어린이주일 관계로 자녀교육에 관해 몇 자 적고자 합니다. 자녀를 둔 부모의 지대한 관심이 자녀교육에 쏠려 있습니다. 비록 부모 자신은 이런저런 여건으로 많은 배움을 얻지 못했다 해도 자식만큼은 최선을 다해 좋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생각은 참으로 훌륭한 정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또 장려하고 싶습니다.
사실 자기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치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자녀가 좀 더 나은 위치에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을 부모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의 이러한 기대를 결코 너무 과한 욕심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심분 이해하면서 조심스럽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혹시나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자녀들에게 너무 과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면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좋은 길은 없을까요? 사실 이것은 바람직한 자녀교육 방법을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녀가 갖고 있는 잠재력(비록 그것이 아주 미미하게 보인다 할지라도)을 찾아서 부드러운 방법으로 그것을 활성화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자녀들의 잠재력을 키우는데 도움 될 만한 조그마한 지혜입니다:
첫째, 점진적으로 잠재력을 활성화시켜 주십시오. 자녀들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요구는 그들에게 오히려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실증을 갖도록 만듭니다. 너무 서둘러 열매를 거두려 하지 마십시오.
둘째, 현실적인 기대감을 가지십시오. 너무 무리하게 높은 기대를 걸지 마십시오. 성취할 수 없는 꿈은 오히려 동기부여를 낮추는 결과만 빚을 뿐입니다. 작은 성취를 통해 좀 더 큰 성취감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자녀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 현명합니다.
셋째, 자녀에게 맞추어진 꿈을 추구하십시오. 부모가 자녀에게 갖는 꿈이 아니라 “자녀의 꿈”을 찾아 그것을 적극적으로 키워 주어야 합니다 (Not a dream of parents for a child but a dream of a child).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 그것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넷째, 잦은 꾸지람보다는 적극적 칭찬을 통해 긍정적 자아상을 심어주십시오. “못한다”는 말로써 부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거나 혹은 “옆 짚의 누구누구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비교의식으로써 자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 “잘 한다,” “네가 최고다,” 또는 “나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등의 말로써 자녀들의 자긍심을 키워주십시오. 자긍심이 높은 자녀일수록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지도력을 잘 발휘하며, 학교 성적이 높습니다.

Thursday, April 23, 2015

수성 탐사선 메신저 호(號)의 최후


수성 탐사선 메신저 호()의 최후
지난 주 월요일 (4 20미국 우주항공국(NASA)은 무인 수성탐사선인 메신저 (Messenger) ()가 맡겨진 임무를 마치고 운석처럼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고 타전했습니다.
메신저 호는 2004 8월에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되었습니다이 탐사선에는 감마선엑스선분광계와 컬러사진 촬영장치 등 각종 과학장비가 탑재되어 있어 수성 궤도를 선회하며 수성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해 지구로 송신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지구를 떠나 78 9km를 비행한 후 2011 3월 수성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그 후 끊임없이 수성궤도를 돌며 수성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6년 반 후 수성 탐사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 왔던 메신저 호는 수성에 추락함으로써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24 (탐사선 안에 남아 있는 헬륨가스 연료를 모두 소진하면서 마지막 임무를 감당한다고 하지요그 후 탐사선 안에 남아 있는 연료가 없기에 수성의 강한 중력과 싸워가면서 스스로 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이것은 곧 메신저호가 수성의 중력에 끌려 수성 표면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초속 3.91km의 속도로 수성에 돌진하면서 장렬한 최후를 맡게 됩니다.
메신저 호가 수성 표면에 충돌하는 순간 인류가 수성에 새겨놓은 최초의 자국(크레이터, Crater)이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 탐사선이 수성에 충돌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역사적 장면은 우리 눈으로 관측할 수 없는데그 이유는 수성 반대쪽에서 그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우주항공국에서는 수성 충돌로 말미암아 메신저 호를 잃게 되어 아쉽긴 해도 그 최후를 슬퍼하기보다는 이 탐사선이 지금껏 이루었던 성공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며 자축하기로 했다는 소문입니다.
수성 탐사선 메신저호의 장렬한 최후 기사를 읽어보면서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리고 이런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보았습니다“나는 내 자신에게 맡겨진 삶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또한 삶의 최후를 맞이하게 될 때나의 걸어온 삶을 후회하기보다는 경축할만하고무엇보다도 내게 인생을 맡겨주신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칭찬하실만한가?   

참고로이 목회칼럼은 아직까지 미국 우주항공국(NASA)으로부터 메신저 호의 최후와 관련된 보도가 나오지 않았던 목요일 오전 작성된 관계로 미래형으로 서술되었습니다.

Monday, April 20, 2015

두려움, 용서 그리고 부활


두려움용서 그리고 부활
 20:19-23 (2015 4 19부활 후 셋째 주일예배)



오늘 본문을 보노라면안식 후 첫 날 저녁이 되었을 때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그들이 모여 있던 집의 문들은 꼭 닫혀 있었습니다안에서부터 문고리를 걸어두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왜요?
안식 후 첫 날이라면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던 바로 그 날이 아닙니까예수께서 부활하셨는데그의 제자들은 문을 활짝 열고서 밖으로 나와 주님의 부활을 기뻐해야 하지 않습니까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문들을 잠가두고 숨어 있었던 것인가요?
오늘 본문 19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이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들을 꼭 걸어두고 안에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모든 문들을 걸어두고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외형적으로 볼 때이유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은 온당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그들의 두려움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이 깨달아야 했던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죽임 당한 예수께서 다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이 참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음은 곧바로 증명됩니다부활의 주님을 목격한 후 그들의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두려움이 오히려 큰 기쁨으로 변했습니다“이 말씀을 하시고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  이렇게 볼 것 같으면제자들이 두려움에 갇혀 있었던 것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진실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활의 주님을 아직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마리아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이후 그녀의 눈이 열려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즉시 그녀는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가 큰 기쁨 가운데 이렇게 외쳤습니다“내가 주를 보았다!” 또한 그녀는 주께서 일러주신 모든 말씀을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했습니다 ( 20:18).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안에서부터 문을 담궈두고 숨어 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울먹이면서 수근거립니다“그들이 주를 죽였다.” 그들이 의인을 죽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이와 동일한 하소연을 했습니다“나사렛 예수의 일이니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 24:19-21).
설상가상으로수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모든 문들을 잠궈두고 있습니다안에서부터 문을 잠궈 놓으니 밖에서 일어나는 좋은 소식이 전달되지 않습니다문들이 꼭꼭 닫혔으니 안이 캄캄할 수 밖에 없습니다안이 캄캄하니 답답함이 더해지고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증가될 수밖에 없습니다모든 문들이 닫혔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한편으로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런 어두움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넣은 자들에 대한 원망만 커져 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망이 정당한가요그런 생각이 올바른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요혹시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리 스스로가 모든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은 아닌가요안에서부터 문을 잠궈버렸으니 희망의 복된 소식을 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요?
물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은 사실입니다그것은 정말로 끔찍스런 일이었습니다큰 상처였습니다희망을 송두리 채 빼앗아간 비극이었습니다그래서 제자들은 그런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들을 원망했고그와 동시에 그들로 인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일의 끝은 아니었습니다예수께서 살아 계셨을 때그들에게 여러 번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그런데 있지 않습니까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예수께서 죽임 당하신 후 그의 말을 기억한 것은 그의 제자들이 아니라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자들이었습니다“주여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백성에게 말하되‘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 27:63, 64).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서 그 말씀대로 일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 가운데 기다려야 할 자들이 다름 아닌 그의 제자들이었는데. . .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살해한 자들이 두려워 모든 문들을 안에서부터 잠궈두고 숨어 있었다니. . .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런지요이런저런 삶의 어려운 환경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음의 문을 안에서부터 걸어두고 있진 않는지요그래서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자들을 향해 원성만 만들어내고 있진 않는지요?
사도 바울께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 . (딤후 1:7)
성도 여러분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모든 문들을 닫아두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즉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려운 일들 때문입니까정말로 그렇습니까혹시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은 아닙니까무슨 말인고 하면어려운 환경에 짖눌려 하나님의 능력을 잊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 때문에 세상을 밝고 희망차게 보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8:23-27에 보노라면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이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그런 위험한 순간에 예수께서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그때 제자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그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습니다“주여구원하소서우리가 죽겠나이다” (25). 그러자 잠에서 깨어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믿음이 적은 자들아! (26그리고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그제서야 그의 제자들이 놀라며 말했습니다“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27)
이 이야기 속에서 제자들을 큰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갑자기 일어난 풍랑입니다하지만 그것만이 모든 원인은 아니지요그것보다 더 큰 원인은 그들이 자신들과 함께 하는 분이 누구인지그 분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아직 깨닫지 못했고또한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렇지 않습니까그래서 잠에서 깨어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나무라신 것이 아닙니까“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믿음이 적은 자들아! (26제자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풍랑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보고 믿을 때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에는 “두려워 말라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이 숱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물론 두려움이 우리 주변을 사로잡을 수는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 마음까지 사로잡도록 방치해서는 아니 됩니다우리의 마음이 무엇엔가에 사로잡혀야 한다면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에 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렵게 하드는 모든 환경 요소를 제거해주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내가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하리라." 우리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입니다.
참고로“두려워하다”는 말은 “도망치려 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두려워 말라”는 명령은 “너를 두렵게 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환경을 똑바로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능력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너는 결코 나를 두렵게 할 수 없어.
삶을 살아가는동안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길 희망합니다하지만 두려움이 큰 걸림돌이 되곤 하지요두려움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우리 자신으로 발전하고 싶은 선한 의욕을 꺾어놓곤 합니다“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다 오히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우리는 결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두려움은 아마도 이런 종류일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하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남의 말에 너무 신경을 씁니다그러다보니 정작 하고 싶은 도전조차도 시도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 시간만 허비합니다그리고 결국 실패자로 남고 말지요.
그런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너무 관심 둘 이유가 없잖아요선한 의도로 시작했다가실패해도 그것을 시도했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생각해야 하잖아요진정 실패자는 시도했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자가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자가 아닌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닭들은 전생애를 같은 닭장에 모여 살아간다하지만 독수리들은 더 높이 날아오르려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런 맥락에서존 파커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환경 힘들어질 때강한 자는 길을 계속 가지만약한 자는 그만 중도에 포기한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되돌아가노라면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여유가 없습니다그 대신 두려움만 쌓여 있습니다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평강을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자신이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그들과 함께 있음을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
평강을 말씀하신 후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1). 하지만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면서 홀로 그들을 보내지 않으시고 성령님과 함께 가도록 하십니다“이 말씀을 하시고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가라사대‘성령을 받으라’” (22).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신 것은 죄 사함을 위함입니다무슨 말입니까제자들을 그토록 큰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무리의 죄까지도 용서를 베풀라는 것입니다그들의 주를 채찍질하고십자가에 대못박아 죽였던 바로 그 무리까지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그들을 죄로부터 풀어놓아주는 것입니다바로 이것이 부활 후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내린 첫 명령이었습니다“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사하여질 것이요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그대로 있으리라” (23).
그런데 주의 제자들이 그 무리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에게 주의 영이 필요했습니다제자들의 절제력이나 인내심으로 그 무리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그들에게도 용서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제자들이 그 무리를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상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이 말씀을 각별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가정에서나직장에서나또한 교회에서 지난날 우리를 힘들게 했던 무리우리를 두렵게 만들었던 무리를 그들의 잘못과 허물로부터 풀어주어야 합니다그것은 그들을 위함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위함입니다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아픈 과거로부터 우리 자신을 풀어주는 비결이자 우리가 진정한 자유로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두려움은 용서로 극복하고용서는 부활을 체험함으로 가능합니다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aturday, April 18, 2015

창립 35주년 감사예배

창립 35주년 감사예배 
2015년 4월 12일

























Thursday, April 16, 2015

한 그루 나무를 심기


한 그루 나무를 심기
일본식민지 강탈, 6.25전쟁 그리고 무분별한 화전(火田)으로 인해 한국의 산들은 벌거숭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산사태가 여기저기서 발생했고, 시냇물은 온통 황토 빛으로 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7, 80년대에 집중적으로 나무심기를 통한 삼림녹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룬 덕택에 전국의 삼림이 꽤 울창하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에는 항상 흑백이 공존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삼림이 울창해서 좋긴 한데, 나무들이 너무 고령화되어가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전국의 삼림 대부분이 30년 혹은 40년 이상 된 키가 커다란 장년층 나무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옛날과는 달리 생활 여건이 향상된 관계로 더 이상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땀 흘리며 나무를 베다가 장작으로 만들거나 시장에 내다 팔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이 적절히 닿지 않은 관계로 나무들이 질서 없이 빽빽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아래서 새롭게 자라난 묘목들이 키 큰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묘안은 관심과 정성어린 손길이 적절히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삼림이 무성할지 몰라도 어린 나무들이 계속해서 자랄 수 없는 환경이 지속되면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합니다.
오늘 칼럼에서 한국 삼림 현황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교회 잔디밭과 주차장 사이에 엉성하게 서 있던 나무들을 제거했습니다. 땀을 흘려가면서 뿌리를 절단하고 파내는 작업 중입니다. 결과적으로, 교회 정원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고, 길거리에서 교회 안을 내다볼 수 있어 좋긴 합니다. 하지만 막상 나무가 제거된 부분을 들여다보노라면, 여전히 엉성하기만 합니다.
그곳에 무엇인가를 심어야 합니다. 나무를 심든, 꽃을 심든 해야 합니다. 지금은 엉성하기만 해도, 관심과 정성어린 손길이 들어가노라면, 실로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성공적인 삼림녹화 캠페인을 통해 한국의 벌거숭이 삼림이 울창한 삼림으로 변했듯, 엉성하기만 한 교회 정원도 우리의 땀과 정성이 닿게 되면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이런 캠페인을 제안해 봅니다. “한 그루 나무를 심기” 캠페인을 했으면 합니다. 뜻이 있는 성도들께서 원하는 나무를 가져다 땅을 파서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캘리포니아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유실수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무가 자라가면서 엉성한 곳을 메꾸어 주어 좋고, 그와 동시에 나무열매 역시 더불어 나눌 수 있으니까 좋을 듯싶습니다. 참고로, 땅을 팔 때 필요한 공구는 교회에 충분히 구비되어 있습니다.

Wednesday, April 8, 2015

화요 성경공부반 소풍

화요 성경공부반 소풍
2015년 4월 7일
To Getty Center















Easter Altar and Cross Decorations

Easter Altar and Cross Decorations
On April 5, 2015










Saturday, April 4, 2015

Cross Painting on April 4, 2015

Cross Painting 
on April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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